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김정일 분향소’로 국론 분열시키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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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 17일 사망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한 조문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국가보안법피해자모임’은 덕수궁 앞 대한문 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하겠다고 나섰고 서울대 한 학생이 학교에 분향소를 설치했다가 학교 당국에 의해 즉시 철거됐다. 경찰은 “대한문 광장 분향소 설치를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자주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한 코리아연대’라는 단체는 이 단체의 공동대표 한 사람이 정부 승인 없이 조문을 위해 입북했다고 발표했다. 이 단체가 기자회견을 한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는 ‘어버이연합’이라는 단체 회원들이 규탄 시위를 하며 거칠게 항의해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답답한 일이다.

 김정일이 생존한 시기 남북관계는 양면적이었다. 김정일은 남한에 대해 대단히 호전적(好戰的)이었다. 가깝게는 천안함, 연평도 사건을 지시했으며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미얀마 전두환 전 대통령 암살미수 사건 등 대한민국의 안위를 크게 해치는 공격을 일삼아 왔다. 특히 김정일이 지난 십 수년 동안 매달린 핵무기 개발은 한반도 안정을 결정적으로 위협해 왔다. 따라서 김정일에 대해선 우리 국민 다수가 상당히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동시에 김정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후 남북관계를 크게 개선한 ‘업적’도 있다. 적극적 관계개선 의지를 보인 김대중 전 대통령 정책에 호응한 것이고 대규모 경제지원을 받기 위한 고육책(苦肉策)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결단으로 남북한은 화해협력을 통한 평화정착 전망을 키울 수 있었다. 예컨대 개성공단은 남북관계가 크게 경색돼 있는 오늘도 남북한 모두가 포기하지 않는 ‘희망의 씨앗’으로 남아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김정일 조문’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이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북단체와 보수단체 사이에, 또 정부와 일부 민간인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에 대해 정부가 조의를 표명하고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의 조문 방북을 승인한 것은 전략적 결정이다. 전환기에 처한 북한이 핵문제나 남북관계에서 긍정적 변화를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려는 차원이다. 다수 국민의 부정적 인식이 있음을 알면서도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통합당 등 야당 측이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대체로 정부 방침을 수용하는 것도 ‘조문의 정치학’이 갖는 민감성을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 세력이 정부 방침이나 다수 여론을 무시하고 충돌과 논란을 촉발하는 것은 남북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기보다 방해만 될 뿐이다. 나름대로 논리와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정부와 국민 다수가 국가 장래를 위해 조심스러워하는 문제를 막무가내로 훼방하는 것은 지나치다. ‘판’을 깨트리는 돌출 행동은 남에도 북에도 도움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