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로 손발 묶은 중국 … 지분투자로 호랑이 등에 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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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하나은행은 지린은행과의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을 계기로 구로·신길·대림(서울)·안산(경기)등 4곳에 중국인 전용 창구를 운용하고 있다. 한 고객이 하나은행의 중국 고객 전용 통장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은 본래 정부 규제 업종이지만 중국 경우는 더욱 분명하다. 외자기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겉으로는 차별이 없다고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손발 다 묶인 상황이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 은행들이 교민 비즈니스를 탈피하지 못하는 이유다. 방법은 없을까.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시 중심가를 달리다 보면 유럽 스타일의 고층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지린(吉林)은행 본점이다. 지난해 영국 뱅커스 선정 1000대 은행 중 391위에 오른 은행이다. 입구에 비치된 은행 소개 자료를 보니 ‘한국의 선진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글귀가 보인다. 이 은행의 외국인 주주가 하나은행이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이 지린은행에 투자한 것은 2010년 4월. 3억1400만 달러를 들여 지분의 16.96%를 매입했다.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자는 전략이었습니다. 중국 은행의 발전에도 기여하고, 그 성과를 나누자는 것이지요. 이런 투자를 통해 중국 금융환경을 익히고 현지 인맥을 쌓는 동시에 전문 인력도 키우자는 목적도 있습니다.”

 하나은행에서 파견한 유재봉 부행장의 설명이다. 하나은행은 투자 첫해인 2010년에 배당금으로 9600만 위안(약 180억원)을 받았다. 그 어렵다는 중국에서 아주 좋은 출발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고 유 부행장은 말한다.

 “투자 계약을 맺은 게 2008년 8월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겁니다. 한국 정부가 달러 유출을 막는 바람에 돈을 넣을 수 없었지요. 지린은행으로서는 투자자를 바꿀 수도 있었지요. 하지만 그들은 1년 넘게 기다려줬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신뢰 덕분이었다. 하나은행이 동북 3성(지린·랴오닝·헤이룽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3년이다. HSBC·씨티·스탠더드차터드 등 글로벌 은행들이 이 지역엔 아직 진출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했다. 2004년에는 랴오닝 선양(瀋陽)에 외국계로서는 처음 지점을 개설했다. 그때부터 이 지역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투자 가능성을 탐색했다.

성동격서 전략으로 접근했다. 은행 투자에 앞서 대학부터 우회적으로 공략했다. 지린대학에 ‘하나 EMBA과정’을 만들어 현지 금융전문가 양성에 나선 것이다. 6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 과정은 수업의 절반이 한국에서 진행된다. 지성규 국제전략실 실장은 “하나EMBA를 통해 지린성의 금융 발전에 도움을 주는 은행이라는 인식을 심을 수 있었다”며 “현지의 금융담당 공무원들을 초청해 한국의 은행시스템을 소개하는 기회도 갖는다”고 말했다. ‘먼저 친구를 사귀고 사업은 그 뒤에 한다’는 중국 비즈니스의 금언을 실천하는 셈이다.

 2008년 투자협상의 중국 측 담당자였던 왕훙(王宏) 지린성 금융판공실 주임은 “당시 하나은행이 스스로 투자를 철회하기 전까지는 기다린다는 게 우리 입장이었다”며 “2006년부터 지린성을 드나들었던 김승유 회장을 믿었다”고 말했다. 중국 사업은 CEO가 직접 챙겨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지린은행으로서도 유익한 결정이었다. 류훙쿠이(劉鴻魁) 행장은 “한국 은행들이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고품질 서비스는 모든 중국 은행들이 배워야 할 점”이라며 “개인자산관리(PB)·상품개발·신용카드 분야에서 하나은행의 노하우를 받아들여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상생이 협력의 시작이라는 얘기다

◆특별취재팀 호찌민(베트남)·자카르타(인도네시아)·홍콩=심상복, 지린성(중국)=한우덕, 마드리드(스페인)·헬싱키(핀란드)=안혜리 기자
◆공동취재=하나금융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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