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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 ‘다윈의 정원’] 북한 주민들 통곡, 연기일까 진짜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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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장군님의 사진을 어찌 비바람 속에 걸어둘 수 있소?” 2003년 여름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린 대구의 한 경기장에서 북한 응원단이 거칠게 항의했다. 환영 현수막에 인쇄된 김정일의 사진이 ‘홀대’를 받고 있다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지난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자 북한 주민들은 또다시 오열했다. 그 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사망 때(1994년)보다는 덜했다고 하지만 현대 국가 체제에서 모두 낯선 풍경인 것은 분명하다. 너무 낯설었던지 급기야 북한 주민들이 “진짜로 슬퍼 울지도” 모른다는 보도도 눈에 띈다. 이런 과도한 리액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들은 다른 세계에서 온 이상한 사람들인가?

 당신과 갑돌이가 어떤 간단한 실험에 참여하고 있다고 하자. 당신이 선생 역을 맡아 호수, 태양, 나무, 웃음, 아이 같은 단어들을 갑돌이에게 읽어준다. 그러면 전기의자에 앉아 있는 그가 그대로 따라 말하면 되는 실험이다. 그런데 만일 그가 실수하게 되면 당신은 감독자의 지시대로 15V, 30V, 45V…이런 식으로 강도를 높여가며 그에게 전기 충격을 가해야 한다. 전압 버튼의 끝에는 450V(‘치명적’)라고 적혀 있다.

 갑돌이가 첫 실수를 한다. 당신은 15V 버튼을 누르지만 살짝 움찔하는 그가 별로 걱정스럽지 않다. 하지만 실수가 계속되고 상황은 달라진다. 30V, 45V, 60V 버튼을 향하는 당신의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한다. ‘갑돌아 제발 정신 좀 똑바로 차려. 또 틀리면 나보고 어쩌라고!’ 마음속으로 이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도 갑돌이의 실수는 계속된다. 급기야 115V까지 왔다. 그의 비명 소리가 크게 들린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고통을 호소하는 갑돌이와 실험을 중지하자고 제안하는 당신에게 감독자는 확신에 찬 어조로 계속 이렇게 말한다. “갑돌이에게 영구적 조직 손상은 없으니 실험을 계속하시오”

 이 순간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실험실을 뛰쳐나갈 것인가, 아니면 감독자의 명령에 복종해 계속 버튼을 누를 것인가? 엽기적으로 보이는 이 실험은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이 1961년 예일대에서 수행한 실제 사례로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심리 실험 중 하나다. 사람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될 터이니 이 실험에 뭔가 속임수가 있었어야 한다. 비밀은 갑돌이와 감독자에게 있다. 갑돌이에게는 실제로 전기 충격이 가해지지 않았다. 당신 앞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발휘했을 뿐이다. 즉, 감독자와 갑돌이가 미리 짜고 당신을 상대로 ‘몰카’를 찍은 셈이다. 밀그램은 인간의 ‘권위에 대한 복종’을 실험적으로 연구하고 싶었던 것이다. ‘멀쩡해 보였던 나치 장교들이 왜 끔찍한 대량 학살에 참여하게 됐나?’

 나치의 대량 학살에 동원된 독일 사람들이 본래부터 악한 사람이었을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그들이 자란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독해졌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밀그램은 다른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이 실험을 통해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도 특수한 ‘상황’에서는 보편적 도덕 규칙과 이성적 판단을 무시하고 명령에 따라 끔찍한 행위를 저지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다양한 피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치명적 전압 버튼을 누른 사람이 65%나 됐다. 나도 언젠가 비합리적 권위에 복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제 북한 주민들의 낯선 행동이 이해되는가? 아직 이르다. 심리학자 솔로몬 애시는 합리적 판단을 무시한 채 대세를 따르는 인간의 심리 현상을 밝혀냈다. 감독자가 10명의 피험자에게 길이가 현저히 다른 두 직선을 보여주고 더 긴 직선을 고르라고 한다. 9명은 각본대로 실제로는 더 짧은 직선이 더 길다고 우긴다. 그 광경을 본 나머지 한 명은 어떤 선택을 할까? 놀랍게도 75% 정도가 틀린 대답인 줄 알면서도 대세를 따른다. 집단의 압박이 개인의 합리적 판단(너무도 자명한)을 왜곡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실험이었다. 이제 이 ‘대세 효과’와 밀그램의 복종 실험을 결합하면 오늘 북한 주민들의 통곡이 이해 가능한 현상이 된다.

 그렇다면 권위에 복종하고 집단에 순응하는 행위는 어떻게 진화했을까? 카리스마가 있는 리더를 따르는 행위는 적응도를 높일 수 있다. 생존과 번식에 관한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롤 모델’이나 ‘벤치마킹’을 떠올려보라. 대세를 따르는 순응 행위도 적응적 이득을 준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나 물건에는 그만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권위에 복종하고 집단에 순응하는 행위가 이득이 되는 사회 속에서 우리 인류가 진화해 왔다는 것은 일차적 사실이다. 말하자면 우리에겐 ‘복종 본능’과 ‘순응 본능’이란 것이 있다. 문제는 이 본능들을 어떤 정치권력이나 권위가 활용하는지에 따라 정치 체제가 독재와 민주 사이를 오간다는 데 있다. 지금 북한 주민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은 나쁜 권위에 의해 이 본능이 극도로 오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심리 활용법에 관한 한 북한 지도부는 지존이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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