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경쟁의 고단함을 엿보는 퀴즈쇼

중앙일보

입력

미국을 여행하며 짬짬이 본 TV프로그램 가운데 단연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 (Who Wants To Be a Millionaire)〉였다.

매주 세 차례(화·목·일), 그것도 프라임 타임에 방송되며 시청률 베스트10에 단골로 든다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생방송 퀴즈가 좋다〉와는 얼핏 보아 비슷했지만 부분적으로 많이 달랐다.

우선 상금의 규모에서 차이가 났다. 한국은 2만원에서 시작해 2천만원으로 끝나는 데 비해 미국은 인구와 영토의 크기에 걸맞게 1백달러에서 출발해 1백만달러로 끝난다.

게다가 한국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상금의 절반을 성금으로 내야 하니(착한 백성이다)실제로는 더 큰 차이가 나는 셈이다.

한국이 총 10문제 중 앞의 5문제가 4지선다형이고 나머지는 주관식 단답형인 데 비해 미국은 15문제 모두 4지선다형인 점도 달랐다.

또한 6번 문제 이후에는 일단 제시어만 보여 주는 한국에 비해 미국에서는 문제를 완전히 보여준 후 출연자에게 도전 여부를 묻는 게 특이했다.

퀴즈 쇼의 생명은 공정성이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1백만달러의 주인공이 된 젊은이의 수기를 우연히 잡지에서 읽었는데 출연자 선정부터 문제 보안에 이르기까지 한 점 의혹 없이 진행하려는 제작진의 노력이 가상했다. 전화와 컴퓨터로 출연신청을 받는데 그 절차가 곧바로 예심이었다.

한국처럼 공개된 예심 없이 단번에 출연하는 게 아니라 같은 절차로 뽑힌 10명의 후보와 겨루어 이겨야만 사회자인 리지스 필빈(만 67세인 할아버지)과 마주앉게 된다. 이 과정은 모두 방송 내용에 포함된다.

퀴즈는 게임이자 일종의 쇼다. 쇼라면 미리 짜인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퀴즈는 누구도(제작진도, 시청자도, 출연자도) 최후의 승자를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 매력이다. 그 점이 세상살이와 닮았다.

퀴즈 쇼를 통해 상식을 늘리려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히려 예측불허의 고난도 정글(그곳에선 오직 '아는 것이 힘이다')에서 살아남거나 죽는(?) 사람들의 피거나 구부러진 표정을 통해 생존경쟁의 고단함을 엿보는 재미야말로 각별한 시청동기가 된다.

〈퀴즈가 좋다〉는 애초에 〈백만장자…〉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떳떳하게 밝히고 시작했다.

〈백만장자…〉 역시 영국의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사 왔다고 밝힌 바 있다.

바라기로는 한국에서도 좋은 아이디어를 개발해 국제시장에 내다팔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 일은 자존심에 돈까지 얹어 준다.

퀴즈가 좋은 것은 그것이 긴장의 이완과 함께 일정한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깨닫지 않았는가.

만나고 싶어도 만나기 어렵고 피하고 싶어도 떡하니 놓여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운인 것이다.

퀴즈 쇼를 보면 화부터 나는 시청자가 있다면 다음 사항을 유념하며 분을 삭일 필요가 있다.

분노의 요인이 적은 노동으로 엄청난 횡재를 한다는 점인데 그들이 소모하는 지적, 정서적 칼로리의 양은 실로 엄청나다.

* 주철환 교수는 방학을 맞아 프로그램 기획 및 강의 자료 수집을 위해 미국 서부를 방문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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