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하늘에 아름다운 추억 새겨넣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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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 이카루스 이야기 생각나니? 네가 다섯 살 즈음에 어른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꺼냈던 이야기지. 그 이야기를 네가 참 재미있어 했어. 잘 생각해 보면 기억 날 거야.

다이달로스라는 건축의 신이 그의 아들 이카루스에게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만들어 준 뒤, 하늘 높이 날아 오르면 뜨거운 태양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날개가 녹아내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날지 못하고 아래로 떨어져 죽을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지. 이카루스는 아버지의 말을 잘 알아 듣기는 했지만, 일단 하늘을 날아보니, 그 기분을 절제하지 못하고 계속 위로만 오르다가 결국은 바다에 떨어져 죽는다는 이야기 말야.

신화는 어떻게 보면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그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오래도록 전해져 내려오게 되지. 또 어린 아이들이나 좋아할 이야기처럼 보일 지 모르지만, 어른이 되어도 신화에서 배운 지혜를 잊지 못하고 다시 생각하게 되는 거야.

아이야, 신화 중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어. 유독 그리스 로마 신화가 많이 알려진 것은 그것이 현대 문명에서 가장 지배적인 영향력을 가진 서양 문명의 뿌리가 되는 신화이기 때문이지.

그러나 신화는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다 자기 민족 만의 독특한 신화가 있는 거야. 우리에게도 단군 신화가 있잖니. 각각의 신화들은 나름대로 그 민족의 삶과 환경에 맞는 특징과 재미를 갖고 전해져 내려 오지. 신화를 많이 읽어두는 것은 보다 넓은 문명의 뿌리를 알게 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신화를 많이 읽어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구나.

한 마디 덧붙이자면, 두 개의 해가 넘실거리는 이야기, 재를 뿌려 별을 만드는 이야기처럼 허무맹랑한 신화들을 읽으면서 너희들은 너희들만의 상상력의 세계를 펼쳐 나갈 수 있는 거야. 그런 상상력은 너희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계를 보다 능동적으로 헤쳐나갈 힘이 될 거거든.

신화를 엮은 책이 하나 나왔기에 하는 이야기야. 너희들이 보는 교과서를 만들어 펴내는 대한교과서주식회사가 어린이 책을 본격적으로 출판하겠다는 생각으로 '아이세움'이라는 이름을 따로 만들어 펴낸 책이야. 철학을 공부하신 이경덕 선생님이 글을 다듬고, 이상권, 이가경, 이다 선생님이 그림을 그려서 펴낸 〈신화따라 우주 여행〉(아이세움 펴냄)이 그거야.

이 책은 교과서를 만들던 분들이 만들어서인지, 역시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게 만들었더라. 이를테면 '여자의 다리에서 태어난 해'라는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 섬의 신화를 이야기한 뒤에는 곧바로 '태양은 어떻게 빛과 열을 내는가'하는 과학 상식을 해설하는 식이지. 그건 너희들이 보는 전과나 참고서와 정 반대되는 방식이지. 한참 지겨운 문제풀이를 해나가다가 지겨워질 즈음에 재미있는 이야기 한 편씩 넣는 것 말야. 이 책은 거꾸로 재미있는 신화 이야기를 하고는 이어서 하나의 공부 거리를 읽게 한 거지.

아이야, 태양이 두 개가 있는 시절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은 태양이 하나인데도 여름이 이처럼 무더운데, 그 태양이 하나 더 있으면 참기 힘들 정도로 무덥겠지. 그래서 사람들은 태양 하나를 없애기 위해 온갖 수를 다 썼더래. 참 오랜 동안의 악전고투 끝에 사람들은 두 개의 태양 중 하나를 화살로 맞혀서 산산조각을 냈단다. 마침내 하나의 태양이 사라지게 됐어. 그런데 그날 태양이 서쪽 하늘로 사라지자, 하늘에는 뭔가 반짝이는 것들이 나타났어. 산산조각 난 태양의 파편이었던 거야. 그게 바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별인 셈이지.

이 이야기는 타이완 지방에 전해오는 신화야. 해와 달을 포함한 신비로운 우주를 배경으로 한 신화는 참 많단다. 많은 신화에 해와 달과 별이 나오잖아. 이 책은 그런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놓았기 때문에 재미있고도 유익하게 읽을 수 있어.

이번에는 달에 얽힌 신화를 보자꾸나. 아이야, 우리는 달에 옥토끼가 살고 있다고 이야기했었지. 그러나 우리나라와 붙어 있는 일본에서는 옥토끼도 개구리도 아닌 사람이 살고 있다는 신화가 전해오고 있어. 대나무 속에서 찾아낸 10센티미터짜리 작은 여자 아이 카구야가 바로 달에서 지구로 잠깐 들렀던 사람이야. 처음에는 자신이 달나라에서 온 여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지내다가 나중에 달나라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서야 자신의 신분을 알리게 돼.

가까운 이웃 일본 사람들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참 다르지? 신화를 보는 재미는 바로 이런 데에 있어. 하나의 상황을 놓고 그 민족이 처한 환경이나 문화에 따라 제가끔 다른 신화를 만들어내는 거 말야.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하든, 옥토끼가 살고 있다고 하든 그건 모두가 사람들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이잖아. 그런데 그 상상력의 결과가 가지는 차이를 들여다 보는 재미가 있다는 거지.

아이야, 이 책에는 일본, 인도, 중국을 비롯해 아프리카, 독일, 뉴질랜드 등에서 전해오는 우주와 관계된 신화를 폭넓게 담고 있어. 그러니 그 나라 민족들은 어떤 상상력을 갖고 있었는지를 비교해 보는 것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되는구나.

들로 산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여름 방학,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여름 밤에는 달과 별의 아름다움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지. 그때 우리가 보는 별과 달에는 어떤 신화가 얽혀서 전해 내려오고 있는 지를 생각하는 것은 참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이 책을 읽든 안 읽든 그건 물론 네 자윤데, 최소한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바라다 보면서 다른 아무 것도 떠올리지 못하는 밋밋하고 재미없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말만큼은 하고 싶구나.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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