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버블...그후"

중앙일보

입력

설사 지금이 버블이라 하더라도 급작스런 자본의 퇴각은 그 피해를 더욱 확대할 뿐이다. ‘묻지마 투자’의 반대말은 ‘묻지마 퇴각’이 아니라 ‘양식 있는 투자’일 것이다. 인터넷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옳다.

일시적 투자붐·몰락은 산업 발전 저해

인터넷 버블론이 화제다. 마침 삼성경제연구소의 김재윤씨가 역사상의 버블 현상에 관해 흥미로운 자료를 내놓았다. 여러 사람이 두루 볼 가치가 있어, 그의 자료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16세기 중반 경 튤립은 네덜란드에서 퍼져나가 유럽 정원의 중심에 자리잡았다. 종종 바이러스에 감염돼 색깔이 희귀한 튤립이 나타났는데, 이 튤립은 다른 것보다 값이 비쌌다. 1634년 이전까지 튤립 구근 시장은 주로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졌으나, 그 후부터 일반인들이 거래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1636년이 되면 암스테르담 외에 지방 도시에까지 튤립 구근 시장이 열리게 되고, 일반인들도 튤립에 투자해서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팔아 튤립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희귀한 뿌리들의 값이 터무니없이 뛰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셈퍼 아우구스투스라는 튤립은 한 뿌리에 요즘 돈으로 1천7백만원에 거래가 됐다. 한 달 새 50배나 값이 오르는 경우도 나타났다. 급기야 튤립이 온 네덜란드를 뒤덮고,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1637년 2월 5일, 튤립 값은 최고치의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1830년도의 철도는 20세기의 인터넷과 비슷했다. 수송 시간과 수송에 드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어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고, 석탄, 철강, 엔지니어링, 목재산업 등 연관 산업의 발전을 유도했다. 1830년대에 들어서면서 철도회사 설립이 붐을 이루고, 투자도 급증했다. 주가가 급등하고, 신규 노선의 건설을 위한 투자도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경쟁사의 난립으로 철도 회사의 이익률이 점점 떨어지고, 주가가 천장에 도달하자 드디어 투매가 시작됐다.

1849년 철도 주가지수는 1843년의 반 토막도 못됐다. 존 프란시스는 1851년 자신의 책에다 “언론이 투기를 부추기고, 정부는 이를 용인했으며, 사람들은 주저없이 투자했다”라고 썼다.

한국에서도 요즘 버블론이 한창이다. 버블론과 함께 4월경부터 시작된 인터넷기업 ‘몇 월 대망(大亡)론’은 5월, 7월, 10월로 달을 바꿔가며 테헤란밸리를 떠돌고 있다. 몇 번이나 달을 바꾸고도 살아 있는 것을 보면 마치 대망(大望)론처럼 들리는 구석도 없지 않다. 실제로 “기존 세력들이 신흥 경제 주체의 발아를 막기 위해 위기론을 의도적으로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음모론도 들린다.

그러나 일리가 있다고는 하더라도 그렇게만 몰기는 어렵다. 이런 현상은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고급 의류 판매 사이트로 주목받던 부닷컴이 1년 반 만에 1천3백억원이 넘는 돈을 쓴 뒤 도산했고, 디즈니가 투자한 장난감 판매 사이트 토이즈마트도 사업을 중단했다. 지난 해 12월 이후 최근까지 미국의 인터넷기업에서 해고된 직원 수는 5천명이 넘는다.

2000년 한국의 인터넷은 버블인가?

우선 지금 인터넷 분야는 버블의 한가운데 있는가, 혹은 새로운 정보 혁명의 초창기에서 자원이 한꺼번에 빠져나가 버리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전략적 실수가 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한다. 두 번째로 버블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전문가들의 평가도 이 점을 두고서는 크게 엇갈린다.

튤립 버블이 오로지 수많은 가정의 황폐화와, 네덜란드 전국토의 튤립밭화(化)만 남기고 꺼졌다면, 철도 버블은 수많은 관련 산업의 발전과, 전 국토에 깔린 철로라는 인프라를 남겼기 때문이다.

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바이오테크 버블도 “상당수 기업들이 도산하면서 투자자들이 어려움을 겪기는 했으나, 결국 살아남은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주도할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좋은 계기가 되었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반면 세계적인 석학 피터 드러커씨는 “버블이 결과적으로 산업 및 기업의 장기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의 산업이 자리잡는 데는 수십 년간의 이행 과정이 필요한데, 일시적인 투자 붐과 몰락은 산업 발전을 오히려 더디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어느 편이 옳은가? 나의 의견을 말하라면, “설사 지금이 버블이라 하더라도, 급작스런 자본의 퇴각은 그 피해를 더욱 확대할 뿐”이라는 것이다. ‘묻지마 투자’의 반대말은 ‘묻지마 퇴각’이 아니라 ‘양식 있는 투자’일 것이다. 인터넷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옳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