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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통일, 2020년대 중반 실질적 단계 접어들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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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호 10면

김정일 사망에 이어 한국·미국·러시아·중국의 정권교체가 예상되는 올해는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기다. 북한과 이란의 핵위협,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준동, 기후변화, 만성적인 식량난 등은 인류의 가까운 장래도 내다보기 어렵게 한다. 이런 차에 러시아 최고 연구기관인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 연구소(IMEMO)’의 알렉산더 딘킨 소장을 만났다. 그는 IMEMO가 발간해 눈길을 끌었던 『글로벌 전망 2030 보고서』의 번역서 출간에 맞춰 한국을 찾았다. 경제학 박사인 그는 러시아 총리 경제자문관을 역임했으며 미국 조지타운대 초빙교수로도 활동했다.

러시아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 딘킨 소장

-IMEMO 보고서는 다른 연구기관의 보고서와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향후의 세계 정세를 예측하면서 한 방향에서만 보지 않았다. 다른 유수한 연구기관이 있지만 이들은 거의 정치면 정치, 경제면 경제와 같은 한쪽 면에서 미래를 조망한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도 훌륭하지만 여기서는 주로 정치·외교를 다룬다. 그러나 IMEMO는 정치·경제는 물론 사회적 요소까지 고려해 종합적으로 미래를 본다. 또 다른 중요한 점은 민주당 색깔이 짙은 브루킹스연구소처럼 많은 기관이 정치적으로 치우쳐 있지만 우리는 중립적이다.”

-보고서의 가장 큰 특색은.
“방법론이다. IMEMO는 사회과학 분야에서 가장 불확실성이 적은 요소인 인구 추세를 기반으로 미래 예측을 한다. 다른 연구소들은 주로 여러 가정을 세워놓고 시나리오를 짠다. 시나리오에 따른 예측은 하기 쉽지만 가정해 놓은 변수가 하나라도 틀리면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약점이 있다.”

-그렇다면 IMEMO가 보는 향후 20년 후의 세계 전망은 어떤가.
“앞으로의 미래 사회에서는 과거 20년에 나타났던 급격한 변화나 쇼크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세계 각국도 이런 추세에 발맞춰 국제기구 또는 지역 기구들과의 협력을 통해 보다 굳건한 협력 관계를 다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러려면 국가 상호 간 더 광범위한 신뢰를 쌓아야 한다.”

- 20년 후를 낙관하는 듯하다. 그 배경은.
“앞에서 설명했듯 인구 변화 추세 때문이다. 전 세계의 인구 증가는 안정화될 것이다. 선진국은 물론이고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봐도 이런 현상은 뚜렷하게 나타난다. 반면 이들 인구들이 소비하는 천연자원의 공급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석유 소비만 봐도 급격하게 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장기적으로 볼 때 자원을 둘러싼 각국 간의 갈등은 줄어들 것이고 그래서 세계가 과거보다는 위협이 적을 거라는 얘기다.”

-에너지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지 않겠는가.
“물론 이 아시아 지역에서 석유 소비가 늘 긴 하겠지만 현재 추세라면 수요 공급을 맞추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원유가 머잖아 바닥날 거라는 주장도 있지만 석유의 공급량은 경제성과 관련이 있다. 값이 오르면 과거에 경제성이 없던 원유도 퍼내서 팔 수 있다. 중국은 석유 대신 석탄을 쓸 수 있다. 게다가 대체 에너지도 있지 않는가. 석기시대가 끝난 건 돌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러시아에 닥칠 가장 큰 위협은.
“내부적 위험이 심해질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하면 탈레반에 장악될 것이다. 파키스탄도 위태롭다. 이렇게 되면 극단적인 이슬람 세력이 강력해지면서 러시아 내부에도 침투해 큰 혼란을 일으킬 위험이 크다. 이것이 향후 10년 내에 러시아가 당면할 가장 큰 위협으로 본다.”

-러시아와 다른 나라, 특히 미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두 나라 모두 국수주의적인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양국 간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 그럼에도 두 나라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문제가 많아지고 있다. 핵확산 금지, 테러와의 전쟁 등이 그런 사안이다.”

-러시아는 중국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분히 복합적이다. 중국산 제품은 러시아에서도 아주 흔한데 한국산 등에 비해서 별로 좋은 평을 듣지 못한다. 이런 상품에 대한 평가가 중국에 대한 이미지와 연결돼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한다. 반면 옛 공산주의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장노년층에서는 중국은 여전히 같은 공산국가로 형제의 나라라는 관념이 뿌리 내리고 있다.”

-향후 20년 내 한반도 통일문제는.
“2020년대 중반이면 완전한 한반도 통일에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통일 과정이 실질적 단계에 접어들 걸로 보인다. 북한이 지금 같은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을 거란 얘기다. IMEMO 보고서에서는 이 시기를 20년대 후반께로 잡았는데 김정일 사망으로 좀 더 빨리 올 것 같다. 이는 북한의 붕괴 추세가 가속화될 공산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붕괴의 이유는 몇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무엇보다 실질적인 권력이 후계자 김정은에게 이양될 경우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려워 북한 내 집권층이 방향성을 잃을 위험이 있다. 게다가 북한 내 핵심 관료조직들끼리 충돌할 수도 있다. 새로운 국제 환경하에서 북한이 살아남으려면 대외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외부로부터의 지원을 수용하려는 관료들과 이를 거부하는 군부 세력 간에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현 정권이 무너질 거라는 얘기인가.
“폐쇄적인 김정은 체제는 20년을 못 버틸 것이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하는 데 성공했던 1994년 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그때는 중국과 러시아 모두 제대로 된 시장경제를 구축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 세계가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지향하고 있다. 이런 세계적 추세를 받아들이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으며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북한의 현 정권이 붕괴하면 북핵 문제 해결이 훨씬 더 쉬워질 거라고 IMEMO 보고서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그 이유는.
“지금의 북한 정권은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리비아 카다피의 몰락 등을 비롯한 여러 사건으로 인해 절대 핵무기를 버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을 것이다. 카다피는 비핵화 조치를 취했지만 말년에 서방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한반도를 지나는 가스관이 설치되면 러시아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현 단계에서 한반도 가스관 사업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지금의 북한 정권이 교체되지 않는 한 북한을 통과하는 가스관이나 철도가 설치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15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들 사업을 열렬히 지지했다. 러시아 정부와 기업들도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불확실한 이유로 그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설사 가스관이 설치돼도 러시아가 이를 정치적 무기로 활용할 가능성은 없다. 러시아 가스회사인 가스프롬부터 극력 반대할 거다. 우크라이나와 빚어졌던 가스 마찰도 동유럽 언론의 과장 보도 때문에 빚어진 측면이 없지 않다. 또 우크라이나 쪽에 사건의 책임이 작지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가스관 사업이 실현되려면 막대한 규모의 자본과 인적 자원이 투입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를 실현시키겠다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데 지금의 북한 정권은 그런 결정을 내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북아 안정을 위해 6자회담 대신 북한을 뺀 5자회담을 제안했는데.
“6자회담이란 이미 만들어진 체제이므로 이를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다. 북한이 참여하지 않더라도 나머지 5개국이 안보 아닌 다른 현안도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 예컨대 동북아에서의 어업문제, 환경문제, 긴급구호를 위한 협력방안 등 얼마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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