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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사로잡은 감동의 쿠바선율

중앙일보

입력

1996년 쿠바 수도 아바나의 허름한 스튜디오. 수십년 전 음악과 함께 인생의 전성기를 맞았던 아바나의 노장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세월의 풍파는 얼굴 가득 골 깊은 주름을 남겼지만 그 사이로 보이는 눈빛은 평생을 기다려온 순간을 맞은 기쁨과 감회가 가득했다. 곧 이어 정열적인 라틴 선율이 흐르고, 먼지 속으로 사라질 뻔한 아름다운 연주가 세계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Chan Chan
De Camino a La Vereda
Pueblo Nuevo
Venite Anos
Orgullecida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은 97년 출시와 함께 지구촌에 쿠바 음악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블루스 기타리스트이며 프로듀서로도 정평이난 라이 쿠더가 제작한 이 음반은 제3세계 음악으론 드물게 2백만장 이상의 판매고을 올렸고 98년 그래미 시상식 '베스트 트로피컬 뮤직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국내에는 최근 라이선스로 발매됐다.

1498년 스페인 령 편입 후 아프리카 노예들의 토속 리듬과 스페인·쿠바의 고유 음악이 결합해서 생겨난 '아프로-쿠반 뮤직'은 중·남미 음악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맘보·차차차·룸바와 최근 가요계에서 열풍을 일으킨 살사가 모두 쿠바의 거리에서 생겨난 음악들이다.

30∼50년대 쿠바 음악의 황금기를 주도했던 연주자들이 참가한〈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현대 쿠바 음악의 정수를 함축한 음반이다. 93세의 기타리스트 콤파이 세군도의 최근작 '찬 찬(Chan Chan)'을 비롯, 이브라힘 페레의 부드러운 보컬이 인상적인 '데 카미노 아 라 베레다(De Camino a la Vereda)', 루벤 곤살레스(81)의 도회적인 피아노 연주가 돋보이는 '푸에블로 누에보(Pueblo Nuevo)' 등 수록곡 모두에 풍부하고 정열적인 특유의 매력이 가득한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그 유장한 선율만큼이나 가슴 뭉클한 뒷 얘기도 팬들을 사로잡는다. 혁명 전인 50년대 아바나의 클럽을 주름잡던 볼레로 가수 이브라힘 페레는 이 음반에 참여하기 전까지 생계를 위해 구두를 닦았다. 라이 쿠더에게 "금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아프로-쿠반 뮤직'과 '셀로니어스 몽크'를 넘나든다"는 극찬을 받은 루벤 곤살레스는 녹음 내내 가장 먼저 스튜디오에 나와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고 온종일 피아노 앞에만 머물렀다. 현대 쿠바 음악의 개척자로 추앙 받는 그도 피아노가 없어서 몇 해전 연주를 그만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 음반의 성공으로 생애 첫 솔로 앨범을 갖게 됐고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노년을 보내게 됐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정신적 지주인 콤파이 세군도는 이제 '세기의 음악가'로 팬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시골 출신임을 알리기 위해 무대에서 카우보이 모자를 쓰는 엘리아데스 오초아(44), 스튜디오에 들렀다가 우연한 기회에 음반에 참여한 여가수 오마라 포르투온도(70)의 노래도 세계적인 사랑을 받게 됐다. 아바나의 거리가 평생의 활동 무대였던 이들은 암스테르담과 뉴욕 카네기홀에서 성공적인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한편〈파리 텍사스〉에서 라이 쿠더와 인연을 맺은 독일 감독 빔 벤더스 98년 이브라힘 페레의 솔로 음반작업과 〈브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멤버들의 뉴욕 공연 실황을 카메라에 담아 99년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었다. 국내에는 오는 11월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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