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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 예시 들며 쉽게 자본주의 해설

중앙일보

입력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참 어이없는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70년대에서 80년대까지 철마다 한번 정도씩 신문의 사회면에 문화공보부(지금의 문화부) 지정 판매금지 도서 목록이 깨끗하게 표로 만들어져 나왔을 때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도서 목록은 우습지도 않았어요. 신동엽 시인의 시집에서부터 얼마 전 장관을 지냈던 사회학과 교수의 책도 반드시 들어갔지요. 또 그 목록 안에 들어갔던 대표적인 책의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이 지금은 대통령을 하고 있잖아요.

신문에 '판금 도서 목록'이 실리면, 바로 그 다음 날 신문의 목록은 큼지막하게 확대 복사돼 대학가의 게시판에 올라갑니다. 그 게시물의 제목은 '문공부 추천도서 목록'이라고 바뀌지요. 가끔씩은 대학가의 누구누구를 붙잡아가면서 증거물로 당국에서 확보한 도서의 목록이 나오기도 했지요. 그건 '안기부 추천 도서'로 분류돼 게시판 한 쪽에 따로 붙었어요.

안기부 추천도서에 들어가는 책 가운데에는 영문 원서나 일본어 서적이 적지 않았어요. 대개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하는 책들이었지요. 당시만 해도 자본주의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었거든요. 더 올바른 자본주의를 위해 잘못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지요. 자본주의는 그저 맹신과 추종의 대상이었을 뿐이었어요. 마르크스를 이야기하는 것은 생각조차 못할 일이었지요.

그런 상황에서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책들을 한글로 번역해 출판할 뜻을 가지는 출판사는 없었을 겁니다. 자연히 영어나 일어로 된 책들을 그냥 읽어야 했어요. 대학교 2학년 쯤이면 대강 보던 일본어 책에는 〈현대의 휴머니즘〉〈철학교정〉이, 영문 책으로는 Oaska Range 의 Political Economy 와 Leo Huberman 의 Man's Worldly Goods 가 있었어요.

이 책들은 아마 당시 대학생들이 거의 교과서처럼 들고 다니던 책이었어요. 판금도서 1순위였던 한글 서적 〈전환시대의 논리〉만큼 외국 서적으로는 유명한 책이었지요. 물론 몰래몰래 복사해 제본한 책이었죠. 한참 뒤에는 그 책들을 어느 누군가가 번역한 노트도 몇 번의 복사를 거쳐 흐릿해진 채로 돌아다니기도 했어요.

그렇게 많은 대학생들이 보던 책인데도, 안기부에서는 대학생 몇 명을 이른바 조직사건으로 몰아 넣기 위해서 증거품으로 압수한 것에 반드시 위의 책들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같은 안기부의 논리에 따라 잘 따져 보면 그 당시 대학생들은 대부분 빨갱이 공산주의자였던 겁니다.

그런데 당시 안기부 요원들은 몹시 우둔했거나 아니면 대학생에 대해 대단히 너그러웠었나 봅니다. 그들이 빨갱이로 지적하지 않은 많은 숱하게 많은 대학생들도 그들이 증거물이라고 내세우는 그 책들을 모두 봤으니까 말입지니다.

그때 보던 책 Man's Worldly Goods는 유난히 재미있었다고 기억되는 책입니다. 자본주의의 생리를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가며 재미있게 풀어주었기 때문에 삼삼오오 모여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해 토론할 때에 기본 교재로 많이 이용됐어요.

그 책은 80년대 후반에도 한번 번역된 적이 있었는데, 이제 새로운 세기를 맞이해서 다시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라는 제목으로 서점의 판매대에 올려 있더군요. 반가웠어요. 마치 어린 시절 잃어버렸던 벙어리 장갑의 한 쪽을 찾은 것같은 느낌이었어요.

이 책의 저자 리오 휴버먼은 1903년 미국의 뉴저지에서 태어나 뉴욕대를 졸업하고 잡지 편집자를 거쳐 한때는 컬럼비아대 뉴칼리지의 사회과학 부장으로 재직하기도 했답니다. 그는 이어 PM이라는 노동자 신문의 편집장으로 노동운동을 이끌었으며, 세계2차대전 중에는 전국 선원노동조합의 교육부장을 지냈어요.

49년에는 자본주의 이행논쟁으로 유명한 폴 스위지와 함께 '먼슬리 리뷰'를 공동 창간해, 68년 사망할 때까지 이끌었다고 하는군요. 그의 저술 중 한글로 번역된 것으로는 이 책 외에 〈역사와 민중〉(비봉출판사, 1983)〈사회주의란 무엇인가〉(동녘, 1986) 등이 있지요.

휴버먼은 이 책의 머리글에서 "경제 이론으로 역사를 설명하는 것과 역사로 경제 이론을 설명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밝힙니다. 경제 이론이 역사적 사실과 동떨어지면 따분해지고 말 것이며, 경제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역사 공부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뜻입니다.

자본주의 경제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제는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의 이해입니다. 저 유명한 모리스 돕과 폴 스위지의 〈자본주의 이행논쟁〉(동녘)이 자본주의 경제학 연구에 미치는 영향이 그러하듯, 이 과정은 현대 경제학의 중요한 전제가 될 겁니다. 이 책에서도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을 꼼꼼히 살펴보는 데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중세 시대를 다룬 책들의 공통적인 한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상 시합과 경기에 맞춰 번쩍이는 갑옷과 화려한 옷으로 장식한 기사와 귀부인이 나온다. 그들은 항상 먹고 마실 것이 풍부하며 호화로운 성에서 지낸다. 여러분은 누군가가 이 모든 것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 갑옷은 나무에서 열리지 않는다는 것, 누군가가 곡식을 심고 돌보고 일해야 한다는 것을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이 책 15쪽)

봉건 시대의 상징적인 그림을 하나 그려놓고, 그 안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을 지적하는 첫 장 첫 줄부터 무척 흥미롭습니다. 저자는 장원이라는 유럽 농토에서 일하는 농노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들의 농업 방식과 존재 양식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설명하지요.

농노가 노예와 다른 점은 노예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 때나 주인의 마음에 따라 사고 팔 수 있었지만, 농노는 땅에 소속돼 있어서 땅과 함께 사고 팔려야 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여러 가지 형태의 농노가 있었지만, 공통적인 것은 농노는 노동을 함으로써 영주에게 노동의 결과물을 만들어주고, 그 대가로 자신의 집과 일할 수 있는 토지와 먹을 거리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봉건제에 대한 관찰은 계속됩니다. 저자가 봉건제에 새로운 변화를 새로 출현한 상인과 11세기와 12세기에 급속도로 발전하는 상업에서 찾습니다. 이는 자본주의 이행의 동인(動因)의 하나로 논쟁의 소재가 되는 부분이지요. 화폐 경제가 새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도시가 발달하고 화폐를 소유하는 중간 계급이 한 사회에서 가지는 역할이 증대되는 겁니다.

이같은 흐름을 타고 농노들은 자유를 찾아 영주의 보호에서 떠나기 시작했고, 이로써 봉건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는 거지요. 영주로부터 자유로워진 농노들은 이제 '굶을 자유'까지 함께 가지게 됩니다.

둘로 나뉘어진 이 책의 전반부에서는 이처럼 봉건제의 특질과 그 붕괴과정을 실례를 통해 드러내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후반부인 제2부는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을 보여줍니다.

농노와 영주라는 생산관계가 지배하던 봉건제가 지나가자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자본가와 그렇지 않은 노동자가 주요 생산관계인 자본주의가 시작됩니다. 이 자본주의 사회를 고찰하는 데에 저자는 자신의 노동운동 경험을 살려서 노동자의 입장에서 자본주의를 고찰하지요. 이른바 부자와 가난한 자의 대립이 시작되는 시절인 겁니다.

휴버먼은 현대 자본주의의 원리를 지배하는 고전 경제학의 각종 이론들을 모두 끄집어냅니다. 〈국부론〉의 아담 스미스를 비롯, 리카르도, 존 스튜어트 밀 등 중요한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꼼꼼히 짚어봅니다. 자본주의를 철저하게 비판한 칼 마르크스도 빼놓을 수 없지요.

마르크스는 미래 사회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궁리하기보다는 현재까지의 과거 사회에 관심을 가졌고, 그 연구의 결과로 이른바 사회주의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 계급만이 사회주의를 이룰 수 있는 힘이라고 강조하지요.

그래서 고전경제학을 자본가의 경제학이라고 하면 마르크스의 경제학을 노동자의 경제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이 책의 후반부 상당 부분은 마르크스의 경제학을 설명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 "그들은 단물을 포기할 것인가"는 원숭이 잡는 이야기로 끝납니다. 원숭이를 잡기 위해서는 코코야자 열매에 원숭이의 맨손이 겨우 들어갈 수 있게 구멍을 낸 뒤, 설탕을 넣어두는 겁니다. 원숭이는 열매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설탕을 잡지만, 설탕을 잡은 채로는 결코 주먹을 빼내지 못합니다.

그 탐욕은 결국 원숭이 스스로를 파멸시킨다는 것이지요. 이 이야기는 자본주의의 팽장의 필요성은 시장 획득의 절실함 때문에 파시즘으로 치닫게 되고, 이는 결국 전쟁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68년에 사망한 휴버먼의 섬뜩한 경고입니다. 휴버먼이 이 책을 쓴 36년으로부터 65년이나 지났습니다. 그러나 세기가 바뀐 지금에도 휴버먼이 이 책의 곳곳에서 지적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속성은 그다지 큰 변화가 없습니다.

다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노동운동 세력이 본격적으로 조직화하기 시작한 80년대 초 쯤이라면 이 책을 충분히 판금 시켜야 할 까닭이 충분했을 것같군요. 자본주의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한 번 쯤 다시 들여다 볼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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