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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王師 이영호, 대를 이어 충성… 매파 김영철, “공화국선 정치가 경제에 앞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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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에서 대남 무력을 행사하는 두 중추 조직은 인민군 총참모부와 정찰총국이다. 총참모부는 전쟁이 발생했을 때 전장을 총괄 지휘하고 작전 명령을 내리는 ‘전쟁 수뇌부’다. 남한의 합동참모본부와 유사하다. 정찰총국은 은밀한 대남 정보수집과 비밀 공작, 침투 작전을 행사하는 ‘물밑 작전’ 부서다. 2009년 노동당 작전부ㆍ35호실(대남 공작 담당)과 인민무력부 산하 정찰국이 통합돼 만들어졌다. 정보당국이 지난해 천안함 침몰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한 게 정찰총국이다. 이 두 조직의 지휘관인 이영호 총참모장과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실전 상황의 최고 책임자들이다.

두 사람은 모두 김정은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등장과 시기를 같이 하며 ‘벼락 승진’ 했다. 그래서 ‘김정은 체제’의 실세다. 이영호 총참모장은 2009년 인민군 대장으로 승진했다가 1년 반도 안 돼 지난해 차수로 올라섰고, 김영철 정찰총국장은 지난해 9월 28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과 당 중앙위원회 의원 자리를 한꺼번에 꿰찼다.

“이영호 아들 역시 김정은의 최측근”
이영호는 ‘정치장교’가 아닌 전형적인 군인 스타일이다. 집무실에 한가득 포병 관련 서적을 쌓아놓고 탐독하는 포병 전문가라고 포병 출신 탈북자는 전한다. 이영호는 2003년부터 최고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절대적 신임이 없으면 불가능한 요직인 평양 방어 사령관을 맡았다. 그렇게 중용되는 데는 ‘대를 이은 충성’이라는 출신 성분이 작용했다는 게 당국의 평가다. 한 대북 소식통은 “이영호의 아버지 이봉수 만경대혁명학원장(사망)은 김일성 주석의 빨치산 시절 전령이어서 함께 움직이며 치료도 맡았던 인물인데 김 주석이 ‘너는 머리가 좋으니 공부를 하라’고 지시해 만경대혁명학원장까지 올랐고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어릴 때 이영호의 어머니가 자주 불러 그들 가족과 저녁 식사도 자주 같이 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김정은이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시절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한 포격 향상’을 주제로 졸업 논문을 낼 때 이를 지도했던 이가 이영호로 알려져 있다”고 귀띔했다.

일부에선 이영호의 중용이 김정은과의 인연과 함께 ‘3대에 걸친 충성’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북한 호위사령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던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는 “북한 내 소식통들에 따르면 이영호 아들과 조명록 전 국방위 부위원장(사망)의 아들이 김정은의 측근 조직이자 북한 내 고위층 2ㆍ3세의 모임인 ‘봉화조’의 핵심 멤버”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영호와 조명록의 아들은 모두 군내에서 직책을 맡고 있으며, 이영호 아들은 김정은의 김일성군사종합대학 동기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정은 부위원장에 대한 충성에 관해선 이영호는 검증이 필요 없는 대를 이은 가계 출신이란 뜻이다.

“김영철도 김정은의 군사 분야 조언자”
김영철 정찰총국장은 대남 매파 중 매파다. 2008년 12월 국방위원회 정책국장 직함으로 갑자기 개성공단에 내려와 “남측이 개성공업지구(개성공단)에서 철수할까 봐 우리가 고민하는 줄 아는데 우리는 그런 고민이 전혀 없다”며 “우리는 개성공업지구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던 인물이다.

당시 그는 입주기업 대표들을 공단 내 강당에 모아놓고 일장 연설도 했다. 남측 TV 드라마인 ‘이산’을 거론하며 “‘이산’에 ‘백성은 물이고 임금은 물 위에 뜬 배’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민심이 흔들리면 배가 뒤집힌다”고 남측 기업인들 앞에서 이명박 정부를 공격했다. 남측 인사들이 “공단 문제에 정치를 개입시키면 안 된다”고 하자 “공화국에서 경제는 정치 앞에 있지 않다”고 말을 끊었다. 그러면서도 서울에서 올라간 남측 책임자를 따로 불러 “서울(청와대)에서 뭐 얘기한 것이 없는가”라며 넌지시 묻기도 했다.

김 정찰총국장은 대남통이다. 만경대혁명학원·김일성군사종합대학 출신인 그는 1960년대 초 군사분계선에 접한 북한군 15사단 민경중대에서 근무했다. 68년 군사정전위 연락장교로 나타난 그는 이후 본격적인 남북 접촉이 있을 때마다 강성 발언을 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90년 9월 4일 첫 남북 고위급회담 대표단으로 판문점에 내려왔을 때는 당시 임동원 남측 회담 대변인(전 통일부 장관)이 인사하며 악수를 청하자 말 한마디 없이 인상을 쓰며 악수만 받았다고 한다.

김대중 정부 시절엔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북측대표로 나서 집요하게 대북 방송 중단을 요구했다. 한 소식통은 “김영철도 김정은이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다닐 때 군사 분야를 가르치며 인연을 맺었다는 정보가 있다”며 “강경파인 그가 정찰총국장을 맡았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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