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인〉의 서툰 '몸 사랑'

중앙일보

입력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소통에 있어서의 몸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몸 지상주의자' 다. 그러니 만큼 나는〈미인〉이 감독의〈몸〉이라는 원작 소설에 바탕을 두었고, 현대무용가가 몸연출을 맡았으며, 몸의 사랑에 주안점을 둔 영화라는 말에 개봉 당일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하얀 배경에(벽도, 침대도, 화분도, 심지어 선반 위의 카세트 라디오까지 하얗다) 주인공들이 주로 하얗거나 검은 옷을 입고 나오고, 스틸 사진 같이 예쁜 화면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여균동 감독 역시 나처럼 나인 하프 위크의 에이드리언 라인 감독의 열성적인 팬이구나 싶었다.

시작 장면을 되돌린 마지막 장면은 눈 여겨 볼만하다. 텅 빈 방의 빈 의자가 남자의 몸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니까. 여기서 남자는 마치 신처럼 몸의 부재를 통해 목소리로(말씀으로) 존재한다고나 할까.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깔끔한 누드 사진첩처럼 벗은 몸을 예쁘게 보여주는데는 성공했지만, 몸의 아름다움이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데는 실패했다. 주인공들이 계속 몸이라는 단어를 뜬금 없이 들먹거리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몸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입장료가 아까워 슬픈' 멜로물에 가깝다.

'네 몸이 고파. 먹고 싶어. 그럼 먹어'라는 대목이나 씹던 껌으로 서로 남녀 성기 모습을 만들고 시시덕대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이르러서는 나는 그만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어졌다.

사실 영화 상영 도중 객석 여기저기서 '도저히 더 못 보겠다' 라고 불만을 터뜨리며 그만 일어서고 마는 관객이 여럿 있었다.그러나 그 불만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마 '도저히 더 (배우들의 목소리를) 못 듣겠다'는 푸념이었을 것이다.

관객과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이 영화의 치명적인 약점은 주인공들의 어설프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 연기다. 섹시 스타라는 여자(이지현)는 옷 벗고 가만히 있을 때에는 섹시해 보일지 모르지만 일단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하면 섹시함이고 뭐고 다 날아가 버린다.

그러니 남자(오지호)가 "도무지 그녀를 알 수가 없다"고 자조할 수밖에. 그러나 이 독백마저도 마치 초등학생이 국어 책을 읽는 듯해 정말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차라리 성우를 쓰거나 자막처리를 했더라면, 아니면 아예 무성영화로 만들었더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끝으로 의구심 하나. 여자가 알몸으로 바다 속으로 걸어가는 장면에서 화면 오른쪽 멀리 난데없이 나타난 잠수복 차림의 아저씨는 도대체 누구일까? 스탭 중 하나가 실수로 잡혔을리는 없고, 의도적으로 등장시킨 엑스트라일 터인데, 그렇다면 그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