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사기"

중앙일보

입력

제일 먼저 본 것은 로댕 갤러리 앞 마당의 자동차 설치 작품이었다(사진). 은색 칠을 한 20세기 초반의 자동차 여덟대가 둘러서 있었다.

어디서 이런 차들을 구했나 하고 자세히 보니, 완벽한 옛날 차들이 아니라 타이어를 비롯한 많은 부품들은 요즘의 것들이었다.

과연 백남준이었다.쓰레기를 골동품으로 만들어내는 백남준의 번뜩이는 재치와 능청에 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1930년대에 금강산 가족 나들이를 갈 때 그런 모델의 차를 타고 갔던 것일까? 가버린 어린 시절과 그 때의 사람들에 대한 애도를 표시함인지 자동차 안에서는 모차르트의 진혼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찌그러뜨린 자동차의 덩어리를 그대로 제시하는 20세기의 거장 세자르와 또 다른 측면에서 대비가 될만한 자동차 작업이었다.

로댕 갤러리 안, 자원봉사 안내원의 설명은 들을 만했다. 그런데 '몽고의 텐트'에서 그 안의 못생긴 부처에 대한 설명이 다소 미흡했다.

설명이 끝난 뒤 안내원에게 나의 견해를 들려주었다.

그 못생긴 부처들은 바로 요제프 보이스를 구해준 텐트 안의 주민들이 아닐까하고.

비행기 추락사고를 당한 요제프 보이스를 구해준 그들이야말로 자비행을 실천하는 관음보살이며, 조난 중 황야의 코요테 울음 소리 속에서 음에 대한 새로운 혜안을 뜨게 되었으니 그 텐트야말로 깨달음의 사원이 아니었겠냐고. 백남준의 정신적 스승이자 예술적 동료였던 보이스에 대한 훌륭한 추모가 되고도 남았다.

'감미로움과 숭고함' - 바닥에는 백남준 특유의 비디오 편집을 보여주는 모니터가 여러 대 설치되어 있고, 천장에는 돔 형태의 프로젝션 스크린에 레이저 광선이 태극무늬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반복해 내고 있었다.

나는 고속터미널에서 산 5천원짜리 레이저 포인트를 꺼내어 스크린에다 이리저리 비추면서 무늬를 만들어 그어보았다.

백남준의 레이저 작품에 내가 레이저 장난을 친 것이다.

견고하게 결합시킨 그의 설치 작품 한켠에다 낙서같은 페인팅을 하는 백남준의 습관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전시장 질서 유지를 맡은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이 스크린에다 이런 장난을 하면 백남준씨가 좋아할 것 같아요, 싫어할 것 같아요?" 맡은 임무에 충실한 학생은, "당연히 싫어하겠죠"라고 대답했다.

좀 있다가 자원봉사 안내원에게 물어보았다.

"백남준씨가 좋아할 것 같은데요." 그녀는 역시 미술사를 공부하는 아가씨였다.

젊은 시절, 독일에서 퍼포먼스 도중 관객석에 있는 요제프 보이스의 넥타이를 잘라버린 전위예술 행동대원이었던 백남준, 그는 이제 세계적인 권위가 되었다.

기존의 권위를 부정하고 그것에 도전하는 아방가르드가 그 자신 권위가 되어버렸을 때 스스로 느끼게 되는 아이러니. 그것을 백남준은 "예술은 사기"라고 한 것이 아닐까. "당신이 예술을 보지 않고, 예술의 권위만을 본다면 당신은 사기당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백남준의 말을 풀어 본다.

백남준의 권위와 명성만을 볼 것인지 백남준을 통해 예술을 만날 것인지, 그것은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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