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익명의 기부가 주는 감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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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숨어서 하는 익명의 선행만큼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이야기는 없다. 서울 명동에 설치된 구세군 냄비에 1억1000만원짜리 수표를 넣고 간 60대 신사가 화제가 되는 건 그래서다. 그는 “거동이 불편하고 소외된 어르신들에게 써달라”는 짧은 편지도 함께 남겼다. 한국구세군은 기부자의 뜻에 따라 이 돈을 노인 복지에 쓰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구세군 냄비에 4500만원짜리 수표를 넣은 익명의 기부자를 비롯해 그동안 3000만원 이상 기부한 사람이 3명이나 되지만 1억원이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금액의 크기 때문에 그 신사가 액수를 잘못 본 게 아니냐는 일각의 의구심도 있으나 편지의 내용으로 봐서는 실수가 아님은 분명하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해당 기사 밑에는 “감사하다” “감동적이다” “나 자신을 반성해본다”는 내용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

 27년간 매달 급식비를 못 내는 초등학생 3~4명의 급식비를 남몰래 내준 한 병원의 영양실장 전영옥씨의 사연도 훈훈하다. 1985년 건강이 나빴던 남편이 기적적으로 완쾌되자 세상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선행이다. 이것이 지난달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으로 더 이상 할 수 없게 될 때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는 아이들의 감사편지라도 받아달라는 학교 측 요청에도 “학생들에게 부담 주기 싫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금액은 월 10만원 안팎이지만 27년의 세월을 이어온 것은 지극한 마음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다.

 기부할 때면 보도자료를 돌리고 사진 찍어 신문에 내며 홍보에 열을 올리는 요즘 세태에서 이들은 ‘기부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모범사례를 보여준다. 연말이다. 소외된 이웃에 대한 온정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는 계절이다. 기업인과 정치인의 ‘기부 마케팅’이 본격화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대형 기부가 있어야 소외된 이웃에게 실질적 도움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정(情)과 감동은 금액으로 결정되진 않는다. 나부터 내 주머니에서 조금 덜어 이웃과 나누는 익명의 기부릴레이에 동참한다면 세상은 한결 따뜻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