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장에서] 감독 뽑는기술위원들 “언론 보고 알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장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기술위원회는 선수와 지도자의 양성, 각급 국가대표급 지도자와 선수의 선발, 축구 기술발전 및 교육을 목적으로 설치한다.’

 대한축구협회 정관 제50조다. 기술위의 권한과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정관대로라면 국가대표 감독 선발은 기술위의 권한이다. 축구협회 회장이나 기술위원장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황보관 기술위원장은 기술위가 최강희 전북 감독을 새로운 국가대표 사령탑으로 추천키로 했다고 21일 발표했다. 사실상 선임이다. 그러면서 “기술위원회는 대표팀 감독 선임 기준에 따라 국내외 감독을 대상으로 검증 작업을 했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감독 선임 과정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황보 위원장의 말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 기술위원들은 새 감독 선임 과정에서 배제됐다. 기술위에 참가한 대다수 위원은 차기 사령탑 후보로 최 감독이 내정됐다는 사실을 몰랐다. 한 위원은 “언론보도를 통해 최 감독 얘기를 처음 들었다”고 했다. 또 다른 위원은 “‘우리 모르게 최 감독이 내정이 됐다면 굳이 기술위를 열 이유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회의는 한 시간 만에 끝났다. 결론은 깔끔했다. 최 감독을 국가대표 사령탑으로 추천한다는 내용이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누가 후보인지도 몰랐던 위원들이 신속하게 결론을 내렸다. 상황을 종합하면, 황보 위원장이 협회 수뇌부의 의견을 받들어 최 감독을 차기 사령탑으로 정해 놓고 기술위를 열어 위원들의 형식적인 동의를 받아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대다수 위원이 거수기 노릇을 한 셈이다.

 황보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최 감독이 ‘백의종군(白衣從軍)하신다’는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백의종군은 벼슬 없이 전쟁터에 나서는 일을 말한다. 국가대표 감독 자리가 벼슬은 아니란 뜻일까. 무슨 뜻인지 알고 말했는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축구협회가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을 보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절차를 무시해도 상관없는, 그리 대단한 벼슬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장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