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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27세 이준석, 경박한 젊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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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지혜롭고 용기 있는 젊은이를 갈망한다. 그런 젊은이는 새벽 냉수처럼 잠든 의식을 깨워주기 때문이다. 이런 욕구에 부응한 대표적인 이가 오바마다. 2004년 43세 지방의원 오바마는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로 국민 앞에 등장했다.

 17분… 오바마의 인생과 미국의 기대가 걸린 시간이었다. 하버드 출신 오바마는 준비하고 또 준비했다. 과감하지만 반듯하고, 대담하지만 튀지 않는 연설을 위해 모든 내공을 바쳤다. 오바마는 국가의 개혁과 통합을 역설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전당대회 사상 최고 연설 중 하나”라고 평했다. 4년 후 오바마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됐다. 미국 민주당의 ‘젊은 실험’이 성공한 것이다.

 박근혜 비대위도 젊은 실험을 단행했다. 하버드를 나온 27세 IT(정보기술) 전문가 이준석 위원이다. 비대위는 한나라당을 넘어 한국 정치개혁의 실험이기도 하다. 그래서 국민은 젊은 비대위원에게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용모·경력·패션 그리고 언행을 모두 지켜보았다. 관심의 열기로 보면 ‘미국 전당대회 기조연설자’ 못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의 실험은 실패 쪽으로 굴러가고 있다.

 이준석 위원은 기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비대위원은 사회에 노출되는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그렇다면 언행에 신중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지식이 정확한지 검증하면서 파장을 헤아려 말해야 한다. 오바마는 하버드 법대 편집장에다 변호사·인권운동가·주(州) 상원의원을 지냈다. 나이도 43세였으니 나름대로 상당한 지식과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자신이 잘 모르는 걸 쉽게 얘기하지 않았다.

 27세 이준석은 이제 겨우 인생의 문턱을 넘어섰다. 전공도 IT라 정치·역사·이념·사회에 대해선 지식이 많이 부족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온갖 문제에 입을 연다. ‘총리실 국무조정실장’이나 되는 것 같다. 문제의 전후 사정도 모르고, 사회의 기본 가치에 무지하며, 발언의 부작용도 고려하지 않는다. 연예인이 된 것처럼 TV·라디오·신문을 뛰어다니며 개인 의견을 마구 쏟아낸다. 당의 최고위원회가 왜 봉숭아 학당이란 소리를 들었는지 그는 모르는 것 같다.

 2007년 대선 때 BBK 사건을 수사한 건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 지휘부였다. 한나라당 입김이 들어갈 여지가 없었다. 수사 결과 BBK 소유주는 문서를 위조한 김경준이며 이명박 후보는 주가조작과 관련이 없다는 게 드러났다. 민주당이 강행한 특검이 이를 다시 확인했다. 정봉주 전 의원이 감옥에 간 것은 사실과 다른 허위사실을 유포했기 때문이다. 선거 때 허위를 퍼뜨리면 유권자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더욱 해롭다. 그런데도 이준석 위원은 “언론 자유 측면에서, 제가 (정 전 의원이라면) 답답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마치 그가 억울한 것처럼 말한 것이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사실도 제대로 모른 채 대통령 음해 세력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일부 판사가 SNS에서 대통령과 정권을 조롱했다. 이에 대해 이 위원은 “판사들의 사회적 지위가 있지만, 그분들의 언론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판사들은 언행에서 왜 제한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도 없는 무지한 발언이다. 이 위원은 “4대 강 사업이 진짜 잘된 것인지 현장에 가보자”고도 했다. 미국에서 토목·치수 공학을 전공한 전문가들이 추진하고, 이미 홍수 방지 기능이 입증된 사업을 IT 전문가가 현장에 가서 어떻게 검증하겠다는 것인가. 다른 비대위원인들 현장에 가면 알 수 있을까.

 이준석 위원의 언행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비대위 품위, 박근혜 위원장의 선구안(選球眼), 그리고 한나라당과 한국 젊은이의 수준이 걸려 있는 것이다. 일찍이 철학자 플라톤은 이렇게 말했다. “젊은 시절에는 가장 중요한 일을 판단하는 자리에 앉지 마라.” 스코틀랜드 소설가 J M 배리는 이런 역설로 젊은 만용(蠻勇)을 경고했다. “나는 모든 것을 알 만큼 젊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