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사건 터지고서야 학교 폭력 뒷북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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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상
사회부문 기자

경찰청은 지난해 12월 31일 ‘학교폭력 단속을 강화하라’는 공문을 각 지방청 수사·형사과에 내려보냈다. 생활안전 담당이 아닌 강력계 형사 등을 학교폭력 단속에 투입하고 구속수사도 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효과가 있을까. 최근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이 터지자 경찰이 뒷북을 치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

 우선 경찰은 우범지대인 PC방 등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구조적 병폐에서 기인한 학교폭력 문제를 순찰 강화로 해결할 것으로 보는 국민은 많지 않다. 익명 신고를 받겠다는 부분도 그렇다. 신고자 신상 보호가 어떻게 가능할지 경찰 발표만 봐선 믿음이 가지 않는다.

 경찰 대책을 신뢰할 수 없는 건 그동안 경찰이 학교폭력 사건에 안이하게 대처해 왔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의 한 중학생이 집단 따돌림 끝에 자살한 사건에서 경찰은 ‘가해 학생들이 출석하지 않는다’며 수사를 끌다 대구 사건을 전후해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해에는 “더 이상 맞기 싫다”며 찾아온 고교생들을 “우리 관할이 아니다”며 3개 경찰서를 전전하게 했다. 가해 학생을 소환해 빨리 털어놓지 않는다며 뺨을 때린 적도 있다.

 본지는 지난주 경찰의 학교폭력 단속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자 경찰청과 서울경찰청, 일선 경찰관들이 총동원돼 본지 기자들에게 하루 종일 전화를 걸어 “총리실에 보고해야 하니 어느 경찰서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빨리 말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경찰 내부에서 사건 파악조차 못하는 건 둘째 치고, 이렇게 다그쳐댈 정도면 학교폭력 피해자의 신상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궁금하다.

 경찰이 큰 사건이 터진 뒤 뒷북 대책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장례식장 조직폭력배 사건으로 조현오 경찰청장이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했으나 곧 검거 실적을 ‘뻥튀기’한 사실이 드러났다.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으로 경찰에 쏟아진 질타까지 생각하면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과연 몇 점일까.

이지상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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