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시드니 영웅' 꿈꾸는 정남균

중앙일보

입력

1992년 8월 9일은 스물두살의 청년 황영조가 '몬주익의 영웅' 으로 떠오르며 온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날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8년이 지난 9일. 서울올림픽 파크텔에서는 또 다른 스물두살 청년의 시드니올림픽 마라톤 제패를 기원하는 '후원의 밤' 행사가 열렸다.

주인공은 지난 3월 혜성과 같이 나타나 동아마라톤대회를 제패한 정남균(한체대.사진).

정은 지난 6월 29일부터 시드니 남쪽 지방에서 한달간 전지훈련을 하고 돌아와 심신이 피곤한 상태였으나 최병섭(44.남우정밀 사장)후원회장을 비롯한 20여명의 후원인들 앞에서 오랜만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들뜬 표정의 정은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훈련에 임하고 있다" 며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해도 좋다" 고 말했다.

모두 이봉주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깜짝쇼' 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뜻이다.

전북 진안 출신으로 서울 영동중 2학년 때 장거리 선수로 육상에 입문한 정은 서울체고를 거쳐 한체대에서 김복주 교수에게 마라톤 지도를 받아왔다.

정은 두번째로 완주한 동아대회에서 2시간11분29초의 개인 최고기록을 수립, 성장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학창시절 소년체전 8백m에 출전했던 아버지 정민주(43)씨의 운동신경도 물려받았다.

난코스라는 시드니 마라톤 코스를 둘러보고 온 소감을 물어보니 "아무 것도 아니던데요" 라는 대답이 튀어나올 정도로 자신감이 넘친다.

훈련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오면 짬짬이 채팅을 즐기는 N세대이기도 하다.

"채팅을 하면 (이)봉주형 이름은 많이 아는데 제 이름은 아직 모르더라고요" 라며 쑥스럽게 웃는다.

전지훈련 때'는 일정한 거리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달리는 '거리주' 훈련에 치중했다.

1주일에 서너번은 50㎞ 이상을 꼬박 채웠다는 정은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훈련이었다" 고 되뇌었다.

평소에 아무 말이 없던 이봉주가 바로 뒤에 따라붙어 "끌어, 임마(페이스를 높여)" 라고 한마디 하면 허파가 터질 정도로 달렸다는 정은 이봉주의 스피드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은 지난달 31일부터 강원도 봉평에서 스피드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김복주 교수는 "타고난 성실성에 스피드와 지구력 모두 나무랄데 없는 선수" 라며 "다만 초반 레이스가 뜻대로 안풀리면 여지없이 무너지는 약점을 갖고 있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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