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과학 영재들을 의대로 몰아넣는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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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2012학년도 서울대 수시모집에 최연소 합격한 과학영재가 이공계 학과를 포기하고 다른 대학 치대에 진학했다. 서울대 이공계에 수시합격한 또 다른 학생의 학부모는 자식을 의대에 보내겠다며 합격을 취소해 달라는 시위를 벌였다. 이공계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물론 이공계 기피는 오래된 숙제다. 몇 년 전에는 포스텍의 수석 졸업자가 의대에 편입하는 바람에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방 의대 입학생의 대학 수학능력 시험 점수가 서울 명문대 이공계 입학생의 점수보다 높은지도 한참 됐다. 그럴 때마다 늘 이공계 위기론이 대두됐지만 이공계 기피 현상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번에도 최연소 합격생은 “더 안정적 미래를 택한다”며 치대로 갔다. 수년 전 포스텍 졸업생이 “이공계 박사 학위를 따고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해서 의대 간다”고 한 것과 판박이다.

 그렇다고 의대가 이공계보다 덜 중요하다는 건 아니다. 의료는 고부가가치 서비스다. 바이오 등 의료산업은 미래의 먹거리 산업이다. 유능한 인재들이 많이 몰려야 한다. 다만 의대 쏠림 현상이 지나치다는 게 문제다. 자칫 제조업 중심의 국가발전 토대가 무너질까 우려된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제조업은 위기다. 중국의 추격이 맹렬한 데다 이를 타개할 창의적 혁신은 태부족이다. 과학 기술에 기초한 제조업의 혁신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우수 인재들이 이공계에 많이 진학해야 한다. ‘미스터 반도체’로 불리는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은 과거 “의대에 가라는 가족의 권유를 뿌리치고 전기공학과를 택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한국 제조업의 신화가 가능했던 것도 황 사장처럼 우수한 인재들이 1960~70년대 이공계에 대거 진학한 덕분이 크다.

 의대에 진학하는 젊은이들의 도전 정신 부족을 탓할 일도 아니다. 그런 사회 구조를 만든 건 기성세대들이다. 청년들이 이공계 진학을 선호할 만한 환경을 만드는 게 시급하다. 말로만 하지 말고 정말 실천해야 한다. 노벨 과학상보다 ‘이공계 하기 좋은 환경’ 만드는 게 더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