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공대 괴롭힌 2m 파도 … “중국선원 그렇게 심한 저항 처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인천해경이 13일 공개한 범행 흉기. 중국 선장 이 휘두른 흉기는 당초 깨진 유리창으로 알려졌으나 경찰 조사 결과 조타실에서 작업용 으로 쓰는 길이 25㎝ 칼로 드러났다. 해경은 “길이 17㎝ 칼날만 발견됐다” 고 밝혔다.

“청호야, 미안하다.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서 진짜 미안하다.”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3005함 승무원 강갑성(47) 경사의 목소리가 미어졌다. 그는 지난 12일 아침 서해에서 불법조업 중이던 중국어선 나포작전에 고 이청호(40) 경장과 함께 참가했다. 평소 신중했지만 이날 따라 “파도가 높아 위험하니 천천히 가자”던 이 경장의 사려 깊은 말 한마디가 지금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대원들은 13일 자정 넘어 이 경장이 잠들어 있는 인하대병원을 찾았다. 대원들의 표정에는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묻어났다.

 그날 바다는 사나웠다. 2m 높이의 파도가 중국어선 나포작전 내내 대원들을 괴롭혔다. 섬광탄으로도 어둠이 걷히지 않았다. 불리했지만 영해를 침범한 중국 어선이 도망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는 없었다. 3005함 검색팀의 막내 박성주(30)·강희수(29) 순경이 밝힌 그날의 작전은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12일 오전 5시40분쯤 우리 쪽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침범해 조업하는 중국 어선 두 척이 발견됐다. 20분 뒤 검색팀 16명이 고속단정 두 척을 나눠 타고 어선에 접근했다. 거리를 두고 조업하던 중국 어선들은 고속정이 접근하자 서로 선체를 붙였다. 중국 어선들이 단속에 저항할 때 흔히 쓰는 연환계(連環計)였다. 루원위15001호(66t급) 갑판 위에는 중국인 선원 8명이 죽창과 갈고리·손도끼·삽 등을 들고 우리 해경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타실에 있는 선장은 해경의 정선명령을 무시한 채 전속력으로 도주했다.

 오전 6시 나포작전이 시작됐다. 선원들이 유리병을 던지며 고속정의 접근을 막았다. 물대포 엄호를 받으며 대원들은 스펀지탄을 사용하는 비살상용 유탄발사기를 쏘고 섬광탄을 터트리며 등선을 시도했다. 강희수 순경의 방패 위로 죽창과 삽 공격이 쏟아졌다. 강 순경은 “단속 임무를 시작한 이래 이번처럼 심한 저항은 없었다”고 말했다.

 10여 분 만에 어선에 오른 대원들은 선원들을 선수로 몰았다. 작전을 시작한 지 25분 만에 선원들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남은 건 조타실의 선장뿐이었다. 선장 청다웨이(42)는 조타실 문을 걸어 잠그고 저항했다. 손에는 길이 25㎝짜리 흉기가 들려 있었다.

 두 개의 조타실 출입구는 폭 54㎝, 35㎝였다. 쪽문을 부수고 이낙훈 순경이 진입을 시도했다. 방검복과 장비를 갖춘 대원이 들어가기엔 너무 좁았다. 몸을 옆으로 돌려 겨우 조타실로 진입했을 때 선장이 흉기로 이 순경의 복부를 찔렀다. 선장은 4단봉을 맞고 떨어뜨린 흉기를 다시 집어 주출입구를 부수고 들어온 이 경장의 옆구리를 찔렀다. 안성식 인천해경서 수사과장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17㎝ 길이의 칼날이 거의 모두 들어가 복부대동맥이 파열됐다”고 말했다. 뒤이어 진입한 대원들이 난투극을 벌인 끝에 선장을 제압했고 오전 6시59분에 상황이 종료됐다.

 작전은 매뉴얼에 충실했지만 대원들에게는 악몽이 됐다. 하지만 이 경장이 온몸을 던져 가르쳐주려 했던 게 ‘비장한 각오’와 ‘해양경찰의 자부심’임을 대원들도 알고 있다. 강 경사는 “이 경장은 팀장이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팀워크에 지장을 줄까 봐 내심 어렵고 힘들어도 늘 진지하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고 말했다. 박 순경은 “총을 쏴야 할 순간에는 사용하겠다”고 했다. 비장한 표정이었다.

인천=유길용·최모란 기자

해경 피살 후폭풍
해경 동료가 밝힌 나포작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