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에너지자원협력대사 “아인혼의 이란 제재 압박, 한국인 정서 고려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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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현 외교통상부 에너지자원협력대사가 18일 미국의 이란 제재 요구에 대해 의견을 밝히고 있다. [김성룡 기자]

미국의 대이란 제재 동참 요구에 “합리적인 명분을 대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가 있다. 국내 대표적인 ‘이란통’ 신재현(66) 외교통상부 에너지자원협력대사다.

그는 2008년 대외직명대사로 임명되면서부터 이란을 24번 방문했다. 이 때문에 현지 정·재계 고위층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인물로 유명하다. 이런 인맥을 바탕으로 지난해 한국·이란 경제인협회를 만들어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18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에 있는 협회에서 신 대사를 만났다.

 “로버트 아인혼 미국 국무부 대북·대이란 제재 조정관이 와서 이미 실패한 북핵 정책을 이란과 연계하며 제재에 무조건 동참하라고 하면 젊은 사람들이 이해하겠습니까. 미국은 합리적인 명분, 즉 그에 응하는 대가를 분명히 내놔야 합니다.”

 인터뷰 첫머리부터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이 자국법만으로 국제사회에 대이란 제재 요구를 하고 있는 데 응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주장이다. 뉴욕대를 나와 뉴욕주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신 대사는 “나는 철저히 친미주의자지만, 젊은 세대와 내 세대는 다르다. 이 일을 빌미로 또 하나의 반미 운동이 일어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란 제재에 동참하라는 미국 정부의 요청이 거세지고 있다. 사진은 이란 테헤란시의 한 정유 공장에서 직원이 파이프를 고치는 모습. [테헤란 AP=연합뉴스]

 -우리 정부는 이번 제재안을 최대한 수용한다는 입장인데.

 “우리가 미국에 너무 약하다. 이전에는 미 대사관이 툭하면 우리 정유사 원유 수입 담당에게 전화해 공갈 비슷한 걸 했다고 들었다. 정유사 직원이 미국 입국할 때면 한 시간씩 잡아놓는다더라. 지난해 중앙일보에서 이를 놓고 내정간섭이냐는 사설을 써서 이제 거의 없어졌다 들었다. 미국이 북핵을 근거로 들지만 실패한 정책이다. 명분이 될 수 없다.”

 - 그렇다고 안을 거부하기엔 부담이 크다.

 “우리 국민의 분위기가 달라지면 미국도 강요 못한다. 원유 수입을 줄일 경우 경제에 타격이 미치고, 이로 인한 한국인의 저항감이 생긴다는 우려가 있으면 건들지 않을 거다.”

 -이번 요구가 국제사회에는 먹힐까.

 “미국은 현재 자국법만을 근거로 이란 제재를 요구하며 전 세계를 압박하고 있다. 이게 가능한 게 달러 때문이다. 미국을 달러라는 글로벌 기축통화 발행국으로 정해 줬더니 이를 오남용하고 있다. 세계경제 지도국이 돼라고 했더니 마음에 안 드는 놈 목 비트는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도 이미 못하겠다고 했다. 유럽은 형식적으로 하겠다고 했지만 유럽연합(EU)의 통제가 엉성해 힘들 거다.”

 -이란이 북한과 핵·미사일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우려도 있다.

 “서방에서는 제재를 가하지 않을 경우 이란이 서남아시아 최고 맹주로 등극할까 봐 두려워한다. 더 솔직하게 이란 문제는 유대인의 문제다. 미국 내 유대인 파워가 세서 이 문제가 더욱 커지는 거다.”

 -이란을 24번이나 방문한 까닭은.

 “에너지자원협력대사로 임명받고 세계지도 펼쳐보니 그나마 서방의 손길이 덜 미친 곳이 이란이더라. 풍부한 자원 매장량, 우리와 비슷한 정서 등 우리 기업이 진출하기 좋은 곳이다. 이란 제재가 풀릴 때를 생각하며 이란에 다녔다. 프랑스가 이란산 원유 수입 끊었다고 하지만 석유화학회사인 토탈이 현지에 그대로 있다. 3M과 코카콜라 같은 수많은 미국 기업이 미 정부의 허가를 받아 현지에서 활동하는 이면이 있다는 걸 우리도 명심해야 한다.”

 -2010년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에 이란 중앙은행 원화 계좌를 만든 일화가 유명하다.

 “미국 제재로 달러 거래가 힘들어졌을 때 생각해 낸 아이디어다. 원래 안면이 있었던 이란 중앙은행 부총재가 2010년에 방한했을 때 우리·기업은행팀과 밤샘 협상을 하게 밀어붙였다. 이 계좌를 통해 원유 수입대금을 원화로 거래하게 됐다. 거래가 편해지니 이란산 원유 거래 점유율이 당시 8%대에서 9.7%로 올라가게 됐다. 실크로드는 결국 상인이 만드는 거다.”

◆신재현=경북 고령 출신.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 뉴욕대 법대를 졸업했다. 2008년 4월부터 외교부 장관 임명직인 에너지자원협력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외교부는 외부전문가를 대외직명대사로 임명해 관련 업무를 지원하게 하고 있다. 오는 3월 대사직 임기가 끝난다. 현재 영남대 석좌교수,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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