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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tory] ‘추격자’‘황해’‘완득이’ … 마흔 돼 주연 맡은 명배우 김윤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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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종근 기자]

김윤석(43), 그가 궁금했다. 동년배 배우들보다 스크린에 늦게 등장한 그를 보며 ‘어디서 뭐하다가 나타났는지’ 묻고 싶었고, 영화에 등장할 때마다 꿈틀거리는 캐릭터 연기를 펼치는 모습을 보며 ‘당신,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마흔 살이란 늦은 나이에 본격적인 첫 주연을 맡은 영화 ‘추격자’로 남우주연상을 휩쓸더니, 그 뒤 연타석 홈런을 내고 있으니 더욱 궁금해졌다. 이런 전례가 별로 없으니까 말이다. 최근작 ‘완득이’ 역시 개봉 이래 관객 500만 명을 넘겼다.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던 영화도 그를 캐스팅했다는 소리가 나오면 대번에 돈이 몰린단다. 이제는 명실공히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배우 중 한 명이란 얘기다. 그런데 정작 본인에게 ‘왜 뜬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모르겠다”며 웃는다. 그렇다면 이 인터뷰의 목적은 하나다. 대한민국은 왜 이 ‘아저씨’에게 열광하는 걸까. 대체 뭐가 있기에.

글=김선하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근사하게 차려입고 나와놓곤 “메이크업, 머리 드라이하는 게 너무 싫다”고 투정이다. “제일 싫어하는 소리가 헤어드라이어 돌아가는 소리고, 제일 싫은 바람이 뜨거운 바람”이라고 했다. ‘몸짱’ 배우들이 넘쳐나는 판에 운동도 열심히 안 한다. “유일하게 하는 운동이 수영이었는데 그것도 많아야 일주일에 한 번, 어쩔 땐 한 달에 한 번이 고작”이었단다. 영화 ‘황해’ 때 몸무게를 10㎏ 이상 불렸는데, 최근에 찍은 ‘도둑들’에선 체중을 빼야 해서 할 수 없이 러닝머신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뛰는 것도 아니고 빠른 걸음으로 하루 한 시간 정도 걷는다고 한다. 그런데 워낙 운동을 안 하다 시작하니 ‘몸이 놀라서’ 살이 쭉쭉 빠지더란다. 영락없는 대한민국 표준 40대 남자다. 일단 ‘우월한 신체’는 성공 비결에서 제외해도 된다는 얘기다. 그럼 혹시 어려서부터 색다른 경험을 많이 했던 걸까.

●학창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

 “평범했다. 평범하게 공부하고… 비범하게 놀았다.”

●맨 뒷자리에 앉아 말썽부리는 학생이었다는 얘기인가.

 “그런 식으로 선생님들과 ‘트러블’을 만들었으면 ‘비범하게’ 논 게 아니지. 맨 뒷자리에 앉으면 오히려 눈에 잘 띈다. 나는 뒤에서 세 번째쯤에 주로 앉았다. ‘완득이’에 나오는 것처럼 선생님들에게 맞은 기억도 별로 없다. 술 마시거나, 나이트클럽 다니거나 하는 짓도 안 했다. 학교 끝나면 친구들과 (고향인) 부산 시내를 쏘다녔다.”

●대학 시절은 어땠나. 동의대 독어독문과 출신인데.

 “독일어 하나도 기억 안 난다. 기억나는 건… ‘아우프 비더젠(Auf Wiedersehen·또 만나요)’ 정도?”

●1988년 부산에서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데뷔했다. 주연이었나?

 “선배들이 줄줄이 있는데 주연은 무슨…. 신문팔이 소년 역할이었다. 그나마 헤맸지.”

●그럼 선배들 연기를 보면서 나도 저런 배우가 되겠단 의지를 불태웠나.

 “글쎄… ‘지금부터 연극을 해야지’ 이런 결심은 없었다. 그 당시에 빠져 있는 ‘취미’ 정도였다.”

 갈수록 오리무중이다. 이 남자, 대체 어떻게 성공한 걸까.

●연극에 빠져든 계기는 뭔가.

 “대학 4학년 때 전국대학생연극경연대회에 나갔다. 내가 연출을 맡았는데 1등을 했다. 부상이 해외 연수였다. 안기부에서 1박2일 반공교육을 받고 유럽을 한 달 정도 돌았다. 그곳에서 연극 전공하는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많은 걸 느꼈다. 그때가 인생의 전환점이었던 것 같다.”

●이후 서울 대학로로 올라왔는데.

 “서울… 화려하면서도 춥더라. 90년대 초였는데 당시 대학로 연극이 부흥기였다. 어마어마했다. 전국에서 연극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수백, 수천 명 올라왔다. 연극하는 친구들을 거리에서 하루 30~40명씩 마주칠 정도였다. 옆구리에 포스터 끼고 붙이러 다니고, 저녁이면 어디 공짜로 공연 볼 곳 없나 기웃거리고…. 그 시절엔 20대 중후반의 ‘육체적 고급 인력’이 즐비했다. 뭘 시켜도 감당할 수 있는 친구들 말이다.”

●생활은 어땠나.

 “서울 돈암동 반지하방에서 잠을 자고, 지하철을 타고, 지하에 있는 공연장에서 연극했다. 그래서 술집만큼은 꼭 지상에 있는 곳으로 가곤 했다(웃음).”

●90년대 중반에 한동안 연극계를 떠났다.

 “연극이 싫어져서가 아니었다. 연극을 하면서 사는 내 생활에 질렸다. 공연하고, 끝나면 뒤풀이하고, 집에 와서 자다가 오후 1시쯤 일어나서 다시 공연하러 나가고…. 똑같이 반복되는 패턴이 사람을 질리게 하더라. 그래서 부산에 내려가 아는 분이랑 함께 몇 년간 재즈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연극으로 돌아왔다.

 “그리워서였겠지. 체코 대통령을 지낸 바츨라프 하벨의 ‘아싸나체(재개발)’란 작품으로 돌아왔다.”

●같은 시기에 연극 했던 송강호·유오성 등이 먼저 영화·TV 등으로 옮겨가 스타가 됐다.

 “중요한 건 먼저 출발하느냐, 늦게 출발하느냐가 아니다.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온전히 내 능력을 발휘할 준비가 돼 있느냐가 중요하지. 누구에게나 언젠간 기회가 온다. 그때 준비가 안 돼 있으면 기회는 있으나마나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럼 기회가 왔다는 걸 언제 처음 느꼈나.

 “‘아, 기회가 왔구나’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지나고 난 뒤 ‘그때가 기회였구나’라고 알게 되는 거지.”

 대중에게 김윤석이란 이름을 각인시킨 영화는 2006년작 ‘타짜’다. 허영만의 동명 만화를 영화화한 이 작품에서 그는 잔인한 노름꾼 ‘아귀’ 역할을 맡았다. 조승우·김혜수·백윤식·유해진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한 이 영화에 김윤석은 딱 다섯 장면 나온다. 그 다섯 장면으로 580만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는 ‘타짜’와 같은 시기에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 TV 드라마 ‘있을 때 잘해’, 연극 ‘가을날의 꿈’에 출연해 모두 호평을 받았다. ‘준비’가 안 돼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 남자의 늦깎이 성공 비결이 슬슬 감이 잡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연극을 오래 했는데도, 영화에서는 다시 단역부터 출발했다.

 “2001년 ‘베사메무쵸’였는데, 단역이어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영화 시스템도 잘 모르고 서툰데 단역일 때 적응하는 게 낫지 않나. 그래야 나중에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을 때 헤매지 않을 테니까.”

●비중 작은 역할의 배우가 튀어보려는 경우도 있지 않나.

 “그렇게 하는 배우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게 필름에 결코 좋게 담기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나중에 다시 보면 아마 본인도 땅을 치고 후회할 거다. 욕심이 과해서 지나치게 취해버리는 거지.”

●누군가와 연기 대결을 벌여본 적은 없나.

 “(오랜 침묵 끝에) 할리우드 배우 모건 프리먼이 이런 말을 했다. 연기는 ‘듣기’가 전부라고. 그 노배우가 자신만만하게 한 말이다. 상대 배역의 말을 듣고 받아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 연기의 전부라고, 듣고 나면 네가 해야 할 말은 저절로 나올 거라고…. 연기 대결?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 말이다. 연기를 ‘잘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건 관객이 할 얘기지, 배우의 목표가 돼선 안 된다. 배우에게는 연기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 꼭 연기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거다. ‘아, 잘했어야 했는데 잘못했다’고 후회해봐야 뭐가 남겠나. ‘여기선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다음엔 꼭 이걸 해봐야겠다’라고 생각해야 뭐라도 쌓이지.”

 ‘명배우 사관학교’라 불리는 극단 학전의 김민기 대표는 올 초 중앙일보와의 대화에서 “배우는 제멋에 취하기 좋은 사람”이라며 “나는 그걸 잡아주기만 했다”고 말했다. 김윤석은 1997년 ‘지하철 1호선’ 부산 공연 연출부로 학전과 첫 연을 맺었다. 그는 ‘제멋에 취해 본’ 경험이 없을까.

 “배우만 그런가. 모두 어느 정도는 그렇지 않나? 좀 거창하게 말하면 나는 인생이란 아슬아슬한 줄타기라고 생각한다. 너무 취해도 안 되고, 아예 안 취해도 안 되고…. ‘귀엽게’ 취할 정도까지만 갔다가 돌아와야지. 안 그러면 술 진탕 마셨을 때처럼 다음 날 후회할 테니까.”

●‘거북이 달린다’ ‘즐거운 인생’에서의 소시민적 캐릭터와 ‘추격자’ ‘황해’에서처럼 강렬한 캐릭터 중 뭐가 더 연기하기 쉬웠나.

 “앞의 두 작품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생활’의 측면이 좀 더 강조된 배역이다. 뒤의 두 작품은 ‘생존’이 강조된 것들이고. 생활과 생존 중에서 뭐가 더 쉽고, 더 어렵다고 말할 순 없지 않을까? 다만 ‘생존’이 강조된 쪽은 액션 연기가 많아서 물리적인 힘은 확실히 더 든다. ‘추격자’ 때는 뛰고, 또 뛰고… 미끄러운 바닥에서 뛰다 무릎을 다쳐 퉁퉁 부은 채 뛰기도 했다.”

●순탄하고 무난한 캐릭터보다 ‘비정상적’ 캐릭터를 통해 더 주목을 받아온 것 같다.

 “현실적으로 지금 한국 영화에서 캐릭터가 형성되려면 최소 두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어야 한다. ‘우아한 세계’에서 송강호가 맡은 역할은 기러기 아빠가 되는 조폭이다. 그냥 기러기 아빠면 영화 만들기 어렵다. 왜? 재미가 없으니까. 그리고 한번 생각해보자.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드라마로 만든다고 ‘정상적’일까? 예를 들어 바람 피우는 남자 역할은 정상적인 걸까, 아닐까. 분명 정상은 아닌 것 같은데 현실에는 많지 않나. 인간이 드라마를 ‘발명’한 것은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 속에서라도 해보자는 생각 아니었을까?”

 김윤석과 송강호는 연극 ‘지젤’에서 투톱 연기를 한 것을 비롯해 92년부터 94년까지 다섯 작품을 함께했다. 본인이 먼저 얘기를 꺼냈으니 더 묻고 싶어졌다.

●송강호는 어떤 배우인가.

 “내가 한·일 국가대표 야구 경기에서 9회 말 투아웃에 단 한 사람의 타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망설임 없이 송강호를 내보낼 거다. 왜? 믿음직하니까….”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칭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처럼 ‘극찬’을 한다는 건 스스로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배우로서 김윤석의 무기는 무엇인가.

 “영화가 개봉할 때까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살면서 가진 가장 큰 무기가 있다면 이것 아닐까 한다. 어떤 상황이든 개봉하기 전까진 완성도를 높이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

●영화 크레디트에서 가장 먼저 이름이 올라가는 배우가 됐다. 후배들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고 싶나.

 “성급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성급해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 그러면 시간 낭비밖에 안 된다. 차근차근 밟아가면 흔적이라도 남지 않겠나. ‘당신을 멘토로 생각하는 불특정 다수의 후배에게 한마디 해보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나를 멘토로 삼지 말라고 했다. 차라리 내가 한 연기를 멘토로 삼으라고 했다. 내 연기가 훌륭해서 그런 게 아니다. ‘저 사람도 저런 실수를 하는구나’ ‘저렇게 하니까 안 되는구나’를 찾아내보라. 그럼 제법 괜찮은 멘토가 될 거다.”

●인기가 떨어질까 걱정되진 않나.

 “인기는 가랑잎처럼 떨어지는 것 같다. 서서히 곡선을 그리며 내려가는데 정작 당사자는 추락하고 있다는 걸 모른다. 바닥이 코앞까지 다가와야 느낌이 오는 거지. 그제야 ‘어? (인기) 없어지면 나 큰일나는데…’라고 생각하면 그게 정말 큰일 아닌가. 그래서 인기란 것을 내가 끝까지 붙들고 가야 하는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늘 노력하고 있다.”

●영화 이외의 방법으로 사회 참여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발언하고 싶은 유혹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영화로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자기 고유의 영역을 지키면서 무엇인가를 해내는 것이 알맹이가 있는 모습 아닐까 한다. 화가라면 그림으로, 배우라면 영화로….”

●창작물에 작가의 주장을 노골적으로 담는 것은 어떻게 보나.

 “예술작품이 너무 노골적일 때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본다. 연극을 보고 나서 ‘세상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면 그 연극은 역할을 다 한것이란 말이 있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제시하는 순간 반드시 그 반대의 이야기도 두드러지게 강조된다는 얘기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연극배우 출신 아내, 두 아이들과의 평범한 일상
“고독은 무슨 고독 … 집에 가면 애들 학교 얘기 바쁘다 ”

김윤석은 부산 출신이지만 사투리를 많이 안 쓴다. 비결을 물었더니 “서울 여자와 결혼하면 된다”며 웃었다. 그의 아내 방주란도 연극·뮤지컬 배우 출신이다. 그가 연극하던 시절, 뮤지컬 ‘의형제’에 모자지간으로 함께 출연한 적도 있다. 그는 “아내는 가장 오래된 술친구이자 작품을 상의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평범한 사람”이라는 그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아내의 어떤 점이 좋았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제일 좋았다. 그런데 이런 얘기 하면 쑥스럽다….”

●양가 반대는 없었는지 궁금하다.

 “나, 비교적 순탄하게 살아온 편이다.”

●그런데 영화에선 족발로 사람 내려치는 연기(‘황해’)가 너무 자연스러웠다.

 “실생활에서 나는 직업도 있고, 집도 있고…. 아무튼 정상적인 사람이다.(웃음)”

●영화에서 도박하는 연기를 몇 번 했는데.

 “도박은커녕 스타크래프트도 못한다. 앉아서 하는 거 중에 잘하는 게 별로 없다.”

●언젠가 악역을 좋아하는 이유가 고독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라고 했던데. 고독한가?

 “애들이 10살, 7살인데 고독은 무슨…. 집에 가면 다른 집들처럼 애들 영어 공부, 대안학교 같은 얘기 하느라 바쁘다. 촬영 마치고 새벽 4시에 들어가 아침 8시에 애 학교 데려다준 적도 있다. 고독할 틈이 어디 있겠나.(웃음)”

●영화 안 찍을 땐 뭐 하나.

 “가족들이 내가 영화 한 편 끝내면 함께 여행 가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영화 끝날 때쯤 되면 집사람이랑 큰애랑 벌써 여행지 검색에 들어간다.”

●국내여행 가면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불편할 수도 있겠다.

 “모자랑 안경 쓰고 나가면 생각만큼 알아보지 못한다. 단, 입을 열기 전까지만. 내 목소리가 특징이 강한가 보더라.”

●몇 점짜리 남편, 몇 점짜리 아빠인가.

 “한 70점쯤? 술 좀 마시는 거 빼곤 그런대로….(웃음) 물론 점수 더 높이려면 담배를 끊어야 된다. 애들이 난리다. 담배 끊으라고.”

WhatMattersMost?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과 건강이다. 그게 내가 살아가는 가장 큰 원동력이니까. 꼭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행복하고, 특히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내 삶의 모토는 ‘재미있게’다. 나는 재미있게 살려고 굉장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런 내 모습, 재미있지 않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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