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부풀리기, 이제 안 통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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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연구소가 발행하는 학술지에 실을 논문을 대충 심사해 자기 대학 교수들 연구 실적 올려주기, 대학원생의 습작성 논문을 일부러 제출한 뒤 탈락시켜 게재율 기준 맞추기….

 국내 대학 교수들이 연구업적 평가 점수를 올리려 품앗이 논문을 쓰거나 끼리끼리 밀어주던 편법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논문 수보다 얼마나 수준 높은 논문을 국내외 명망 있는 학술지에 기고했느냐가 교수 연구의 질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전망이다. 심사가 깐깐한 세계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실어야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는 의미다. 국내 학술지가 양만 늘었을 뿐 연구의 질은 높아지지 않는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정부가 학술지 관리제도를 통째로 바꾼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여러 학술지를 등재지(登載誌)나 등재후보지로 한국연구재단이 지정해온 제도를 2014년 말까지 전면 폐지하고 학계가 자율 평가하도록 하겠다고 7일 밝혔다.

교수들은 등재지에 논문을 실어야 연구 성과로 인정받아 왔다. 교과부의 예산 지원에 쓰이는 대학별 교수연구 실적도 등재지 기준이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등재지 신규 선정을 하지 않는다. 정부도 예산을 모든 학술지에 나눠주지 않고 세계적 수준의 우수 학술지를 육성하는 데 지원을 집중한다.

 학술지 등재제도가 도입된 1998년 56종이던 등재(후보)지는 올해 2060종으로 늘었다. 신규학술단체도 우후죽순 생겨나 90년 1890개에서 지난해 7446개로 증가했다. 하지만 소속 인원이 파악된 4848개 학술단체 중 50명 이하 소규모 단체가 58%에 달했다. 김창경 교과부 2차관은 “학술지 수준과 무관하게 등재지에만 논문을 실으면 업적평가에서 동일하게 평가돼 교수들이 유명 학술지에 실을 이유가 없었다”며 “학술지의 하향평준화가 초래됐다”고 지적했다. 교수 사회에서는 일탈행위도 나타났다.

 교과부는 학계가 자율적으로 논문의 질을 평가하는 시스템이 구축되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이번 개편안을 마련한 교과부 학술진흥정책자문위 왕상한(서강대 교수) 위원장은 “지금까지는 오랜 기간 연구해 세계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교수보다 국내 등재지에 손쉽게 올리는 교수가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며 “대학의 연구 질 경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탁 기자

 
◆등재(후보)지=한국연구재단이 등재 또는 등재후보로 선정한 학술지. 최근 3년간 연 1회 이상 연속으로 학술지를 발행한 단체가 신청할 수 있다. 재단은 연간 발행횟수, 논문 게재율 등을 평가해 등재지로 인정한다. 이런 학술지에 논문을 실어야 연구성과로 인정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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