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FTA는 사법주권 세계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7면

한희원
동국대 교수·법학

결론적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의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가 사법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일부 판사의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국제분쟁 해결에 대한 법 인식 수준의 한계다. 법학교육 커리큘럼의 조속한 혁신, 그동안 모든 정권이 게을리한 국제통상 전문가의 정책적 양성이 시급함을 일깨워 준다.

 2011년 11월 30일 그바그보 코트디부아르 전 대통령이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전범(戰犯)재판을 받으러 네덜란드 헤이그에 도착했다. 그는 ICC 법정에 서는 첫 번째 국가원수가 됐다. 1997년 집권한 캄보디아 훈센 정권은 인간 대학살인 킬링필드를 자행한 크메르 루주 공산당 관련자를 처벌하기 위해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과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에게 사법 지원을 청원했다. 우리의 경우 1999년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이 국제연합 B규약위원회에 대법원이 유죄라고 판결한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을 청원해 인권침해라는 결정을 받았다. 박원순 현 서울시장은 『역사가 이들을 무죄로 하리라』라는 책에서 대한민국 대법원의 유죄판결을 국제심판기구에 이의신청해 번복한 사례들을 당연한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같은 국제재판권의 다변화는 특히 인권·환경·국제과학표준·경제교류의 영역에서 현저하다. 세계관할권의 확장이라는 이러한 변모는 세계화에 따른 국제질서의 법치주의를 의미한다. 그것은 무력을 기반으로 한 일방적 제국주의의 극복을 상징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범죄자를 단죄한 뉘른베르크 재판소를 비롯해 국제사법재판소(ICJ), ICC, 국제상사중재원(ICSID)이 주권국가를 초월해 사법정의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 국제사법질서의 현주소다. 원래 주권국가 사상은 1648년 체결된 베스트팔렌(Westfalen)조약으로 시작됐다. 베스트팔렌조약 이후 국제질서는 주권최고의 원칙을 구축했고, 내정불간섭의 원칙을 공고히 했다. 하지만 세계대전을 경험한 인류는 유엔을 창설했고 다수의 국제규범을 출현시켰다. 국제법은 주권최고라는 절대 개념을 극복한다.

 국제법의 대표인 조약은 국가주권을 자발적으로 제약한다. 예컨대 A·B 양국의 자동개입 군사동맹조약은 전쟁개입에 대한 주권국가의 선택권을 박탈한다. A·B 두 나라는 어느 나라가 전쟁에 개입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참전하기로 합의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법관할권의 전문화와 세계화는 사법주권의 당연한 모습이다. 결국 FTA의 ISD가 사법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일부 판사의 주장은 기본6법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교육을 받은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로스쿨이 출범한 오늘날에도 우리의 로스쿨이나 법과대학에서는 글로벌 경쟁력 있는 법조인의 양성을 위해 당연히 배워야 하는 국가안보법, 국제기구법, 국제인권법, 국제분쟁해결법, 세계무역기구(WTO)법, 유럽연합(EU)법 등 국제 관련 법학을 학습하지 못한다. 주권국가를 초월해 발생하는 현란한 분쟁에 대해 법적 판단 능력을 배양해야 하는 법관들은 본질적으로 개별국가의 전통법이 우리법이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으로 성립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의 법은 국제법·세계법·만민법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직시하고 자기계발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고 일류의 국가가 되기 위해 각국은 ‘세계화’를 의무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국경 없는 경제활동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국제경제질서가 WTO 체제이고 개별적인 발현이 FTA다. 글로벌 국제질서의 변모에 따라 국가사법주권도 질적·양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세계사법질서의 진화하는 모습임을 직시해야 한다.

한희원 동국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