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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쫓던 남녀 대학생 '집단 동거', 5개월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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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13일 오전 11시쯤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있는 한 불법 다단계업체 지하 교육장에서 300여 명의 대학생이 점심을 먹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경찰 단속을 피해 경기도 성남시 은행동 등 인근 지역으로 합숙소를 옮겨 생활하며 매일 오전 6시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곳 교육장까지 이동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강정현 기자]

‘거마대학생’은 사라지지 않았다. 5개 다단계 업체 1700여 명의 학생이 여전히 서울 송파구 거여·마천 지역에 남아 불법 다단계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송파경찰서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합동 실태 점검을 한 결과다. 5개월에 걸친 경찰의 집중 수사로 이 지역 불법 다단계 업체의 합숙소가 113개에서 24개로 줄었다. 이 여파로 한때 5000명이 넘던 ‘거마대학생’이 줄긴 했지만 아직도 많은 학생이 그대로 남아 허황된 ‘대박의 꿈’을 좇고 있는 것이다. 송파서 김선기 다단계특별수사팀장은 “대출 빚이 남아 있어 갈 데까지 가보자는 학생도 많다”고 말했다.

 일부 업체는 주변 지역으로 옮겨간 것으로 드러났다. 송파서 김 팀장은 “강동구 암사동과 둔촌동, 성남시 은행동·수진동·태평동, 하남시 등으로 합숙소를 옮긴 업체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들은 몇 년 전부터 다단계 합숙소가 있던 곳이다. 취재 결과 은행동은 거마 지역 뒤를 이어 다단계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단속이 계속되자 업체들도 꼼수로 대응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학생들에게 “튀어 보이지 않도록 정장 차림에서 캐주얼 복장으로 바꿔 입으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수십 명씩 무리 지어 이동하던 행태도 4~5명씩 소수로 나눠 움직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또 남녀 공동 합숙소가 눈총을 받자 얼마 전부터 남녀 합숙소를 따로 운영하는 업체도 생겼다. “언론 보도를 믿지 말라”는 세뇌 교육도 강화했다. 송파서 수사팀 관계자는 “불법 업체들의 영업 방식이 갈수록 은밀해지고 최근에는 단속 경찰을 우습게 대하는 행태마저 보여 수사에 어려움이 많다”며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허술한 방문판매법을 개정해 불법 다단계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법 업체들이 겨울방학을 맞은 대학생들을 상대로 새 회원 모집에 나서고 있어 추가 피해도 우려된다. 실제로 경찰과 공정위의 합동점검 중에도 불법 업체에 가입하려는 신입 회원 여러 명이 목격됐다. 불법 다단계 업체들은 “6개월에서 1년만 열심히 하면 월 1000만원을 벌 수 있다”며 학생들을 유혹했다. 하지만 이들이 내건 ‘대박의 꿈’은 거짓이었다. 취재팀이 송파 관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A업체 상위 직급자들의 수당 명세서를 단독 입수해 분석한 결과다.

15개월 동안 A업체에 등록된 회원 수(탈퇴자 포함)는 5300여 명. 이 중 상위 직급자인 골드플래너(GP)는 153명, 마스터플래너(MP)는 125명, 수퍼마스터플래너(SMP)는 29명이다. 자료 분석 결과 GP의 월평균 수입은 고작 23만원에 불과했다. ‘88만원 세대’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또 ‘성공자’로 불리며 회원들의 선망 대상인 MP(이사급으로 일러도 1년에서 3~4년 걸림)가 월평균 190여만원을 벌었다. 나머지 5000여 명의 플래너(P)와 실버플래너(SP) 등 하위 직급자는 월 수입이 거의 없거나 불과 몇 만원 수준이다. A업체에서 일하다 석 달 전 빠져나온 하모(22)씨는 “MP만 돼도 고향 집에 매달 500만원씩 부치고, 외제 차에 명품 정장을 입을 수 있다고 귀가 따갑게 들었는데 다 거짓말이었다”고 분개했다.

탐사팀=최준호·고성표·박민제·류정화·홍상지·최종혁·손국희 기자, 이정화 정보검색사

◆거마대학생=서울 송파구 거여·마천동에서 집단으로 합숙생활을 하며 불법 다단계 일에 종사하는 대학생들. 한때 이 지역에 5000명이 넘는 학생이 모여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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