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탈당 카드로 ‘박근혜 결단’ 압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한나라당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전면으로 끌어내려는 압박이 본격화하고 있다. 유승민·원희룡·남경필 의원의 최고위원직 사퇴 이후 이어지고 있는 홍준표 대표 체제의 해체 움직임도 결국은 박 전 대표의 복귀를 요구하는 것이다.

 김성식·김세연 등 쇄신파의 축을 이루고 있는 ‘민본 21’ 소속 의원 12명은 8일 성명서를 통해 “당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비대위가 신당 수준의 재창당을 총괄해 추진해야 한다”며 “박근혜 전 대표가 모든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는 자세로 비대위의 구성과 운영에서 중심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비상한 결단에 나설 것”이라고 압박했다. 이들 중 김성식·권영진 의원 등은 이미 자신들의 모임에서 ‘탈당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비상한 결단’이란 탈당 또는 분당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박근혜 전면 등장’ 요구가 거세지면서 홍준표 대표 체제의 해체도 가속화되고 있다. 최고위원 3명이 사퇴한 데 이어 황우여 원내대표는 9일 예정된 최고위에 불참할 것으로 보인다.

황 원내대표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주변으로부터 최고위 불참 권유가 엄청나다”며 “최고위 참석 여부를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황 원내대표와 가까운 한 인사는 “황 대표가 이미 최고위 불참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안다”며 “사실상 최고위는 와해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당무에 손을 뗀 나경원 최고위원까지 합쳐 전체 9명의 최고위원 중 과반이 넘는 5명이나 최고위에서 빠지게 되면 당헌·당규상 최고위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이에 앞서 차명진·전여옥 등 수도권 이명박계 의원들이 주축인 ‘재창당모임’도 이날 모임을 갖고 “한나라당 내부의 기득권을 모두 버리고 애국인사 결집을 통한 재창당을 해야 한다”며 “재창당 후 국민 뜻에 따라 개혁 공천을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이들은 전날 성명에서 그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집단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었다. 이들 역시 탈당이나 분당 카드를 언제든 선택할 수 있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들은 김문수 경기지사, 정몽준 의원 등과 가까운 편이어서 ‘민본 21’과는 궤를 달리 한다. 그럼에도 박 전 대표가 재창당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데엔 이의가 없다. 모임 소속 한 의원은 “당을 새로 세우고 내년 총선을 치르는 데 박 전 대표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불가피한 현실”이라며 “우리가 굳이 홍준표 대표 퇴진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것은 자칫 권력게임으로 비춰질까 봐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센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홍준표 대표는 이날 자신의 쇄신안을 제시하며 필사적인 반격을 시도했다. 홍 대표는 ▶총선기획단 조기 구성 ▶재창당준비위 구성 및 2월 중순 재창당 ▶당 정강·정책·노선·방향 근본적 재검토 ▶범여권 총결집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내에선 오히려 홍 대표가 자기가 공천권을 행사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며 강한 비판이 터져 나왔다.

 쇄신안에 대한 반발에 직면하자 홍 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 전 대표가 나선다면 (당권을) 물려주겠다”며 한 발 물러서는 자세를 취했다. 그는 “대안이 마련되면 흔쾌히 내 발로 대표실 문을 걸어나가겠다. 박 전 대표는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이처럼 말했다. 당내에선 이날 홍 대표의 쇄신안 발표가 역설적으로 박 전 대표의 등판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킨 셈이 됐다는 말까지 나왔다.

 박 전 대표가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박근혜계에선 박 전 대표가 현 상황을 대단히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멀지 않은 시기에 입장 발표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정하·정효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