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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 시간여행 1. - 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중앙일보

입력

안녕하세요. 조인스닷컴 야구담당 이재철입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은 추억의 명작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지난 영화에 대한 향수에 젖어듭니다. 또한 이 영화를 통해 그 시대에 활약한 배우들의 모습과 당시의 문화, 삶의 방식 등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추억의 영화처럼 추억의 명승부나 당시 세간의 화재를 이루었던 이벤트를 돌이켜보면 추억의 필름속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것입니다. 이에 지난 경기를 되새겨보고 싶은 욕구도 종종 생길 것입니다. 그럼, 저와 함께 한국야구의 역사를 돌이켜볼 수 있는 ‘과거로 가는 특급열차’를 타고 시간여행을 떠나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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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너의 서두를 장식할 한국야구계의 ‘대사건’으로 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을 거론하고 싶다. 필자도 그렇거니와 주변에 야구에 관계되는 사람들과 야구에 대한 담소를 나누기라도 하면 이내 82년에 있었던 한국과 일본의 명승부전을 떠올린다. 그 시절의 흥분과 감동이 18년이 지난 현시점에서도 가슴 깊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야구 경기를 볼 때면 가끔 한편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느낄 때가 있다. 특히 경기 종반에서의 극적인 역전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그 감흥은 배가된다. 이 경기는 이러한 극적인 요소로 야구팬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경기였다.

제 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가 열렸던 1982년 9월 잠실야구장. 82년에 출범한 프로야구에 의해 자칫 아마야구의 인기가 꺾이는 듯 했지만 한국에서 최초로 열렸던 세계야구선수권대회는 국민들의 관심을 잠시나마 아마야구쪽으로 돌리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프로선수들도 발을 밟아보지 못했던 현대식 시설을 갖춘 잠실야구장에서의 경기였고 수준급의 실력을 갖춘 각국 국가대표선수들의 플레이로 야구팬들을 한명 두명 잠실야구장으로 유도했다.

이대회에서 아마세계최강인 쿠바가 불참해 우승후보로 떠오른 한국과 일본이 각각 7승1패를 기록했고 이 두팀은 토너먼트가 아닌 풀리그전의 형식으로 치뤄진 이대회의 9월 14일 마지막 경기에서 만났다. 이 경기에서 이긴 팀이 자연 우승을 차지하게되는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한국팀 선발은 강국 미국과 대만을 차례대로 꺾으며 2승을 올린 선동열. 한국의 에이스 최동원, 이선희 등 내로라하는 투수들이 있었지만 어우홍 감독은 당시 20세의 선동열에게 일본전 출격을 명했다. 젊은 에이스 선동열에게 일본점령의 무거운 짐이 드리워진 것이다.

이것이 부담이 되었을까. 2회에 적시타를 허용하며 2실점을 했다. 더욱이 한국 타자들은 일본선발 스즈키의 위력적인 공에 맥을 못 추며 7회까지 1안타로 끌려갔다.

2-0의 지루한 스코어에 지친 관중들을 깨우친 ‘놀람교향곡’은 8회말부터 시작됐다. 선두타자 심재원이 중전안타를 치고 나가자 관중석은 기대감으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타석에는 지금은 고인이 된 김정수가 들어섰고 김정수의 방망이에서 큼지막한 중월 2루타가 뿜어져나오면서 1루주자 심재원이 홈인. 경기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돌변했다.

1번타자 조성옥이 번트를 성공해 만든 1사 3루의 상황에서 나온 김재박은 역사에 남을만한 번트를 성공했다. 일본투수 니시무라가 스퀴즈에 대비해서 멀찌감치 뺀 볼을 개구리처럼 뛰어올라 번트를 댔다. 이 타구는 3루라인을 절묘히 타며 안타가 됐고 스퀴즈에 대비하지 못해 늦게 스타트를 끊은 3루주자 김정수를 홈으로 불러들여 2-2 동점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번트는 감독의 작전에 의한 번트가 아니었다. 어우홍감독의 사인을 잘못 읽은 김재박과 일본의 배터리가 스퀴즈 사인으로 착각해낸 희대의 작품이었다.

2-2 동점이 된 후 1사 1루에 김재박을 두고 후속타자 이해창이 중전안타를 쳐내 1사 1,3루가 되었고 장효조의 내야땅볼때 홈에 뛰어들던 김재박이 홈에서 횡사를 하고 물러난 2사 1,2루의 상황에서 이 경기의 히어로 한대화가 들어섰다. 볼카운트 2-1에서 스트라이크성 볼이 연속으로 들어왔다. 스트라이크를 선언해도 항의할 수 없을만한 볼이 들어왔지만 심판은 볼로 선언했고 볼카운트는 2-3까지 몰렸다.

한대화는 역전을 갈망하는 잠실의 3만관중들과 한국의 야구팬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일본 구원투수 세키네의 6구째가 몸쪽 높게 날라왔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공이었다. 이 공을 한대화는 놓치지 않았고 타구는 밤하늘을 가르며 멀리 날라갔다. 비거리상 엄청 먼 타구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페어존으로 날아가던 공은 조금씩 휘어져나가면서 파울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 볼은 잠실야구장의 좌측폴대를 맞히며 외야그라운드 안으로 떨어졌다. 극적인 3점홈런이었다. 벤치에 있는 선수들이 모두 뛰쳐나왔고 한대화가 홈베이스를 밟는 순간 그를 축하하기 위해 나온 선수들에 의해 가려져 안보일 정도였다.

이 홈런한방으로 분위기는 완전 한국쪽으로 돌아갔고 9회초 선동열이 마지막타자를 2루수 플라이로 처리하며 우승이 확정되자 그라운드는 환호와 열광으로 가득찼다.

이 대회 우승은 한국의 세계선수권대회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이었고 이대회 3승에 대 일본전 완투승을 거둔 선동열은 대회 MVP를 차지했다. 이후 메이저리그 구단으로부터 집요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선동열은 85년에 해태에 입단, 95년까지 11년동안 통산 146승에 132세이브를 기록해 한국 최고의 투수로 군림했었다.

이 경기에서 극적인 역전 3점홈런을 쳐낸 한대화도 83년에 프로에 진출해, 골든글러브 8번 수상에 선동열과 함께 투타에서 최강해태의 전력을 이어나갔으며 그림같은 번트를 성공해낸 김재박도 골든글러브 5번 수상에,현재 현대의 사령탑을 맡는 등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일본과의 이 경기는 이후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며 야구팬들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다. 스포츠만이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을 느끼게해준 명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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