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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내셔널트러스트 조명 절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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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트러스트에 관해 일본인이 쓴 책이 번역돼 나왔습니다. 내셔널 트러스트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는 중앙일보 산업부 기자 이석봉 형이 생각나 이메일을 보냈고, 이석봉 형은 곧바로 한국 내셔널트러스트와 그 첫 번째 성공작이라 할 수 있는 대전 오정골 지키기 운동에 대한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여기에 그대로 싣습니다.

이석봉 형께

이 형. '내셔널 트러스트'라는 눈에 확 뜨이는 단어가 부제에 들어간 책이 나왔습니다. 일본의 마이니치 학생신문의 요코가와 세쯔코 기자가 쓴 〈토토로의 숲을 찾다-내셔널트러스트의 여행〉(전홍규 옮김, 이후 펴냄)입니다.

이 형이 제게 내셔널 트러스트(자연신탁 국민운동)를 처음 알려준 것은 지난 해 봄이었을 겁니다. 대전 오정동 선교사촌의 보존 운동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을 겁니다. 1955년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부가 대전대(지금의 한남대)를 설립하면서 인근 6천평에 형성한 선교사들의 거주마을이었다고 했지요. 50년대 한옥 4동, 양옥 3동이 50년생 수목과 솔부엉이 등 52종의 희귀 조류들과 어울어져 도심의 문화 숲으로 평가돼 왔다지요.

한남대 뒤편에 자리한 그곳 선교사촌을 이 형과 함께 가 볼 기회가 있었지요. 도심 한 복판에 자리잡은 참으로 고즈넉한 곳이더군요. 그 안에 한옥과 양옥을 조합한 선교사들의 숙소에서는 참으로 이국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운치를 느낄 수 있었어요.

그 뒤로 우리나라의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더군요. 대전의 오정동 선교사촌은 대전의 역사경관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역사모, 사무처장 박용남)의 노력에 의해 아파트가 들어서려던 계획이 취소되고 한남대에 넘겨졌으며, 문화재 보호법 상의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다는 소식도 들려왔어요.

또 올해 초에는 국내에서 내셔널트러스트 본부(공동대표 김상원, 고은)가 창립대회를 열고, 서울 강동구 둔촌동 희귀습지, 천리포수목원 등 8곳을 시민의 모금으로 보존하자는 데에 뜻을 같이 하기도 했습니다.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은 1895년 영국에서 시작됐다지요. 지금 제 손에 들려 있는 책은 작고 귀여운 장정의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 책입니다. 이 운동을 처음 시작한 이들의 면면이 상세히 소개되고 있어요. 핵심 인물 가운데 하나인 옥타비오 힐은 당시 서른 네 살의 젊은 나이였대요. 우리 나이보다 좀 적지요? 대개는 그 나이 때가 새로운 일을 도모하기 좋은 나이인가 봐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차근차근 자연을 보존하기 위한 운동으로 전개되다가 60년대에 세상을 향해 한방 내지르는 큰 일을 벌리게 됩니다. 그게 바로 이 형이 기사에도 썼던 넵튠 계획이에요. 영국의 국민과 당시 여왕의 남편 에든버러 공, 영국 정부 등이 본격적으로 매달려 영국의 아름다운 해안선을 지켜내는 계획 말입니다.

그밖에도 이 책은 전 세계의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 지를 살펴봅니다. 원래 이 글은 일본 마이니치 학생신문에 '내셔널트러스트의 여행'이라는 시리즈로 연재됐던 기사라고 합니다. 신문 기사여서인지 편안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더군요.

필자는 영국의 웨일스, 잉글랜드, 북아일랜드를 필두로 스코틀랜드, 오스트레일리아, 아일랜드 공화국과 그밖의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이 있는 나라들의 운동을 소개하고 있어요. 이어서, 일본의 내셔널트러스트를 소개하고 있는데, 참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의 제목인 〈토토로의 숲〉입니다. 토토로는 일본 신화에 나오는 숲의 정령으로, 일본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이웃의 토토로〉의 캐릭터이지요.

토토로의 숲은 그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되는 숲이랍니다. 저도 아주 재미있게 본 애니메이션이에요. 이 숲과 토토로는 일본인들에게 환경운동 즉 지구의 꿈을 길러나가는 주요 동력으로 보고 있답니다. 도쿄 근처의 사야마 구릉 일대 숲인 이곳을 보존하려는 이 운동은 일본 내셔널 트러스트의 모범이라지요. '토토로의 숲'을 감독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도 이 숲 지키기 운동의 적극적 주동자라고 하니, 일본에서의 파급력을 알 만 합니다.

이 형, 지금 우리에게 환경과 그 보존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 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혹시 환경운동이 먹고 사는 일이 완전히 해결된 부유층의 호사취미는 아닌지 돌이켜 보게 되는 거지요. 물론 먹고 사는 일조차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환경운동을 운운할 수야 없겠지요. 그러나 제대로 된 환경운동이라는 것이 주로 경제적으로 선진국인 일부 나라 위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군요.

우리에게도 자연을 보존하고자 하는 운동이 없지는 않아요. 그러나 그 운동이 때로는 일부 명망가들의 지명도를 높이는 차원의 허명 싸움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는 이야기입니다. 새로 나온 책 <토토로의 숲을 찾다>는 그래서 우리가 맡아서 보존해야 할 우리의 자연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책입니다.

7월 23일 고규홍 (gohkh@joins.com) 보냄.

고규홍 형 보세요.

열대야 지내실 만 합니까. 이전에 서울에 살 때 8월 초 열흘간의 땡볕에, 밤에도 30도가 넘는 열대야는 정말 지내기 힘들었습니다. 집에 냉방기가 없어, 덥다고 칭얼대는 아들놈을 데리고 에어컨이 달린 차를 타고 심야의 드라이브를 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곳 대전은 콘크리트 숲으로 된 시내 일부를 빼고는 열대야를 찾기 어렵습니다. 녹지가 확보돼 있으니 더위가 머무를 곳이 없는 셈이지요. 지방 생활에서 얻는 보너스의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대책 없이 달려든 대전 생활은 많은 신선감을 주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고 형이 메일에서 이야기한 오정골 선교사촌입니다. 제가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역사모)의 사무처장인 박용남 선생의 손에 이끌려 처음 그곳에 간 것은 아마 98년 6월께라고 생각됩니다. 1950년대의 풍광을 그대로 지닌 곳이 도심 한가운데 있다라는 말은 호기심을 발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처음 보고 느낀 것은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얼핏 보기에도 잘 발달돼 보였던 자연생태계가 무너져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름드리 나무는 잘리고, 한식과 양식이 잘 조화된 집은 헐리고, 잔디밭은 채소밭으로 변하고...

예전에 이곳에 살았던 적이 있다는 박선생 말씀은 선교사들이 소유했던 땅을 한국인들에게 넘기면서 이같은 파괴가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자연 파괴의 시동자는 교회였습니다. 하느님 모시러 몰고 오는 자동차를 주차하기 위해 녹지를 훼손하는 데에서부터 이곳의 파괴는 시작됐습니다. 게다가 그 땅을 건설업자에게 팔아 넘기고 좀더 넓은 곳으로 이사가려고 했어요. 도심 속 숲이라는 옛 모습은 기억 속에만 남아 있었던 겁니다.

제 가슴을 쿵쾅거리게 할 정도의 경관은 한남대 뒤편에 있는 인돈 학술원이었지요. 세상에! 도심 한가운데 이런 낙원이 있다니. 대전 사람들은 복도 많구나.

풍부한 식생을 지녔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우거진 숲과 잘 가꿔진 뜰, 숲 가운데 드문드문 자리잡은 아담한 집, 동네 전체를 휘도는 흙길 등은 여태까지 눈에 선합니다. 인돈 학술원은 한남대를 세운 린톤씨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술원입니다. 미국 남장로회 소속의 린톤 씨는 선교의 한 방법으로 교육을 생각했고 지금의 한남대를 짓게 된 거랍니다. 대학을 지으며 자신들이 살집을 한식과 양식을 절충한 형식으로 몸소 설계했습니다. 목
원대 건축과의 김정동 교수께서는 "생활이 양식화되며 한옥을 양옥과 접합시켜야 하는데 그 실험을 50년대의 선교사들이 먼저 했다"고 칭찬합니다.

오정골 주변이 파헤쳐진 뒤 인돈학술원 주변마저 개발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곳에 10층짜리 원룸을 짓는다는 거였죠. 박용남 선생과 김정동 교수 등과 함께 '오정골 보존 공작'을 벌이기로 의기투합했어요. 사무실도, 간사도 없이, 지역 언론사에 보존의 필요성을 알리고,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10만원씩 내라고 강제하면서 그냥 시작했습니다. '오정골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오시모)은 그렇게 시작된 겁니다.

고 형도 이야기했듯이 이제 오정골은 한남대가 매입해 보존하게 됐고, 문화재 자료로도 지정됐어요. 시민의 힘이 모여 이룬 쾌거이고 한국 내셔널 트러스트의 첫 번째 성공작이 될 겁니다.

오시모는 이후 역사모로 발전적 해체를 맞이하고 더 넓은 범위로 일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1920년대의 풍광이 마치 중성자탄을 맞은 것처럼 고스란히 남아있는 강경읍, 충남 보령시 대천 해수욕장에 있는 선교사 휴양지, 충남 태안의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인 천리포 수목원, 한반도의 사막이라 할 수 있는 충남 태안의 신두리 해안사구 등을 보존대상으로 여기고 본격적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이 네 곳은 모두 감동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일으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소중한 자원이 있다는 감동과 파괴돼가는 현실에서 시작되는 가슴앓이입니다. 강경에서는 1920년대의 한일은행(현 한빛은행)건물이 현재는 젓갈 창고로 쓰이고 있습니다. 선교사 휴양지는 무성한 송림 속에 자리잡고 있는데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게 현실입니다. 천리포 수목원은 미국에서 귀화한 민병갈 선생이 30년간을 사재를 털어 가꾼 것인데 고령인 민선생이 돌아가실 경우 앞날이 불안합니다. 해안사구는 보존은 커녕 규사 채취 때문에 날이 다르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후손들로부터 땅을 빌려 쓰고 있는 겁니다. 자연환경을 잘 보존하고 물려줄 의무가 있습니다. 일본인이 쓴 내셔널 트러스트에 관한 책이 나왔다지만, 왜 우리 곁의 일에 관심을 갖지 못하고 외국 것에만 매달리는 지 의문입니다. 좀더 성의를 갖고 우리나라의 내셔널 트러스트를 기록하고 널리 알릴 수 있는 책들이 잇달아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누구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해야 합니다.

고 형도 모니터 앞에서 그 필요성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당장 발품을 파십시오. 우리의 소중한 재산 목록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해답은 언제나 현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가서 역사로부터, 자연으로부터 흠뻑 자극 받아 보세요. 세상이 바뀌어 보이고, 일상에 꼭꼭 숨어있는 신선함과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열대야에 열받지 마시고,대전에 한번 오십시오. 지방에는 재미가 있습니다. 건강하시고….

7월 26일 이석봉 (factfind@joongang.co.kr) 배상

▶내셔널 트러스트 관련 사이트
* 한국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 본부
http://www.nationaltrust.or.kr/

*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 본부
http://www.nationaltrust.or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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