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길 수밖에 … 눈물로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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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문동연씨가 자신의 집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심경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수 십 년간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며 소를 키워 왔어요. 하지만 지난 2년은 눈물로 살았습니다. 소를 끌어안고 울고 지샌 밤이 셀 수 없어요.”

 사료값을 감당 못해 소를 굶겨 죽이고 있는 문동연(56·전북 순창군 임계면 노동리)씨. 문씨는 “ 소들과 운명을 함께 하겠다”며 울먹였다. 문씨의 농장에서는 지난달 이후 20여 마리의 육우(젖소 수컷)가 굶어 죽었다. 남은 40여 마리도 죽기 직전이다.

 “‘일부 소를 팔아서라도 굶어 죽는 걸 막아야 하지 않나’ ‘소를 굶기는 것은 동물 학대다’는 지적과 비난도 들립니다. 나 역시 사료를 도둑질해서라도 소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

 문씨는 한때 잘 나가다 소를 굶겨 죽일 정도로 벼랑으로 몰리게 된 사연을 털어놨다. 그는 40여 년 전 소 3마리로 축산업에 뛰어들었다. 집 옆에 축사를 짓고 밤낮없이 돌보는 등 정성을 다한 덕분에 소는 계속 늘고 살림도 불었다. 지난해엔 150마리의 ‘대식구’를 거느렸다. 자식 넷을 모두 대학까지 보내면서 동네 주민들한테 부농으로 불리며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2~3년부터 전국의 소 사육이 급증하면서 가파른 내리막이 시작됐다. 특히 값싼 외국산 쇠고기가 밀려 들어오면서 420만원에 거래되던 700㎏짜리 육우가 200만원 대로 뚝 떨어졌다. 반면 사료값은 20~30%가 껑충 뛰면서 농장 경영이 극도로 나빠졌다.

 게다가 농협 등에서 빌린 대출금은 눈덩이처럼 쌓여갔다. 2년 만기로 빌린 8000여 만원이 대출 기일을 넘기자 이자가 연 1%에서 15%까지 치솟았다. 빚은 순식간에 1억5000만원으로 불었다. 지난해 논을 팔고, 노후를 위해 들었던 보험을 모두 해약해 1억원을 갚았다. 하지만 남은 5000여 만원을 해결할 길이 없다. 소 사료를 살 돈이 없어 3~4개월 전부터 쌀겨·옥수수를 섞어 여물을 주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지난달부터는 더 버틸 수 없는 상황에 부딪혔다.

 문씨는 “도청과 군청 등에서 사료를 대 주겠다고 하지만, 1~2주일 소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 다음 대책이 없어 지원을 거부했다”며 “축산을 장려하고, 사료값까지 빌려준 정부가 책임을 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개인적으로는 소를 팔아 버린 뒤 농장 문을 닫고 농촌을 떠나고 싶지만, 축산농가의 어려운 상황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소들이 다 죽어 나갈 때까지 축사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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