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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푸틴 재집권 안 돼” … 모스크바 12만 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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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4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시내에서 12만 명(주최 측 추산)의 시위대가 지난 4일의 총선 결과 무효와 대통령 3선 도전을 선언한 푸틴 퇴진을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이날 시위는 모스크바 외에 상트페테르부르크·블라디보스토크 등 러시아 전역 10여 개 도시에서 열렸다. [모스크바 로이터=뉴시스]

“도둑(푸틴)이 크렘린에 있으면 안 됩니다.”

 24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사하로프 대로 반정부 시위 현장. 보리스 옐친 정권 때 부총리를 지낸 야당 지도자 보리스 넴트소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를 도둑에 비유하며 부정선거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시위에는 12만 명(주최 측 추산)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소련 붕괴 이후 최대 규모다. 국가 두마(하원) 선거의 부정의혹과 함께 푸틴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던 시위대는 오후 들어 “푸틴 없는 러시아” “우리는 다시 (거리로) 돌아온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자진 해산했다.

 이날 시위에는 그동안 정치적 이슈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참가해 내외신 기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푸틴이 12년간 이룬 긍정적 성과를 지켜내려면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욕 타임스(NYT)는 이른바 ‘푸틴 라인’으로 꼽히던 알렉세이 쿠드린 전 부총리가 시위에 참가한 것에 주목했다. NYT는 “지난 20년간 푸틴의 측근으로 일해 온 쿠드린이 시위에 나타나 중앙선관위원장의 사임에 지지를 표시한 것은 현 정부에 대한 강한 경고 메시지”라고 보도했다. 내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억만장자 미하일 프로호로프도 이날 시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반정부 시위는 모스크바뿐 아니라 러시아 전역에서 일어났다.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2500명)는 물론 중부 노보시비르스크(2000명), 극동지역 블라디보스토크(100명) 등에서도 산발적인 시위가 발생했다.

24일(현지시간) 모스크바의 시위대가 콘돔을 스카프처럼 두른 푸틴 총리를 그린 피켓을 들고 있다. 시위대가 가슴에 단 리본에 대해 최근 푸틴 총리가 “콘돔 같다. 에이즈 예방 캠페인이냐”며 폄하한 것에 시민들은 “네가 콘돔이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모스크바 AP=연합뉴스]

 전 세계의 이목은 러시아 차기 대선이 열리는 내년 3월에 맞춰져 있다. 일각에서는 푸틴 총리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퇴진시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이달 14일 러시아 정치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푸틴이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메드베데프를 총리가 아닌 다른 직책으로 내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이후 푸틴은 TV토론에서 “대통령이 되면 메드베데프를 총리로 기용한다”고 재천명했지만, 아직까지도 전문가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러시아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발 선거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24일 유명 블로거 알렉세이 나발니는 “사기꾼과 도둑놈들이 계속 시민들을 속이고 있는 만큼 이들의 권력을 빼앗아 와야 한다”며 “내년 초 개최될 거리 시위에 100만 명을 불러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정부 성향 유명 작가 보리스 아쿠닌은 “푸틴이 대통령 권좌에 앉는 것이 옳은 일이냐”며 “내년은 우리의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푸틴 낙선운동에 돌입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NYT는 “이번 시위는 시민들의 분노가 내년 대선에서 푸틴의 재선에 큰 도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경고”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파이낸셜 타임스는 “시민들이 푸틴에게 등을 돌린다고 해도 분열된 야권이 통합되지 않는 한 푸틴은 재선할 것”이라는 보수적 전망을 내놨다.

이현택·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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