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채권단 '유가증권 매각' 놓고 설전

중앙일보

입력

○…현대 구조조정본부와 채권단은 지난 10일부터 바삐 움직였다.

특히 12일 오후에 시작한 채권단과 현대의 실무협상은 13일 새벽 3시30분까지 이어졌다.

양측은 어느 선까지 발표할 것인지와 발표 문안 내용을 놓고 막판까지 밀고 당겼다.

특히 3부자와 문제 경영인 퇴진 부분은 정몽헌 회장측 입장이 완강한데다 채권단도 현대측 의견을 전부 수용할 경우 지배구조 개선 부분이 약하게 보일까봐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양측이 동시에 발표하기로 한 시간도 13일 오후 2시에서 3시로, 다시 3시40분으로 연기됐다.

정부와 채권단은 8.15 이산가족 상봉과 대통령 특별담화 발표 전에 현대사태를 해결하자는 의지를 보였고, 현대도 현대건설의 자금난이 워낙 심각해 하루라도 빨리 해결책을 내놓자는 절박함이 있었다고 현대 관계자가 전했다.

○…현대가 버티기에서 정부.채권단과의 협상으로 자세를 바꾼 것은 지난 7일부터다.

정몽헌 회장이 해외에서 한달만에 귀국하던 날 현대가 접촉을 꺼렸던 경제팀이 바뀌었다.

鄭회장은 일본에서 귀국하기 전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과 김재수 본부장 등이 마련한 자구안을 보고받고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鄭회장은 귀국하자 마자 김윤규 사장과 함께 서울 풍납동 중앙병원에 입원중인 정주영 전 명예회장을 찾아가 정부와 협상할 최종안을 보고했다.

결국 현대의 추가 자구방안은 김재수 본부장과 김윤규 사장이 초안을 마련하고, 정몽헌 회장→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재가를 얻어 확정한 것이다.

鄭회장과 이익치 현대증권회장.김윤규 사장이 소떼몰이 방북을 한 사이 추가 보완책을 마련했고, 10일 鄭회장이 돌아오자 재가받은 뒤 김재수 구조조정본부장이 공정거래위와 금융감독위 관계자를 만났고 실무진은 채권은행과 협상을 진행했다.

○…현대는 10일 우선 공정위와 접촉해 자동차 계열분리의 걸림돌인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지분(6.1%)매각방안을 제시해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다.

그러나 채권단과의 현대건설 보유 유가증권 매각 협상이 늦어져 13일 새벽까지 마라톤 협상을 벌였다.

특히 채권단에서 요구한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가신그룹 퇴진 문제는 양측이 시간에 쫓겨 원론적인 해법으로 접근했다.

지난 11일 밤에는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과 정몽헌 회장이 만났다. 두 사람의 만남은 정몽헌 회장측이 진념 재정경제부장관과의 면담을 요청하자 정부가 李위원장을 협상 파트너로 결정했다는 후문.

특히 문제 경영진 퇴진은 주총.이사회에서 결정하기로 했다. 채권단은 3부자 퇴진과 문제 경영진 퇴진을 합의문에 넣자고 했으나 현대측이 이를 거부, '주총 등을 거쳐 결정' 선에서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를 잘아는 재계 관계자는 "가신그룹 퇴진 문제는 정몽헌 회장측이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자 채권단이 수용한 것" 이라며 "정몽구 회장도 구조조정본부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얘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고 말했다.

한편 가신그룹으로 지목된 경영진 중 한명인 이익치 회장은 13일 서울 근교에서 골프를 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몽구 회장도 출근하지 않고 가족과 함께 지냈다고 현대차측이 전했다.

○…현대와 채권단은 자구안 협상을 통해 총 1조5천2백억원의 유동성 확보계획 중 서산농장 대신 현대중공업.현대상선 지분 매각으로 의견을 좁혔다.

교환사채 발행은 결정한 것은 주식 매각때는 이들 주식이 담보로 묶여 있어 채권단이 주식을 사주고 또 여신을 갚아야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대신 본래 전환시점이 6개월인 것을 3개월로 앞당기기로 했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이라크 미수대금 8억달러(환차익 감안 1천3백50억원)를 자구계획했다.

대신 연말까지 미수금을 입금하지 못하면 서산농장을 매각하기로 하고 조건부 수용한 것이다.

서산농장 매각 건을 공식 발표문에 포함시키자는 정부.채권단과 이면각서로 대체하자는 현대간에 막판 진통을 겪은 가운데 최종안에는 이를 제외했다.

현대는 중공업 계열분리를 2002년 6월까지로 결정해 당초 정부안보다 1년 늦췄다. 그러나 현대가 주장한 계열사 지급보증(1조5천억원)해소 시한보다는 1년 앞당긴 것이다. 정부도 현대건설의 유동성과는 큰 관계가 없다는 판단아래 이를 인정한 것이다.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지분 매입은 채권단이 시가로 하되 현재 주가가 낮으므로 (현대자동차 시가 1만5천원선, 현대측은 적정 주가로 2만9천원 제시) 연말까지 시가와의 차액은 추가로 정주영전 명예회장에게 돌려주는 콜옵션을 채권단이 수용했다.

즉 1만5천원선에 매입해 연내에 주가가 오르면 차액만큼 다시 鄭 전 명예회장에게 돌려주고 이를 다시 현대건설 회사채 매입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단 채권단이 사들인 자동차 주식은 다시 鄭 전 명예회장이나 현대에게 되팔지 않는 조건을 달았다.

대신 채권단은 이를 현대차에 적대적인 회사나, 경쟁사에는 매각하지 않고, 현대의 계열분리가 끝나면 적당한 시점에서 장내에서 처분하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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