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태 조기 수습' 협공

중앙일보

입력

다섯달째 표류하던 현대그룹 문제가 급류를 타고 있다.

주내에 가닥을 잡으라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지시가 정부와 채권단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채권단은 9일 현대에 대한 압박수위를 최고조로 높였다. 주포(主砲)는 채권단이 맡고, 정부는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았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 김경림 행장은 이날 "3부자 퇴진 약속을 지키라" 며 정몽구 회장까지 겨냥해 사퇴를 촉구했다.

정주영 전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은 사실상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만큼 정몽구 회장도 물러나야 3부자 퇴진과 지배구조 개선이 골자인 현대측의 약속이 완전히 이행되는 것이고, 그래야만 시장의 신뢰를 되얻어 현대가 살 수 있다는 논리였다.

金행장의 발언을 전후해 진념(陳稔)재정경제부장관은 개각 후 첫 경제장관 간담회에서 "시장의 요구를 외면한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 며 분위기를 잡았고, 이근영 금감위원장은 "돈을 빌려준 채권자의 입장에서 경영진 사퇴요구는 당연히 할 수 있는 일" 이라며 외환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새 경제팀은 현대 압박창구를 채권단, 특히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으로 단일화했다.

이는 '시장원리' 를 내세움으로써 정부가 기업을 직접 다룬다는 부담도 덜고, 창구를 단일화해 과거와는 달리 부처간 혼선을 막겠다는 의도다.

나아가 현대측에 정치권이나 정부와의 물밑 조율을 통해 사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중지하라는 경고도 덧붙이고 있다.

이와 관련, 李금감위원장은 "현대 오너나 경영진을 만날 계획도, 이유도 없다" 고 강조했다.

李위원장은 이어 "현대문제는 경영권 분쟁과 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 탓" 이라며 "이를 시장이 납득하도록 해결해야 한다" 고 주문했다.

금감위 관계자는 이를 "경영권 분쟁은 3부자 퇴진, 현대건설 유동성 위기 해결은 오너의 사재출연 등으로 풀어야 한다는 의미" 라고 해석했다.

그동안 공격대상에서 비켜나 있던 정몽구 회장에게까지 전선을 확대한 것은 현대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겠다는 정부와 채권단의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도 이같은 압박을 의식하고 있다. 그룹 구조조정본부측은 주내에 현대자동차의 계열분리계획부터 내놓고 다음주에 자구계획을 발표키로 하는 등 성의를 보이려 노력하고 있다.
방북 중인 정몽헌 회장이 10일 귀환하면 구체적인 이행계획을 결정할 계획이다.

현대 관계자는 "준비 중인 자구계획은 그룹 차원에서 마지막 자구노력이라고 여기며 여러가지 방안을 검토 중" 이라고 말했다.

현대측은 현대건설이 갖고 있는 계열사 보유주식 매각 외에도 임원진 축소와 기구 개편, 직원 감축도 함께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몽구 회장 퇴진 요구에 대해서는 반발이 만만치 않다. 현대차측은 이날 외환은행의 퇴진 요구가 알려지자 진의 파악에 나서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정몽구 회장은 오후 5시30분쯤 김경림 외환은행장과 직접 전화 통화를 했으며, 이어 정순원 부사장이 외환은행을 찾아가 경위를 알아보았다.

전체적으로 정몽구 회장측은 "정몽구 회장은 3부자 퇴진을 약속한 바 없다" 며 퇴진 요구가 왜 나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3부자 퇴진은 정몽구 회장이 합의한 사항이 아니며, 鄭회장은 그룹측의 3부자 퇴진에 반발해 현대차와 기아차 이사회에서 다시 신임받았다" 며 퇴진 불가론을 펴고 있다.

'현대차는 이날 저녁 사장단을 불러 긴급 회의를 열고 대책을 숙의하는 등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이용택.이정재.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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