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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칼럼

카리스마와 거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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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조셉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

2012년 중국과 러시아 두 곳의 리더십 변화가 예정돼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은 무난히 당총서기에 오를 것으로 보이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대선 재도전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반면 민주주의 국가의 선거는 결과를 쉽게 점칠 수 없는 상황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재선을 향한 여정은 험난해 보인다. 지난 2008년 미 대선 당시 ‘대중을 매혹하는 카리스마’로 승리한 오바마의 재선이 불확실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개인의 특성, 처한 상황, 그리고 지지자들로부터 카리스마가 나온다고 분석한다. 물론 이를 미리 예측하기는 힘든 측면이 있다. 선거전략가 딕 모리스는 “현실이 아닌 인식상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카리스마를 규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밝혔다. 많은 언론이 최고경영자(CEO)의 실적이 좋을 땐 ‘카리스마가 넘친다’고 말하다가도 실적이 떨어지면 슬그머니 그 표현을 빼 버리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정치학자들은 후보들의 명성과 카리스마의 상관관계를 밝혀내려고 노력해 왔지만 아직까지 눈에 띄는 성과는 없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카리스마로 유명했다. 하지만 재임 기간 내내 지지율이 오락가락한 걸 보면 모두가 그에 동의하진 않았던 것 같다. 린든 존슨을 비롯해 웅변가로 유명한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마저 ‘카리스마 부족’ 평가를 받기도 했다. 카리스마는 사후 평가가 더욱 용이한 편이라 이를 근거로 누가 다음 대권을 쥘 것인가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개인과 사회의 위기가 심화되고 변화에 대한 갈망이 커질수록 지지자들은 리더에게 카리스마를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1939년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카리스마가 있는 리더로 여겨지지 않았다. 1년 후 총리가 된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 밀리던 자국군을 구출해낸 ‘됭케르크의 기적’을 일굼으로써 ‘카리스마’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45년 종전과 함께 복지에 초점이 맞춰지자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카리스마가 사라졌다기보단 대중의 요구(needs)가 바뀌었을 뿐이다.

 외모나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카리스마를 측정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 프린스턴대는 사람들에게 낯선 후보 사진 두 장을 보여주면 열에 일곱은 승자를 골라낼 수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하버드대도 비슷한 실험을 했다. 10초짜리 무성 연설 영상 58개를 보여준 결과 실험자의 80%가 당선된 후보를 맞힌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리와 함께 영상을 보여주자 예측률은 급격히 떨어졌다.

 다시 2008년 대선으로 돌아가 보자. 미국이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과 경제위기에 환멸을 느낄 때 오바마라는 젊고 매력적인 후보가 등장했다. 그가 말한 ‘담대한 희망’은 카리스마를 덤으로 선사했다. 하지만 그 역시 영원 불변한 것은 아니었다. 카리스마는 마치 거울과 같아서 경제가 악화되고 실업률이 높아지고 행정 수행 능력이 떨어지면 뿌옇게 번져서 알아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카리스마는 해당 후보에 대해 말해주는 듯하지만 현재 국가 상황이나 변화에 대한 열망 등 우리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특히 불경기는 카리스마 유지를 힘들게 하는 장애물로 작용한다. 오바마와 사르코지가 높은 실업률로 야당의 지탄을 받는 것도 같은 이치다. 그들이 다시 절충된 레토릭을 들고 대선에 나설 것이다. 올 선거야말로 그들의 진정한 카리스마 시험장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조셉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
정리=민경원 기자 ⓒProject Syndi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