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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ISSUE] 조수미·소녀시대도 입는다 … 파격 라인 서승연 드레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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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 한 벌에 1000만원쯤. 성악가 조수미씨와 현대무용가 안은미씨, 걸그룹 소녀시대가 국제적인 행사 때마다 입는 드레스를 만드는 사람. 디자이너 서승연(43)씨다. 지난해 10월 이후 조수미씨가 입고 무대에 오르는 대부분의 의상이 서씨의 작품이고, 안은미씨는 2009년 ‘백남준 국제예술상 수상작가전’에서 서씨의 드레스 일곱 벌을 입고 사진전을 열었다. 소녀시대 멤버 제시카와 서현 역시 해외공연 등에서 입기 위해 서씨의 드레스를 자주 주문하는 단골이다. 지난달 29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2011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선 소녀시대 멤버 아홉 명 전원이 서씨의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을 밟았다. 유명인들이 특별한 시간·장소를 위해 그의 드레스를 주문한다면 일반 고객들은 평생 단 한 번뿐인 결혼식을 위해 그를 찾는다. 대기업 임원의 자제나 ‘남들보다 일찍 성공한’ 기업 임원 본인인 경우가 많다. 서씨는 “민감한 부분이라 실명을 거론하긴 힘들지만, 특징이라면 대기업 오너 일가보다는 자수성가형 고객이 더 많이 찾는다”고 했다. 몇천만원짜리 해외 브랜드 웨딩드레스 틈에서 ‘토종’으로 자리 잡은 그를 f가 만났다. 그는 “누가 봐도 ‘아, 저 드레스는 서승연이 만든 거구나’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잠자는 시간 빼곤 드레스만 생각하는” 노력파였다.

글=강승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드레스 디자이너 서승연씨. “성격이 내성적이라 사진에서만큼은 강해 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우리나라에서 패션을 전공하고 취직하기 위해선 표준 체형이어야 해요. 요즘은 좀 덜하다지만, 제가 대학을 졸업하던 1991년엔 예외 없이 그랬어요. 디자인실에서 막내 사원은 피팅 모델부터 해야 했거든요. 회사에서 만드는 옷을 입고 가봉할 수 있는 체형이라야 디자이너로 취업이 됐죠. 전 그렇지 못해 학교 다닐 때부터 걱정이 많았어요.”

 1m60㎝ 정도의 다소 작은 키, 그는 스스로의 표현으론 ‘하체 비만’인 체형이다. 하지만 다행히 취직은 금세 했다. 지금은 가톨릭대 성심교정으로 이름이 바뀐, 성심여대에서 의류직물학을 전공한 그는 4학년 2학기 때 지도교수의 소개로 한 중소기업의 ‘첫 디자이너’가 됐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수출 위주 회사여서 제가 입사하기 전까진 따로 디자이너를 두지 않았던가 봐요. 그런 회사의 첫 디자이너였으니 일이 많았죠. 디자인은 물론 생산과 수출에 관계된 절차까지 모두 해야 했으니까요.”

 “규모 있는 디자인실에서 배웠다면 3~4년 걸렸을 일을 몇 달 안에 다 경험했다”는 그는 이듬해 여름 독립했다. “내 옷을 만들고 싶어” 같은 과 동창 김신일(2008년 작고)씨와 동업을 해 ‘양장점’을 낸 것이다. 김씨는 92년 결혼을 하며 일을 그만뒀다.

 “친구와 각각 200만원씩 투자해, 지금도 부모님이 살고 계신 서울 후암동 단독주택 한쪽에 ‘데니쉐르 멤버스 부티크’를 차렸어요. 원래 15년 동안 세 들어 영업했던 세탁소 주인아저씨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난 자리였죠. 크기가 10㎡(3평) 남짓 했으려나….”

 90년대는 ‘기성복의 전성시대’로 불러도 좋을 만큼 기존 양장점 문화가 사라지던 때였다. 소공동과 명동 일대에 자리 잡고 70~80년대를 풍미하던 ‘선생님급 디자이너’들은 모두 서울 강남으로 옮겨갔고, 일부는 백화점에 매장을 냈다. 또 일부는 기존 고객만으로 과거의 명성을 유지하던 때였다. 맞춤 양장을 밀어내고 시장을 평정한 것이 기성복 브랜드였다. 서씨는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 싶어 앞뒤 가릴 것 없이 시작한 일인데,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도전이었다”고 했다. 손님은 많지 않았다. 겨우 손해를 보지 않는 수준으로 몇 달이 지났다. ‘맞춤 원피스, 투피스’ 작업을 주로 했던 그에게 처음 웨딩드레스를 주문한 건 친구였다.

서울 청담동 ‘데니쉐르 바이 서승연’ 웨딩숍에서 디자이너 서승연씨가 자신이 만든 웨딩드레스를 살펴보고 있다.

 “졸업작품으로 이브닝드레스를 했거든요. 주문한 친구는 당연히 제 실력을 알고 있었고, 또 믿어줬으니 절 찾아온 거죠.” 서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좋은 집안’ 친구가 많았던 터라 그는 친구들의 웨딩드레스 주문을 받으며 서서히 웨딩드레스 디자이너가 되어 갔다.

 “이화여대 앞에 웨딩드레스 가게가 많았지만 거긴 ‘보통사람’들이 많이 갔죠. 제 기억엔 90년대 ‘잘사는 집’ 신부들은 앙드레 김 선생과 이광희 선생 웨딩드레스를 입었어요. 저도 제가 만든 친구 드레스를 들고 그네들이 신부화장 하던 곳에 많이 따라갔어요. 남산에 있는 ‘헤어뉴스’가 대표적인 곳이었죠. 친구가 화장을 하는 동안 기다리면서 다른 신부들이 입을 웨딩드레스를 훔쳐봤어요. 앙드레 김과 이광희 선생 옷이었죠.”

 그의 고백은 이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창피한 일이긴 해요. 대가들의 작품을 보고 공부하고 싶었는데 그렇다고 대놓고 ‘가르쳐 달라’고 할 순 없고… 몰래몰래 대기실에 걸려 있는 옷을 들춰보면서 제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 갔죠.”

 그렇게 하나 둘 고객이 늘어 창업 이듬해인 92년 여름, 그도 청담동에 입성한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조성아씨의 부추김이 컸다.

 “성아씨랑 동갑이에요. 요즘은 화장품 사업을 하고 있지만 그땐 신부화장도 많이 하고 있었죠. 제가 드레스를 하고 성아씨가 신부화장을 하면서 친해졌어요. 제 옷이 좋다면서 다른 신부들도 소개해 줬는데 ‘후암동 후미진 골목에 있는 초라한 가게’가 걸림돌이었어요.”

 예비 신부들이 작업실의 외양을 보고 실력을 의심하거나 마음이 상해 돌아가는 경우가 생겼단 얘기다.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었죠. 평생 한 번뿐인 웨딩드레스를 고르는데 주택가 구석진 골목에 있는 가게에서 맞춰 입고 싶은 신부는 별로 없을 테니까요.”

 동업자인 친구와 1000만원씩, 2000만원을 들여 청담동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손님은 조금씩 늘어났다. 하지만 1996년 한의사인 남편과 결혼한 뒤 슬럼프가 찾아왔다. “고객들과 상담하는 것에 지쳤다”는 게 이유다.

 “다른 데선 볼 수 없는 드레스를 입고 싶어 신부들이 찾아옵니다. 신부 어머니도 같이 왔죠. 그런데 그분들 눈엔 제 웨딩드레스가 파격이었나 봐요. 어깨를 한쪽만 드러내거나 가슴라인을 강조한 디자인이 어른들 눈엔 ‘너무하다’ 싶었겠죠. 오죽하면 신부 어머니가 신부한테 ‘너 저런 옷 입고 결혼하면 행복하게 못 산다’고 협박(?)까지 했겠습니까. 그런데 전 그걸 못 견디겠더라고요. 제 옷더러 ‘특이하다’고 말하는데 제 드레스는 ‘특별한 것’이거든요. 특이한 건 ‘이상하다’는 말도 포함돼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는 가족들을 모아 놓고 “그만두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하지만 세 살 아래 여동생이 당차게 반대하고 나섰다. 지금은 서씨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승완(39)씨다.

 “동생이 삼성전자 마케팅실 3년차 사원이었어요. 그 아이도 뭔가 다른 일을 해보려고 했던 때고, 또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사업가적 기질도 있었거든요. 동생이 말리니까 ‘그래, 그럼 다시 해보자’ 싶더라고요.”

2009년 방영된 드라마 ‘시티홀’의 남·녀 주인공을 맡은 탤런트 차승원ㆍ김선아의 극중 모습이다. 김선아의 웨딩 드레스가 서씨 작품이다. [데니쉐르 바이 서승연 제공]

서승완 대표가 합류해 나름의 경영진단을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부도나지 않은 게 신기할 뿐”이란 결론이었다. 서씨가 주로 해오던 것은 ‘웨딩드레스 맞춤 대여’였다. 고객이 주문한 웨딩드레스를 만들어 입고 나면 그것을 다시 다른 고객에게 수선해 입히는 식이었다. 지방의 웨딩업자들이 그가 만들어 놓은 드레스를 사고 싶어 했지만 그것도 거절한 채 계속 버텼으니 팔지 않은 웨딩드레스만 쌓여 갔다.

 “이 상태론 더 이상 회사를 유지할 수도 없고 작업실 임차료도 낼 수 없다고 하는데 더 버틸 재간이 없더라고요.” 이후 마음을 고쳐먹고 경영에 관한 일은 요즘 모두 서승완 대표에게 일임하고 있다. 그는 이제 “돈 버는 일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잘 모른다”고 했다. 그 덕에 그는 디자인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 2008년 가수 유채영의 결혼식 웨딩드레스를 제작했고, 2009년 영화배우 정시아, 가수 이현우 등이 결혼식용으로 그의 옷을 주문했다. 같은 해 가을엔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의 앨범 재킷용 의상도 만들었다. 그간 조수미 의상을 전담하다시피 했던 앙드레 김 선생이 세상을 뜬 직후였다. ‘존경하던 그분’이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 셈이다.

 이제 그의 작업실 문턱에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들락거린다. 그 역시 이른바 ‘스타 디자이너’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희망은 여전히 소박하다. 그는 “더 많은 사람이 ‘특별한 날’ 내 옷을 입을 수 있게 오래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늙도록 지치지 않고 드레스만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서승연 드레스 처음 입어본 조수미, 꽃다발 들고 작업실 깜짝 방문

성악가 조수미씨는 요즘 서승연씨의 단골 고객이다. 2010년 가을, 독일 가곡 ‘너를 사랑해(Ich Liebe Dich)’를 취입할 당시 앨범 재킷용 의상(사진)으로 인연을 맺었다. 오랫동안 조수미씨 의상을 맡은 앙드레 김 선생이 그해 8월 세상을 뜨자 조씨는 새로운 디자이너를 물색했다. 몇몇 디자이너들에게 의뢰했고 서씨가 제작한 의상을 본 뒤 바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시제품으로 보낸 드레스를 배달한 서승완 대표에 따르면 조수미씨는 의상을 보자마자 “아이처럼 뛸 듯이 기뻐했다”. 앨범 재킷용 드레스로 사진 촬영이 끝나고 며칠 뒤, 조수미씨가 직접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서씨의 청담동 작업실에 들렀다. “깜짝 방문해 감사 인사도 전하고 새로운 의상을 주문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때 직접 주문한 의상은 2010년 12월 25일 KBS-1TV를 통해 방송된 ‘조수미의 크리스마스 선물’ 콘서트에서 선보였다. 이런 인연으로 요즘 조수미씨가 세계 무대를 돌며 입는 의상 중 20벌가량이 서승연씨의 작품이 됐다. 서씨는 “조수미씨는 의상에 대해 특별한 주문이 많지 않고 디자이너에게 일임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가수 소녀시대 9명이 지난달 ‘2011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MAMA)’에서 입은 의상은 해외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특히 9명 중 막내 서현이 입은 검정 드레스가 화제였다. 평소 얌전하고 정숙한 이미지의 서현이 가슴이 파인 드레스를 입고 레드 카펫에서 포즈를 취하는 내내 손을 가슴에 얹고 있었기 때문. 디자이너 서승연씨가 전하는 뒷이야기는 이렇다. “몸매가 훌륭해서 특히나 욕심이 많이 났다. 그런데 서현씨가 가슴이 많이 파인 걸 굉장히 부담스러워했다고 전해들었다.(웃음)”

지난달 29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2011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서 걸그룹 소녀시대가 서승연씨가 만든 드레스를 입고 레드 카펫에 올랐다. 유리·태연·수영·써니·효연·제시카·티파니·서현·윤아(왼쪽부터). [싱가포르 AP=연합뉴스]

 소녀시대 9명 중 의상에 가장 욕심을 냈던 건 제시카다. “자신만의 의견도 뚜렷하고 요구사항도 자세했다. 그래서 그런지 옷을 잘 소화하는 것도 제시카인 것 같다”는 게 디자이너의 의견이다. 서승연씨는 “윤아씨는 보기와는 다르게 털털한 성격이어서 옷에 까다롭진 않은데 너무 마른 편이어서 굴곡을 살린 디자인을 하는 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또 “수영씨는 실제로 보면 몸매가 거의 완벽에 가까운 편이고 도시적인 세련미가 느껴져서 어떤 옷도 다 잘 어울린다”고 평했다. 서씨는 소녀시대의 의상 제작 과정에서 “여성 멤버가 9명이다 보니 서로 경쟁도 굉장히 치열한 것 같았다”면서 “일부 멤버는 따로 연락해 새로운 주문 사항을 말하기도 하고 추가로 가봉을 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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