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개혁자, 궁예 다시 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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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ins.com 오현아 기자

애꾸눈에 험상궂은 인상, 죄 없는 백성을 역모로 몰아 수백 명씩 죽이는 살인마, 왕건에게 쫓겨나 도망가다 백성에게 처참하게 살해 당한 폭군.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알려진 궁예의 이미지는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삼국사기〉와 〈고려사〉등 역사서에 나타난 궁예의 모습이기도 하다.

방송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궁예의 본 모습을 찾아보려는 데에 학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관심의 초점은 고려 시대 역사 편찬가들이 왕건의 역모를 정당화하기 위해 궁예를 의도적으로 왜곡했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에 태조 이성계와 조선 왕조에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
해 고려 우왕을 미치광이로 묘사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이재범 경기대 교수의〈슬픈 궁예〉(푸른역사 펴냄)는 역사적 자료와 풍부한 민담 등을 통해 '궁예 바로 세우기'를 시도한다. "과거의 사실은 변하지 않아도 역사는 바뀔 수밖에 없다"면서 궁예에게 덧입혀진 옷을 하나씩 벗겨나간다. 역사적 패자인 궁예를 정신이상자로 낙인 찍은 정사를 삐딱하게 바라볼 때 '궁예 바로 보기'가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임재범 님이 바라보는 궁예는 한마디로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했던 실패한 개혁가다. 견훤이나 왕건처럼 신분이 좋지 않고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낸 궁예에게 현실의 모순은 더욱 첨예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고려를 세운 뒤 궁예가 시도한 개혁 정책이 기득권 세력의 강
한 반발을 산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왕건이 왕위에 오른 것은 궁예에 대한 '역모'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것도 30세부터 왕이 되기 위하여 오랜 시간에 걸쳐 계획적으로 꾸민 역모라고.

궁예에 대한 역사적 억측은 그의 출생에서부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러가지 가정이 있지만 임재범 님은 궁예를 선조로 삼는 순천 김씨의 족보를 참고해 궁예가 신무왕의 아들이거나 장보고의 외손자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또 〈삼국사기〉에 그려진 것처럼 태어나면
서부터 애꾸눈에 이가 돋았다는 악의적인 기록도 재해석한다.

어린 시절을 절에서 보낸 궁예가 '난세의 영웅'으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궁예가 덕장·지장으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가졌기 때문이다. 강하게 나갈 때를 알고 회유할 때를 아는 유연성, 사졸까지 끌어 안는 포용력.〈삼국사기〉에서조차 궁예가 "사졸과 함께 달고 쓰
고 힘들고 편안함을 같이 하며, 주고 빼앗고 하는 데 있어서도 공(公)으로 하고 사(私)로 하지 아니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임재범 님은 궁예의 성격을 말년의 극악무도함으로 대표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한다.

그렇다면 궁예는 왜 몰락한 것일까. 임재범 님은 궁예가 실정(失政)으로 몰락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원인이 궁예의 포악함이 아니라 그 당시 정치 사회 현상에 있음을 강조한다. 공명정대했던 궁예가 말년에 갑자기 변한 것은 개혁을 반대하는 수구 세력으로부터 압박을 받았기 때문이라고.〈삼국사기〉에서 서술하는 것처럼 역사의 변화를 개인의 심성만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궁예에 대한 정사와 민간전승의 기록이 가장 엇갈리는 것은 궁예의 비참한 최후에 대한 기록 부분이다.

"왕건이 변복을 하고 북문으로 도망쳐 나가자 궁녀들이 궁 안을 깨끗이 하고 태조를 맞아들였다. 궁예는 산골로 도망하였으나 이틀 밤이 지난 후 배가 몹시 고파서 보리이삭을 잘라 훔쳐먹다 바로 부양 백성들에게 살해되었다." (이 책 202쪽)

〈고려사〉에 전하는 기록이다. 그러나 철원 지역의 민간 전승은 이와 다른 사실을 전하고 있다. 즉 궁예는 보리이삭을 먹다 백성들에게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천명을 알고 이에 순응하여 자결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 민담은 궁예를 기억하고 기리려는 민중의식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역사는 서술자의 주관이 개입되는 만큼 시대에 따라 바뀐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의로운 혁명이 반역으로 몰리기도 하고, 쿠데타가 정당화되기도 하는 질곡의 세월이었다. 하물며 몇 천 년 전의 과거 사실을 왕조의 이해가 반영된 정사의 기록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궁예를 미화한 점이 없지 않지만 임재범 님의 '궁예 다시 보기'가 의미 있는 것은 민간전승 등 다양한 실증 자료를 통해 왜곡된 정사를 바로잡으려는 노력 때문이다. 고려시대의 역사서에 그려진 것처럼 왕건은 '좋은 놈', 궁예는 '나쁜 놈' '치사한 놈'이 아니다. 의로운 덕장이자 실패한 개혁가일 따름이다.

끝없이 살아 숨쉬는 역사 속에서 역사 왜곡 따위의 조작으로 영원한 '성군(聖君)'도 또 영원한 '폭군(暴君)'도 만들어질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하는 시절이다.

▶궁예 관련 책들

*궁예 상,중,하 (강병석 지음, 태동출판사)
*궁예, 진훤, 왕건과 열정의 시대 (이도학 지음, 김영사)
*태조왕건과 궁예와 견훤(허순봉 엮음, 태서출판사)
*슬픈 궁예(이재범 지음, 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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