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회 CAN Festival 관람기

중앙일보

입력

한창 올림픽공원에서 19회 ACA가 열리고 있던 8월 중순. ..같은 날 같은 기간 동안 삼성동 COEX에서는 또 하나의 만화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이름하여 '켄 페스티발(CAN Festival)'.

CAN은 ACA의 한 주축이었던 박은실씨가 CAN Production의 이름으로 만든 또 하나의 동인행사로 Comics Art Network의 약어. 상당히 오래전부터 일정이 공지되었었고 준비되어왔으며, 장소가 SICAF를 제외하고 제대로 된 만화행사가 열려본 적이 없는 COEX라는 점에서 많은 만화인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행사 공지에서부터 '회지는 반드시 30% 이상 순수창작이어야 함'을 강조, 자칫 오로지 패러디로 일관되고 있는 현재의 동인활동에 방향제시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었으며 이는 자신들의 성격을 처음부터 확실히 정의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였다.

하지만 그러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CAN은 첫 행사를 열었다는 것 이상의 성과는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 1회 CAN은 성공한 행사는 아니다. 역시 현재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ACA와 기간이 묘하게도 4일 내내 똑같이 겹쳤다는 것은, 처음 열리는 행사에는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ACA는 무료입장이라는 메리트까지 갖추고 있었다. ACA가 Youth Festival과 연계되어 일정 등이 정해지는 바람에 일어난 일로, 어느쪽의 잘못도 아니나 결과적으로는 CAN에 큰 악재로 작용한 것이 사실.

이 여파로 인해 행사장 내부는 다소 한산함을 넘어 썰렁한 느낌. 행사장을 찾는 이들도 많지 않았고, 사람이 모이지 않는 부스를 지키고 있는 동인들은 그다지 의욕있게 홍보전을 펼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상당히 많은 수의 부스가 비어가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범건사' 'POS' 등 인기동인이거나 페이스 페인팅과 같은 흥미거리를 제공하는 부스들에는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역시 행사 취지에 걸맞은 작품들이었는데, 창작을 중심으로 내걸어서였는지 사람이 없는 것만으로 실패한 행사로 이야기하기엔 동인들이 내놓은 회지들이 아까울 정도로 멋진 작품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물론 다수의 동인들이 수준미달의 창작이나 눈가림식 창작(..에 팬시류 전시 중심)을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으나 'Moly Project' 등 몇몇이 내놓은 창작물은 자칫 가벼워질 수 있는 아마추어의 작품 수준을 넘어 잘 짜인 기획과 합동작업으로 빚어진 멋진 모습을 보여주어 지갑으로 가는 손을 가볍게 만들곤 했다.

한편 같은 날 열리는 이유로 양다리를 걸치는(?) 동인들도 없진 않았다. '래블' 등 다수의 동인들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멤버들을 나누어 한쪽은 ACA, 한쪽은 CAN으로 부스를 따로 마련하고 있었던 것.

행사장의 크기는 COEX 3층 대서양관의 전체 1/4 가량을 잘라낸 면적. 전체적으로는 그다지 크다고는 볼 수 없었다. COEX답게, 냉방시설은 상당히 잘 지원되어 행사장 내부는 대단히 시원했다 - 같은 시각 ACA가 열리고 있었던 펜싱 경기장 내부온도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그러나 장소의 규모에 비해 기획된 행사의 음향출력이 너무 큰 탓에 동인행사의 흐름을 헤치기까지 한 것은 두고두고 오점으로 남을 것 같다.

이유인즉슨 '무대에서 인디밴드들이 만화영화 주제가를 부르게 한다'라는 취지로 마련된 라이브 공연무대가 참여한 인디밴드들의 무성의로 인해 만화 주제가가 쏙 빠진 채로 자신들의 메뉴에 맞는 음악을 들려주었던데다 그 공연의 수위가 만화행사장이라는 장소에 맞지 않을 정도로 높아져 결국 동인들의 항의세례가 잇따르게 되었다는 것. 그러잖아도 그다지 많지 않은 인원이 소리가 커지니 무대로 몰리는 바람에 행사장에 사람이 없었으며 무대에 가까운 위치에 있는 동인들에겐 큰 피해가 되었던 것이다. 여러모로 취지에 맞지 않은 행사였으며 밴드들의 성의있는 준비와 장소에 걸맞은 메뉴가 아쉬울 따름이다.

코스프레의 경우 비쥬얼락 계열의 코스튬들이 다수 선보여졌으며 행사 내의 몇몇 동인들이 일본의 뮤지션들을 그려놓은 것과 묘하게 매치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코스튬 플레이어들이 몇 보이질 않았다. 이 또한 ACA의 영향 때문이리라.

묘하게 ACA와 날자가 겹치는 바람에 기획 의도나 참가자들의 동인지 수준 등과는 무관하게 다소 썰렁하게 진행되었던 행사였다. 사람이 없는데 그 이상을 바라기란 어려운 일인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겠지만, 나름의 의도와 나아가야 할 방향 설정 등으로 보면 이번 행사가 악재로 인해 다소 어렵게 진행된 점은 아쉽기만 하다. 내년 1월에 열릴 예정인 2회 CAN에선 이러한 악재가 아닌, 행사 자신만의 독특한 방향설정이 갖추어진 행사로서 제대로 된 또 하나의 행사로서 인식될 수 있길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이 행사에 대한 더 이상의 이야기는 그 때에 가서 이야기해도 늦지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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