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영화의 거장들](3) '이블데드'의 샘 레이미

중앙일보

입력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원래 돈 없이도 만드는 영화가 호러였던 80년대에 샘 레이미만큼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승부를 걸어 경제적으로 성공한 영화를 만든 이도 드물 것이다.

재능있는 다른 영화 천재들과 마찬가지로, 샘 레이미도 어렸을 때부터 8미리 카메라를 들고 이곳 저곳을 닥치는 대로 찍던 시네키드였다.

작은 영화만들기에 재미를 붙이고 경험이 쌓이면서, 장편영화를 만들 욕심을 갖게 되지만 돈을 댈 사람을 구하는게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레이미는 끝까지 여기저기를 떠돌며 돈을 끌어모아〈이블데드〉의 촬영을 시작한다.

그렇지만 인건비나 출연료는 자원봉사로 때운다 치더라도 기본적인 제작비라는 것은 턱없이 모자랐고, 레이미는 그 때까지의 촬영분을 편집, 자본주들 물색에 나선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여기저기서 소개받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영화는 완성되었고, 레이미는 새로운 호러작가로서 주목받게 된다.

당시 자원봉사자로 편집에 코엔형제, 촬영은 〈맨 인 블랙〉과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의 배리소넨 필드가 맡아 날아다니는 듯한 카메라 워크를 보여주었다.

〈이블데드〉는 단지 저예산으로 만든 영화라서가 아니라 그 핸디캡을 연출의 테크닉으로 극복한 점에서 더 높은 가치를 지닌 영화이다. 다들 아실테지만, 악령이 희생자들을 덮치는 장면마다 등장하는 바닥에 깔려 희생자를 향해 돌진하는 카메라는 명불허전이라... 당시만 하더라도 극한 공포감을 느끼게 해주던 신선한 아이디어 였던 것이다.

지금이야 비디오 가게에서 이 시리즈를 3편까지 구해보는 일이 쉬운 일이지만, 당시 80년대에 소년이었던 필자는 한창 나돌던 화질 안좋은 불법 복제 비디오로 〈이블데드〉를 보고 밤잠을 설친 기억이 생생하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 새로움에 경탄하며...

샘 레이미의 두번째 영화는 이 영화 덕분에 손쉽게 제작되는데 제목은 〈크라임 웨이브〉. 〈이블데드〉의 편집기사였던 코엔 형제가 각본을 맡은 이 영화는 그래서인지, 레이미의 연출력보다는 엎치락 뒷치락하는 각본의 짜임새가 왠지 지금 생각하니 코엔형제 표라는 생각이 든다.

87년에 〈이블데드 2〉를 만들고 뜸하던 레이미는 별로 돈도 못벌었지만, 자신과 같은 역량있는 후배들을 지원하는 일을 계속하던 중, 90년에 최초로 메이저 영화사와 손을 잡고 〈다크맨〉을 만들게 된다. 주연은 지금은 너무나도 유명해진 리암 니슨.

어쩐지 메이저 영화사의 입김이 작용한 듯, 이 영화에서도 레이미의 기발한 상상력과 뒤를 치는 연출력은 그 칼날이 전만 못하다.

이후 웨스턴 무비 〈퀵 앤 데드〉를 내놓았지만, 진 해크먼과 샤론스톤은 레이미와는 영 안어울리는 듯 싶다.

왜, 저예산 독립 영화의 신동 레이미가 메이저 물을 먹더니 그 재기발랄함을 상실했다는 말인가? 실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장 최근작은 빌리 밥 손튼과 손잡고 만든 〈심플 플랜〉. 공포물은 아니지만 그의 아이디어가 조금씩 되살아나는 모습이었다.

하기사 이제는 레이미도 나이가 있는데 어찌 그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녹이 슬지 않았겠는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되지만, 막판에 만루홈런 칠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은 많지 않은 형편이다.

필모그래피 Filmogrphy

1982년 이블데드 (The Evil Dead)
1985년 크라임 웨이브 (Crime Wave)
1987년 이블데드2 (The Evil Dead2 : Dead by Dawn)
1990년 다크맨 (Darkman)
1993년 이블데드3 (The Evil Dead : Army of Darkness)
1995년 퀵 앤 데드 (The Quick and the Dead)
1999년 심플 플랜 (Simple Plan)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