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벤처기업들 생존위해 안간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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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움트기 시작한 국내 벤처업계에 올 하반기에 과연 '땡시장'이 열릴 것인가.

코스닥 시장의 폭락과 벤처캐피털의 투자기피로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인터넷 벤처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벤처 땡시장은 벤처기업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서버와 각종 장비 등을 킬로그램 단위의 고철로 판매하는 장터를 지칭하는 벤처인들의 자괴적인 표현으로 '벤처의 죽음'을 의미한다.

최근 8월위기설 등 갖가지 벤처괴담이 나돌면서 국내 벤처산업의 1번지인 테헤란 밸리는 머지않아 그같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온통 흉흉한 분위기로 뒤덮였다.

특히 기업-소매점을 연결하는 인터넷 쇼핑몰로 비교적 수익모델이 괜찮다는 평가를 받았던 알짜마트가 서비스를 중단하자 닷컴기업의 붕괴를 알리는 전조가 아니냐는 반응들이다.

알짜마트는 지난 2월 쇼핑몰 업체로는 이례적으로 미래에셋과 소프트뱅크코리아 등 초우량 창투사로부터 78억원의 대규모 자금을 유치한 업체여서 테헤란 밸리에 미치는 충격파는 더욱 크다.

이 회사가 출범한지 5개월만에 기존에 유치한 자금을 몽땅 소진하고 추가 자금 조달에 실패해 결국 좌초한 것처럼 제2, 제3의 알짜마트가 도미노 현상으로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는 상황이다.

알짜마트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벤처기업의 옥석(玉石) 구분이 더욱 뚜렷해지면서 수익창출에 실패한 업체들의 퇴출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는 최근에 있었던 일련의 벤처기업 경영자들과의 만남에서 벤처캐피털 관계자들의 한결같이 확인했던 부분이기도 하며 벤처업계는 이번 사태로 그들의 경고를 실감하게 됐다.

그렇다면 설립부터 펀딩에 이르기까지 소위 `죽음의 계곡'으로 표현되는 시기를 살아남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며 실제 업계에서 나타나는 자구책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가.

벤처업체의 몸부림은 대체로 비수익 사업부문을 매각하거나 직원수를 줄이는 식의 적극적인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을 통한 긴축재정, 서비스의 유료화 전환 등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또한 자금이 풍부한 업체들은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는 M&A(인수합병)를 통해 경쟁력을 더욱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인터넷 교육업체인 코네스는 최근 구조조정과 조직개편을 통한 수익중심의 사업 역량을 강화하고 인건비 등 고정비용을 줄이기 위해 전체직원 130명 가운데 23%인 30명을 감원했다.

회사측은 또 기존의 6개 부서가 비효율성의 진원지라고 판단, 사업부서를 인터넷과 교육부문의 양축으로 재편하는 방식으로 군살을 도려냈다.

포장이사와 게임, 커뮤니티 등 3개의 사이트를 운영하던 클릭나우도 수익에 집중하기 위해 게임과 커뮤니티 사이트를 팔아 넘기고 매각대금으로 이사사업에만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인터넷 여행사인 3W투어는 최근 30억원의 예산을 배정, 유명 탤런트를 모델로 내세워 대대적인 TV광고를 하기로 했다가 계획을 수정했으며 140명에 달하던 직원도 20%가량 줄였다.

이밖에 인터파크는 오프라인 유통망을 관리했던 유통망 사업팀과 물류팀을 통폐합하고 22개의 오프라인 직영점을 5개로 축소했다.

반면 코스닥이 폭발하던 지난해 이전에 등록해 여유자금을 갖고 있는 대형 벤처업체들은 이 기회를 활용, 자금난에 시달리는 군소업체를 M&A함으로써 확고한 우위를 다져나가고 있다.

웹투폰의 최대주주인 지누스는 최근 전자상거래 솔루션 전문업체인 인더스트레이더를 합병했으며 PC용 카메라 전문업체인 웹앤아이는 하제닷컴 등 인터넷방송과 콘텐츠 업체를 인수했다.

네이버는 선두 포털서비스 업체를 따라잡기 위해 게임업체인 한게임커뮤니케이션과 인터넷 마케팅 전문업체인 원큐, 서치솔루션 등 3사를 대상으로 1천200억원 규모의 합병을 완료했다.

경품제공 인터넷 서비스에서 출발한 프리웹미디어는 증권전문가들의 주식매매 현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인 `스타메신저'를 개발, 월 1만-3만원의 유료 서비스에 나섰다.

한편 이같은 방법으로도 생존이 어려운 업체들은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완전히 버리고 판을 새롭게 짜는 `리모델링'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자동차전문 사이트인 오토플러스는 3개월에 걸친 리모델링 작업으로 기존 사이트의 성격과 개념을 완전히 뛰어넘은 것은 물론 오프라인의 대리점협회와 연계, 새로운 수익모델을 제시했다.

국내 최초의 캐릭터 전문업체인 바른손은 경영난에 시달리다 인큐베이팅 전문업체인 미래랩에 인수돼 인터넷 기반의 캐릭터 업체로 거듭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벤처업계에 새롭게 등장하는 경영기법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당분간은 자금고갈 현상이 완화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우며 다수의 업체들이 땡시장의 운명을 맞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KTB네트워크의 변준석 부장은 "창투사들도 상당수는 돈이 말랐으며 대규모 업체들도 아직은 투자적기가 아니라고 보고 쉬고 있는 만큼 벤처기업은 어떻게든 이 시기를 버티도록 긴축경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퍼시픽벤처스의 최흥순 경영지원팀장은 "국내의 기술과 아이디어는 대부분이 이미 세계시장에 나와있는 것인 만큼 이를 근거로 투자를 요구하는 것은 곤란하며 무엇보다도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한국적 고유모델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정규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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