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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머지]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게 될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게 될까

강한섭

*저작권법으로 무장한 20세기형 영화유통계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첨단 기술로 무장한 냅스터들의 인해전술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극장 매표소에 관객들이 내민 지폐들은 꼬깃꼬깃 접혀져 있다. 그만큼 관객들은 한편의 영화를 선택하는 일에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영화 입장료가 할인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관객들은 천국을 만난 듯 환호성을 지르겠지만 영화 제작자들이나 극장주들에게는 악몽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런데 영화광들의 꿈에서나 가능했던 일이 영화산업계 내부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거론되기 시작하고 있다. 바로 인터넷 테크놀러지의 급격한 발전과 대중적 확산 때문이다. 인터넷이 편지를 공짜로 보낼 수 있게 만들고(이메일)
, 통신비용을 무료로 만들었는데(무료 전화)
, 영화라고 예외일 수 있을까?

1. 냅스터 현상

근착 비즈니스 위크지는 연례행사로 e-비즈니스를 움직이는 25명을 선정하는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나 소프트 뱅크의 손정의, 그리고 이 베이의 메그 휘트맨 등의 선정은 당연했다. 그러나 금년 리스트에는 머리를 빡빡 민 19살 청년의 등장이 당연 화제였다. 바로 MP3 음악파일 공유 프로그램인 냅스터Napster를 개발한 컴퓨터 매니아 션 패닝이 e-비즈니스계의 혁신자 대표로 선정된 것이다.

냅스터는 네티즌들이 각자 개인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에 저장하고 있는 MP3 파일을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공유하도록 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인터넷 서비스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악을 가수나 곡명별로 검색한 다음 무료로 전송받을 수 있다. 물론 냅스터 이전에도 발 빠른 네티즌들은 검색 사이트나 음성적으로 음악파일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와레즈 사이트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공짜 음악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음악파일을 찾는 데 드는 품과 시간이 문제였다.

모든 음악을 공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이 냅스터 프로그램이 급속히 퍼지면서 션 패닝은 네티즌들의 영웅이 되었지만 기존의 음반산업에게는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 당연히 메이저 음반산업의 이익단체인 ‘미국음반협회Recording Industry Association of America’가 한 곡 당 10만 달러를 내 놓으라며 냅스터社를 저작권법 침해로 고소했다. 음반산업뿐만 아니다. 새로운 음반을 발표해도 판매가 급속하게 줄거나 아예 음반 판매가 불가능하게 될 상황에 처하게 될 지도 모르게 된 아티스트들도 ‘냅스터 죽이기’에 동참하고 있다.

냅스터社는 자신들이 음악을 직접 배포한 것이 아니라 MP3 파일 공유를 위한 일종의 도구만을 제공한다는 점, 즉 이 사업을 통해 직접 수익을 올리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어 저작권법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음반산업계는 미국 저작권법이 개인사용을 전제로 한 사적복제는 허용하지만 이 사적복제를 온라인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공개적으로 조장하는 행위는 소프트웨어의 ‘정당한 사용rule of fair use’ 규정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법원의 최종판결까지는 많은 시간과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칠 것이다. 그리고 MP3.com社를 피고로 한 저작권법 침해 재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냅스터社가 재판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현재의 미국 저작권법은 기본적으로 음반 제작사나 아티스트와 같은 음악 생산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이들은 그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엄청난 달러를 동원할 수 있는 재력과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사실은 ‘냅스터 대 미국음반협회’ 재판의 결과가 아니다. 냅스터社가 재판에서 패소하여 회사의 간판을 내리고 서비스를 중단하더라도 이미 음악산업의 배급 구조에는 근본적인 균열이 발생해 버렸기 때문이다. 음악의 배급을 생산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은 생산한 음반을 구매할 소비자를 찾는 과정이며, 역으로 소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이 선호하는 음악을 찾는 과정이다. 바로 이 쌍방향의 구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즉 음악 생산자(아티스트와 음반사)
→ 음악 유통자(음반 판매상과 방송국)
→ 음악 소비자로 이어지던 전통적인 음악 배급구조에서 음악 유통자의 역할이 감소되거나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음악 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중개상의 역할 감소는 이미 거의 모든 산업에서 관찰되고 있다. 증권사의 객장을 통하지 않고서도 주식을 사고 파는 데이 트레이딩이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으며 자동차 대리점을 거치지 않고 자동차를 사고 팔 수 있다. 즉 인터넷은 생산자로 하여금 중간 상인을 통하지 않고서도 상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팔 수 있는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을 제공하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이를 통해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상품을 구매하게 된 것이다.

인터넷의 혁명은 생산과 소비의 측면보다는 바로 중간상의 소멸 즉 유통의 혁명인 것이다. 이러한 테크놀러지 진화의 시대에 기존의 음반 산업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에 저항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음반사들은 음악 생산자의 역할과 함께 아티스트들을 소비자에게 연결하는 중간상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음반사들의 수익은 음반의 유통을 통제하고 특정한 아티스트와 음악을 막대한 마케팅 비용으로 뒷받침하는 선택의 권력으로부터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변화에 직면하여 기존의 음악산업은 두 가지 양면작전을 동시에 구사하고 있다. 우선 그들은 냅스터와 같은 음악 공유프로그램의 확산을 전통적인 저작권법에 호소하거나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과 같은 인터넷 시대에 적용되는 새로운 저작권법의 제정으로 맞서고 있다. 또 하나의 전략은 기존의 음반사들이 직접 인터넷을 이용하여 음악을 판매하는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이미 지난 4월 이러한 비지니스를 시작한 소니사는 싱글 음반의 경우 3.50달러의 가격을 책정했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의 음반 판매가격보다도 높은 가격으로 음반사들이 아직도 인터넷이 요구하는 음악산업의 근본적인 변혁에 얼마나 둔감한가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2. 공짜 영화

공짜 음악에 MP3와 냅스터가 있다면 공짜 영화에는 Divx와 ifilm.com이 있다. 요즘 인터넷에 능통한 네티즌들은 극장에 가지 않는다. 비디오 대여점에도 발을 끊은 지 오래다. 왜냐하면 최신 할리우드 영화를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는 Divx라는 동영상 파일이 인터넷 와레즈 사이트를 통해 공공연하게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Divx라는 파일 형식은 한국의 LG전자가 미국의 Divx社와 손잡고 개발한 디지털 비디오 디스크(DVD)
의 한 형식이었다. 하지만 DVD 세계 표준화 경쟁에서 패해 이미 지난해 개발을 중단한 비운의 포맷이다.

지금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Divx는 LG가 개발한 DVD 방식과 이름은 같지만 동영상의 압축과 재생 방식에는 차이가 많다. 해커들이 현재 세계적 표준으로 자리 잡고있는 MPEG4와 MP3를 재조합해 만든 비표준 동영상 파일이기 때문이다. 불법이지만 이 파일의 성능은 뛰어나다. DVD나 비디오 테이프에 담긴 영화들을 간단한 인코딩 장치를 통해 동영상 파일로 변환할 수 있으며, 파일 용량도 같은 길이의 DVD에 비해 절반에 불과하며 화질과 음질도 35밀리 필름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Divx 파일의 유통은 아직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냅스터 프로그램의 사용과는 달리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우선 개인적 용도로만 사용하도록 허가된 DVD 영화를 불법으로 변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Divx용 재생 프로그램을 만들어 ‘윈도 미디어 플레이어’나 ‘리얼 플레이어’와 같은 동영상 재생 프로그램에 무단 삽입하는 것도 위법임에 틀림없다. 아직 Divx가 표준화된 동영상 형식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기술적인 하자가 발생하고 동영상은 기본 용량이 수백 MB에 달해 초고속 인터넷 사용자가 아니라면 사용 자체가 어려운 점도 있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사실은 음반 유통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의 유통에도 근본적인 테크놀러지의 변화가 이미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세기 말 영화가 발명된 이래로 영화 테크놀러지는 크게 4차례의 이노베이션을 이룩하였다. 무성에서 유성영화로의 발전, 흑백에서 칼라영화로의 전환, 시네마스코프로 대표되는 대형화면의 등장, 그리고 피사체 없는 인공영상을 만드는 컴퓨터 그래픽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영화 테크놀러지의 이노베이션은 모두 영화를 만드는 제작 기술에 국한된 것이었다. 영화역사 백 년 동안 영화 배급의 기본적 방식은 단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영화는 줄곧 필름이라는 셀룰로이드에 담겨진 다음 양철통에 넣어져 유통되었다. 텔레비전이나 비디오 테이프를 통한 영화의 배급은 어디까지나 극장에서의 상영이 끝나고 부수적인 이익창출을 위해서였다.

인터넷을 통한 영화 배급의 새로운 가능성은 음반산업에서와 마찬가지로 극장이라는 중간 매개상의 약화와 소멸을 의미한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영화 배급사이자 극장체인인 UGC가 최근 도입한 월 단위의 회원제도는 이러한 극장업계의 위기감을 반영한 것이다. UGC사는 98프랑(약 1만5천 원)
만 내면 프랑스 전국 26개 극장에서 한 달 동안 무제한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정액권 제도를 시작하여 3주만에 1만7천 명의 회원을 모았다. 시장의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한 일종의 덤핑 행위라는 군소 극장들의 항의로 이 제도의 실시는 잠정적으로 중단되었지만 영화산업이 인터넷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의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이 제도의 도입은 의미심장하다.

인터넷은 영화 유통의 방식과 함께 영화라는 형식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ifilm.com이나 atomfilms.com과 같은 영화 포털 사이트들이 시도하고 있는 단편 실사영화나 애니메이션의 무료 전송 사업이다. 이들은 인터넷에 의해 영화가 크게 극장에서 상영하는 초대형 스펙타클 영화와 인터넷으로 감상하는 단편영화로 양분화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영화관은 음악의 대형 콘서트 장소나 오페라 공연장과 같은 기능으로 전환하고 보통의 영화는 단편화되어 인터넷에서나 감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3. 기술과 현실

인터넷 시대는 기본적으로 정보와 통신이 무료가 되는 세상을 상정하고 있다. 인터넷은 태생적으로 기술 독점이 아니라 기술의 개방open standards에 의존하고 있으며 바로 그 개방성으로 오늘의 놀라운 급속 성장을 이룩하였다. 또한 인터넷은 중심이 없는 네트워크로서의 성격에 의해 스스로를 무한히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열려진 공간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인터넷 비지니스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온라인 상에서 디지털 코드로 변조되어 유통되기에 적합한 소프트웨어들 즉 음악, 소설 그리고 영화는 현존하는 저작권법과 싸우면서 또는 저작권 그 자체를 변화시키면서 끊임없이 무료 유통의 가능성을 시험할 것이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산업계가 이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며, 시장에서 받아들인다고 대중에게 확산되고 일반화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냅스터社가 법정투쟁에서 승리하거나 기존 음반산업과의 타협으로 사업을 계속할 수 있다고 해도 곧 기존 음반사들이 엄청난 자금과 조직력을 가지고 이 새로운 비지니스에 참가하게 될 것이다. 영화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송속도와 압축기술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실시간으로 35밀리 필름의 화질을 인터넷에서 재현할 수 있는 동영상 파일이 개발되더라도 개봉 순서를 기준으로 나눈 다음 차별적인 가격정책을 실시하여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영화산업의 배급전략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신작 영화를 전송한다면 극장 수입이 감소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 비관주의를 뛰어넘는 하나의 사실이 있다. 이제 21세기의 음악과 영화 그리고 책의 유통은 더 이상 20세기와 같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즉 오늘의 냅스터가 사라지더라도 새로운 아이디어와 첨단의 기술로 무장한 내일의 냅스터들이 소비자 복지를 내세우며 출현할 것이다. 그리고 기존 산업계가 이노베이터들의 도전을 시장이 아니라 계속 법정에서 해결하려 든다면 소비자들은 결국 이노베이터들의 손을 들어주게 될 것이다. 기존 권력은 역사상 단 한번도 스스로 변한 적이 없다.

■ 강한섭 / 서울예대 영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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