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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데이트 해보세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54호 27면

“어제도 TV에서 우리 아들 봤다.” “그래, 잘 나오던가요?” “세상에 천하 없는 일이 있어도 너 나오는 시간은 집으로 달려온다.” “아, 예.” “우리 아들 얼굴 보는 재미로 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언제까지 모니터로만 얼굴을 보여 드려야 할 것인지…. 결심했다. 아버지·어머니와 일주일에 한 번은 데이트를 하기로. 막상 결심은 했지만 솔직히 막막했다.

삶과 믿음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꽉 짜인 스케줄에, 토요일은 주례에다 밀린 일들로, 주일은 교회 예배와 설교로, 모처럼 찾아오는 공휴일은 특별행사로(거기다 기업체 강의라도 잡히면 돈이 얼마인데…). 하지만 두 분이 떠나시고 나면 자주 못 찾아뵌 것이 가장 아쉬워할 대목일 듯싶었다. 가슴을 치며 울고 싶지는 않았다. 내 생애 가장 어려운 결단이었다.

라이브로 내 얼굴을 보여 줘야 한다는 것, 그래서 죽(粥)이라도 사 들고 가 아침 조찬을 나누고, 밤에 쳐 들어가 새우잠을 자고 나오는 일이 있더라도 두 분과 일주일에 한 번은 데이트를 하겠노라고.

아내에게 동의를 구했다. 아니 날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아내가 선뜻 응했다. 내가 갈 수 없을 때는 아내 혼자라도 두 분과 데이트를 하겠다고. 그렇게 해서 우리 데이트는 시작됐다. 아버지·어머니는 바쁘기만 한 아들이 토요일마다 찾아오고 왜 뜬금없이 집에 들르는지 모르신다. 그러나 헤어지는 그날까지 계속해 볼 참이다. 새해 첫날, 출발이 좋았다. 그날의 일기다.

1. Jan. 2012
아버님·어머님을 모시고 성서교회에서 신년예배를 드렸다. 설교는 심플하면서 핵심이 있었다. 그러나 더 좋았던 것은 짧았다는 점이다. 내 마음이 이러니… 잠시 내 설교의 길이를 돌아보았다.

나란히 앉아 가족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행복이었다. 여동생 부부도 함께했다. 언젠가 내 아이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손녀들과 함께 앉아 찬송하고 기도할 일이 떠올랐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예배를 마친 다음 떡국 대신 오리구이집을 찾았다. 아버지가 이미 답사를 끝낸 집이었다. 엊그제 오리집에 모셔가 대접하고 싶다 했더니 아버지는 내가 오리고기를 먹고 싶다고 여기신 모양이다. 이런 아버지를 나는 어떻게 닮을 수 있을까? 아무리 따라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식사 값도 기어이 아버지가 내신단다. 옆에 있던 매제가 ‘아니 제가 쏩니다. 형님도 왔는데요’ 하는데도 막무가내다. 하지만 거기엔 아버지의 자존심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내가 자식들에게 얹혀살지 않는다는 오기(?) 말이다. 자식이 식사 대접하는 것을 효도라 하는 분들도 있지만 내 아버지만은 다르다. 나는 이런 아버지가 좋다. 지금도 아버지는 내게 용돈 주는 것을 좋아하신다. 용돈을 받은 날은 나도 어린 소년이 된다.

효를 새롭게 생각해 본다. 큰돈은 드려도 작은 돈은 그분들이 쓰게 하셔야 한다는 것. 그런데 우리는 효 한다면서 어르신들을 밥이나 얻어먹는 노인네로 내몰 때가 있다.
밥은 아버지가 쏘시고 차는 매제가 쏘고 나는 추억을 쏘았다. 새해 첫날, 우리는 쏘는 가족으로 남았다.

함께하지 못한 가족들 쏘리! Sorry!

일기도 계속 써 볼 참이다. 모든 것은 지금까지 진행형이다. 또 다시 구정, 간절히 소망한다. 제발 이 아름다운 동행이 방해받거나 멈추지 않기를.



송길원 가족생태학자.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대표로 일하고 있다. 트위터(@happyzzone)와 페이스북으로 세상과 교회의 소통을 지향하는 문화 리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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