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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여덟번째 편지〈백남준의 그림자〉

중앙일보

입력

(...) 백남준의 〈촛불 프로잭션〉은 예의 비디오 조각과 달리 가볍고 경쾌하며 투명하고 찬란하다. 그것이 시적이라고 할 때는 뭔가 우리 앞에 있으나 그것이 곧 사라져버릴 것 같은 예감 때문이다.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결코 물건으로 자신의 존재를 강변하지 않는, 마치 영혼의 그림자인 양 자신을 노래하고 춤추고, 그리고는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촛불의 삶의 괘적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TV 모니터가 주는 조각적 의미일까. 아니면 빛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비물질성일까. 오히려 물질의 언어는 죽음이고 비물질의 언어는 생명력이다. 우리는 백남준을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천재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한마디로 비디오 아트는 전통적 미술개념을 넘어서고 확장시킨 점에 그 핵심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예술작품의 물질 개념을 영상이라는 비물질의 언어로 대체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 자체가 비디오 매체의 본질이라고 하겠다.

(...) 프랑크푸르트의 촛불은 마치 선방(禪房)에서 펼쳐지는 아름답고 고요한 사유의 움직임처럼 보인다. 그에 비해 호암갤러이의 촛불은 〈TV 정원〉과 함께 춤추는 듯한 언어와 몸짓으로 더욱 화려하게 와닿고 있다. -박신의(미술평론가)

7월 21일부터 10월 29일까지(월요일 휴관) 호암갤러리와 로댕갤러리에서 나눠 전시되고 있는〈백남준의 세계전〉에 아직껏 가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어느 경우에나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면 결코 기회가 없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무엇을? 그(백남준) 혹은 그의 작품과 만나는 순간이 내게 손님처럼 찾아와주기를?

백남준의 작품을 보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 예술적 광기와 천재성에 곧 무기력해져 한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교 시절 도스토예프스키의〈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을 거푸 두번 읽고 나서 느꼈던 절대적 절망감, 베토벤의 제5번 교향곡을 적어도 이백 번 이상 들으면서 그때마다 느꼈던 자신에 대한 무서운 적막감이 되살아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와 비슷한 혼란과 전율을 느끼게 했던 저 미친 예술가들의 작품이 또 무엇이었던가. 암스텔담에서 보았던 고흐의 작품들? 그것은 유화여서 막 화방에서 완성돼 꺼내온 듯 붓질이 생생하고 그 붓질의 틈바구니에서 튀어나오는 원시성의 에너지 때문에 그 앞에서 좀처럼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순간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문득 잊고 있었습니다. 마치 선(禪)을 경험하고 있는 듯한 황홀한 느낌이었지요. 렘브란트의〈야경꾼〉과 〈자화상〉도 마찬가지였고 빠리의 오랑주리 미술관 벽에 원형으로 전시돼 있는 모네의 〈수련〉을 보고 나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로댕미술관에 가서는 그의 작품 앞에서 울고 가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들 작품 앞에 서면 곧 전체가 흔들리고 허물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것들은 대상을 해체하고 파괴시켜 다시 조립의 과정을 겪게 합니다. 각각의 작품들은 그게 어느 것이든 강력하고도 독립된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관찰자를 무(無)의 순간으로 돌려놓습니다. 빅뱅의 순간이라고 해도 좋고 아무튼 순결무구한 상태로 말입니다. 그렇게 거꾸로 대상이 되어버린 관찰자는 텅 비어버린 자신의 전체(존재) 앞에서 단 한가지 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세상에 막 태어난 아이처럼 새롭게 울음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예술 작품에 훈련된 감식안이 필요하다는 말을 저는 믿지 않습니다. 위대한 작품 앞에서는 누구나 본능적으로 전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 이미지는 두고두고 남아 나라는 불가해한 존재의 의미를 환기시켜 줍니다.

백남준과 처음 만난 것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였습니다. 로비에 설치돼 있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작품을 보고 나서 저는 갑가기, 쑤욱, 무한공간의 우주로 방출되는 느낌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껏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거의 절대적인 전율을 맛보았던 것입니다. 그때의 느낌을 지금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아직도 나는 그 말의 꼬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환희에서 오는 절망'이란 말로 대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새로움의 정체가 무엇인지 두고두고 생각하다 결국 '오픈 아트'라는 말을 생각해 냈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해 무한히 안팎으로 열려 있는 만상(萬象)의 이미지! 그것들은 서로 닮아가고 순식간에 헤어지며 또 흘러가고 겹쳐지며 마음껏 춤을 춥니다.

호암갤러리가 있는 아트홀에 가면 본관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옆에(현금자동지급기 옆에) 일년 삼백육십오일 백남준의 작품이 전시돼 있습니다. 영화를 보거나 미술 작품을 감상하러 그곳에 갈 때마다 나는 그 작품 앞에서 헤어진 연인처럼 늘 서성이다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러다 재작년인가 로댕갤러리 오픈 기념으로 열린 〈요셉 보이스와 백남준전〉에 다녀와 〈수사슴 기념물과 놀다〉란 백남준에게 바치는 작품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때 그는 일본에서 투병 중이었습니다.

나는 백남준이란 이름만 들으면 가슴이 떨립니다. '오픈 아트'란 말을 들어도 역시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단 한명 변함없이 절망을 불러일으키는 예술가를 꼽으라면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이름을 댈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내게 혁명이었고 더할 수 없는 새로움의 상징입니다. 피카소가 그 시대에 있어서는 새로움의 독재자였듯이.

그의 작품은 정지함 없이 이미지를 반죽하며 단 하나의 존재이거나 그가 머무는 장소인 세계에 끊임없이 변화를 부여하고 또 그것을 부단히 요구합니다. 존재는 24시간 3교대로 가동되는 주물공장처럼 쉴 틈 없이 풀무질을 하며 변형을 이룩해야 합니다. 위대한 예술가들이 모두 그러하듯 그는 연금술사임에 틀림없습니다. 세계를 형성하는 네 가지 원소들: 물 불 공기 흙의 요소를 백남준은 단 하나의 화면에 가둬놓고 마구 뒤섞고 흔들며 현란한 순간들을 연출합니다. 그의 앞에서 세계는 더이상 고체 덩어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의 사상이 더이상 인간 존재를 구속할 수도 구원할 수도 없듯이 말입니다. 오직 변형과 변화를 통해서만 가까스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존재는 찰나에 보일 듯 말 듯 나타났다 곧 사라집니다. 순간의 환영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촛불 선방(禪房)이라니! 그것도 난맥으로 흐르는 전자 기류 속에? 그가 선방에 들어 하고 싶은 말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아름답고 고요한 사유의 움직임'이라고?
그저 애가 타고 나 자신이 애처로울 따름입니다.

곧 〈백남준의 세계전〉에 가볼 생각입니다. 단 한번 만났다 헤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보고 싶은 사람은 결국 만나야 하듯이 말입니다. 그러기에 인간 존재는 소금기둥이 될 수밖에 없고 또 기어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 수밖에 없는 불행한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설적으로 말입니다.

한동안 선방(禪房)에서 지낸 적이 있습니다. 내 존재의 흔들림을 밤새 주의깊게 목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낡은 책상엔 촛불이 하나 있었고 마음엔 은빛 비행기가 있었고 밖인 듯 안인 듯 창호지엔 풍경소리가 있었고 애타는 그리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벽이면 가끔씩 느리게 찾아왔다 속히 사라져가던 저 마음의 알 수 없는 고요!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나였을까? 혹은 아직 낯모르는 그리운 자의 기척이었을까?

단 하나의 외로운 흑백 모니터에 내 젊은날의 영상들을 집어넣고 마구잡이로 뒤섞어보고 싶은 밤입니다. 그리고 설겆이를 하듯 누군가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말간 그릇 하나를 건져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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