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마주 한 지식인의 고뇌 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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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삶을 대체할 만큼의 무게를 가질 수 있을까요? 독자 여러분들 앞에 한 번의 겸손치 못함을 무릅쓰고 저는 '그렇습니다'라고 이야기해야 겠습니다. 삶과 글,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과연 어떤 상황일 지 생각하기 어렵지만, 대관절 글이 없이 살아가는 삶의 건조함을 생각하기 싫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제 개인에게만큼은 진실일 수 있다는 오만과 만용을 용서해 주셨으면 합니다.

〈글이냐 삶이냐〉(죠르쥬 쌍프렝 지음, 임 헌 옮김, 퇴설당 펴냄)라는 한 스페인 출신 프랑스 지식인의 책 한 권을 이야기하려고 꺼낸 말씀입니다. 우리 독서계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가깝게 지내는 제 여자 친구가 권해주어서였지요. 서너 해 전 읽게 된 이 책은 최소한 제게 다시 읽고 싶은 책 목록의 앞 자리에 놓을 수 있어요. 적잖이 책을 읽어대는 제 친구도 이 책을 아끼는 책 순서의 앞쪽에 꼽는 걸 머뭇거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죠르쥬 쌍프렝은 우리 독서계에는 조금 낯선 작가입니다. 그는 1923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스페인 내전 패배 후 프랑스로 망명한 시인이며 소설가인 스페인 대표적 지식인이에요. 저도 이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알게 된 작가입니다. 이 책을 한글로 옮긴 임헌 님도 '뜻하지 않게 발견된 훌륭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41년부터 레지스탕스 공산주의 조직에서 활동하던 그는 43년 독일 게슈타포에 체포돼 바이마르 근처의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에 감금됩니다. 부헨발트 수용소는 금세기의 '절대악'의 표현이라고 흔히들 이야기합니다. 나치의 반인류적 범죄가 극악하게 자행된 상징적 장소지요. 이 때의 상황을 글로 풀어 쓴 것이 바로 〈글이냐 삶이냐〉입니다.

독일 패망 후 파리로 돌아온 그는 스페인 공산당 정치국의 일원으로 반 프랑코 지하운동에 투신, 62년까지 페데리코 산체스라는 가명으로 공산당 지하운동을 주도합니다. 그 뒤 쌍프렝은 공산당 노선에 대한 의견의 차이로 당에서 축출당하고 소설, 시나리오 등의 글쓰기에 전념합니다. 88년부터 91년까지 스페인 곤잘레스 내각에서 문화부 장관을 지내기도 합니다.

자전적 에세이 형식으로 쓰여진 이 책은 죽음을 앞에 둔 수용소 군상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저자가 부헨발트 수용소의 군상들에서 처음 본 것은 공포의 시선입니다. 겁에 질리고 공포가 가득 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거죠. 그 죽음의 시선은 수용소에 감금된 사람들에게 뿐 아니라, 그들을 감시하는 병사들의 눈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겁니다.

시체가 불에 타는 냄새들도 나치의 잔혹한 수용소의 한 상징입니다. 공포에 질린 수용소의 사람들은 "저녁 때면 열린 창문을 통해, 자주 우리에게까지 이르는 이상한 냄새, 바람이 일정한 방향으로 불 때면 밤새도록 우리를 사로잡던 냄새다. 그것은 화장터 화덕의 냄새였다"며 자신의 삶을 죽음에 대입시키기도 합니다. 그 안에서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눈을 감는 것' 뿐입니다.

나치 친위대원들의 끊임없는 순찰 속에서 죽음과 삶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며 살아가는 한 지식인의 삶이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집니다. 그 극악한 상황에서도 저자는 자신의 삶을 지배해 온 철학과 문학에 대한 사색의 치열함을 놓치지 않습니다. 하이데거에서부터 니체와 릴케에 이르는 유럽 지성들의 저술들에 대한 저자의 사색은 마치 죽음을 앞에 둔 삶이 아니고서는 그토록 치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상상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의 사색에 동참하는 여러 동지들이 있지요. 그 가운데 하나. 독일 출신의 미군 중위 월터 로젠펠트. 그는 늘 '잊지 마시오. 결코 잊지 마시오! 독일! 죄가 있는 것은 바로 내 조국이요!'라고 말합니다. 그와 함께 이 책의 저자 쌍프렝은 철학자 하이데거를 이야기하기 위해 그의 유년 시절을 이야기하지요. 또 아도르노, 마르쿠제, 한나 아렌트를 이야기하며,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를 낭송합니다. 카프카, 앙드레 말로, 보르헤스에 대한 쌍프렝의 문학적 교양은 놀랄 만 합니다. 이 한 권의 책을 통해서 우리는 서구 사상과 문학의 흐름을 맛 볼 수 있습니다.

수용소의 참담한 삶의 한 귀퉁이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독일 낭만파 시인 하이네의 시를 낭송하는 지식인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으신가요? 그들의 시 낭송은 등화관제의 어둠 속에서도 이어집니다. 시를 읽으며 그들은 자신이 처음 그 시를 알게 된 사연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절박한 삶 속에서도 글을 제거한 삶을 궁리하지 못하는 천생 '먹물'들이지요. 그러나 그들의 글을 읽는 모습은 어쩌면 우리처럼 편안한 삶 속에서 습관처럼 신문 잡지 따위의 글들을 삶과는 아무런 관계 없이 에멜무지로 읽는 우리 삶을 돌이켜 보게 합니다. 눈을 붉히며 주식과 부동산 투자에 대한 글을 읽어치우는 우리의 삶은 또 뭡니까? '부자가 되는 법' 같은 주제의 책에만 몰입하는 우리의 삶은 또 뭔가요?

죽음 앞에 선 지식인들의 삶은 그들 스스로가 온몸으로 보여주듯, 그동안의 삶 모두가 글로써 이루어져 있고, 앞으로의 삶 역시 글로써 이어갈 것임을 보여줍니다. 시체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 수용소의 한 귀퉁이에 앉아 하이네의 시를 낭송하는 한 지식인의 사색의 단편들은 오늘 우리 '먹물'들의 삶과 한층 대조가 되니, 더 아름답군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가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내려올 줄 모르고 있다는 소식을 잠시 접어두고, 한 번 펼쳐 볼 만한 책입니다.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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