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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딛고 써 내려간 … 『네 바퀴 속의 소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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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첫 번째 문집 『네 바퀴 속의 소통』을 들고 활짝 웃고 있는 글 동아리 회원들.

삶의 절망 속에서 건져 올린 스무 편의 글들이 문집으로 엮어졌다. 충남여성장애인연대 글쓰기 동아리 회원들이 16일 천안유관순체육관 내 여성장애인 어울림센터에서 『네 바퀴 속의 소통』이라는 제목의 문집 발표회를 열었다.

세상과 소통하는 글쓰기

이날 행사의 주인공들은 올해 3월에 결성, 한 달에 한 번씩 꾸준히 모임을 갖고 글쓰기를 해 온 7명의 여성장애인들이다. 이들은 문집에 발표된 자신의 글을 돌아가며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휠체어에 앉은 채 마이크를 옮겨가며 느리게 진행되는 행사였지만 모두들 진지한 모습으로 경청했다. 이 가운데는 충남장애인신문 생활수기공모전에서 각각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글짓기는 어렵지만 누구나 가능합니다. 어떤 주제가 되었든 진솔한 나의 이야기를 쓴다면 그때부터 이미 글쓰기는 시작됩니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면 됩니다.” 이들에게 글쓰기를 지도한 문남희 지도강사가 가장 많이 해 온 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처음엔 쭈빗거리며 주저하던 회원들이 하나 둘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회원 대부분이 중도장애인으로 어느 날 갑자기 장애인이 된 운명적인 그 날의 사건부터 시작해 어떻게 장애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사연들은 하나같이 애틋하고 눈물겨웠다. 그렇게 조금씩 세상과 소통하며 수필과 시로 쓰여 진 글이 모두 스무 편이다.

하나 둘씩 꺼내니 행복해져

동아리 회장 신연숙(48)씨는 갑작스럽게 한쪽 팔다리에 장애가 온 사연을 담담하게 읽어 내려갔다.

"난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질병으로 인해 장애인이 됐다. 장애 전에는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보통사람들처럼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멋진 아들과 남편, 이렇게 셋이서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노인들만 걸린다는 뇌졸중, 중풍이란 병이 나를 지배했다. 병마는 환호하면서 육체적, 심리적으로 나를 꼼짝 못하게 조여 왔다. 그 후 내 이름 앞에는 장애인이라는 훈장이 붙어 있었다. 그러는 사이 단란한 가정은 소리 없이 사라져버렸다. 남편은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 나를 떠났고, 그 당시 고등학교 재학 중인 아들마저 교통사고로 나를 버리고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하늘나라로 떠나 버렸다. 나는 졸지에 외톨 이요, 고아가 돼버렸다…”

 신씨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 처음에는 글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하나 둘 꺼내어 쓰다 보니 조금씩 편안해졌다. 행복은 내 마음 속에 있더라” 며 환하게 웃었다. 신씨는 여러 회원들의 맏언니 역할을 하며 활발하게 모임을 이끌고 있다.

"포기는 꿈의 문을 닫는 거야”

장애인 국가대표 사격선수를 꿈꾸며 비장애인 못지않게 주도적인 삶을 살고 있는 김형자(37)씨에게도 이번 문집은 의미가 크다. 세 딸의 어머니이기도 한 김씨는 충남장애인신문 생활수기공모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엄마를 대신해 하는 일이 너무 많아 늘 안쓰러운 열 살 난 큰 딸에게 “사격 실력이 늘지 않아 포기하고 싶다”고 했다가 큰딸이 “엄마, 포기는 꿈의 문을 닫는 거야” 라는 말을 듣고 큰 위로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꿈은 이뤄진다’라는 말을 아이들에게 자주 해왔던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 ‘포기’라는 단어를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희귀 난치병으로 소아마비를 앓고 있는 최정자(60)씨의 글은 휴대폰 문자로 받은 글을 받아 적어 시로 완성하기도 했다. 7명의 글 동아리 회원들은 하나같이 몸은 불편하지만 삶을 느끼고 사랑하며 배우는 일에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글쓰기 동아리에 나오면서 마음의 치유와 위로를 받고 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문남희 지도강사는 『네 바퀴 속의 소통』은 몸은 건강하지만 마음의 병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향해 빛과 소금이 될 거라고 말했다. 그는 첫 번째 문집을 낸 지금까지가 ‘네 바퀴 속의 소통’이었다면 앞으로는 나와의 소통, 즉 ‘내 삶의 바퀴’를 스스로 굴리며 글쓰기를 계속 이어나가는 여성장애인연대 글 동아리가 되어주기를 희망했다. 이들의 다음 문집이 기대가 된다.

글·사진=홍정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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