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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나라당 보면 안쓰러운 이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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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호 02면

요즘 한나라당 보면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데 무려 170석 이상을 갖고 있던 집권당이 어쩌면 저렇게 순식간에, 철저히 무너질 수 있는 건지 거의 미스터리 수준이다.

돌이켜보면 망가지는 데 불과 석 달도 안 걸렸다. 시작은 지난해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였다. 무소속 박원순 후보는 53.4%를 득표해 46.2%를 얻은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꺾었다. 전임 오세훈 시장이 물러나는 바람에 선거가 치러졌으니 여당이 힘들 거라는 건 누구나 예상했었다. 게다가 야당인 민주당은 후보조차 못 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가 손가락질하면서 상대방을 비방하기에 정신 없었다. 선거 패배의 아픔보다 서로 공격하느라 주고받은 상처가 더 컸다.

안철수 바람도 마찬가지다. 안씨의 인기가 높긴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김정일 사망 이후 지지도가 주춤하고 있고, 또 민주당으로 갈지 아니면 제3당을 만들겠다고 나설지 알 수도 없다. 하지만 친박은 지레 겁을 먹고, 반(反)박은 그 틈을 타, 서로 책임을 전가하느라 우왕좌왕하고 있다.

요즘 한나라당을 초토화시킨 돈봉투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그게 한나라당에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건 알 사람은 다 안다. 민주당에선 내부 자성의 목소리가 좀 나오는가 싶더니 쑥 들어갔다. 입 딱 다물고 한나라당 망가지는 걸 구경 중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 입장에선 국민에게 잘못을 진심으로 사죄하고, 그게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권 전체에 만연된 관행이었음을 고백하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어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지 보여줬어야 한다. 그럼 전화위복이 됐을 거다. 유권자 입장에선 모른 체 시침 뚝 떼고 있는 민주당이 더 얄미웠을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이번에도 역시 제도 개선은 뒷전이고 서로 치고받느라 정신 못 차리고 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해충이 다 죽어야 작물이 잘 큰다”며 반대파를 겨냥했다. 이재오 의원은 “2007년 대선 경선 때의 돈 살포도 검찰에 수사의뢰하라”며 박 위원장 측을 물고 들어갔다. 이건 같은 당 사람들끼리 할 수 있는 발언의 수준을 이미 넘었다. 정당은 정치적 견해가 같은 이들의 모임이다. 요즘 한나라당 사람들을 보면 서로 원수처럼 행동한다. 한나라당을 지지했던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로선 참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정당이 무너지는 건 어찌 보면 정의(正義)에 부합한다. 하지만 한때 국민의 적지 않은 지지를 받았던 정당이 사실은 이렇게 한심했다는 걸 확인하는 과정은 참으로 고통스럽다. 평화적 정권 교체가 이미 여러 번 이뤄졌는데 한국 정당정치의 수준은 여전히 이 정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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