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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운동선수, 마누라감으론 최고" 그 이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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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1. 서른도 되지 않은 젊은 기자 시절의 일이다. 몇몇 종목의 코치·감독이나 경기단체 종사자들이 중매를 자원했다. 나를 총각 기자로 지레짐작한 게다(맹세코 총각 행세한 적 없다). 그 가운데 운동선수를 권하는 분이 적잖았다. ‘마누라감으로는 최고’라고 했다. 이유는 이랬다.

 “여자 선수들은 남자를 무서워해. 어려서부터 남자 선생한테 혼나면서 커서 그래. 남편한테 대들고 그런 거 없어.”

 물론 “건강해서 병원 갈 걱정 없다” “인내력과 생활력이 강하다” “아이를 쑥쑥 잘 낳는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혼나면서 커서 남자를 무서워하고 무조건 복종한다”는 말은 강하게 기억 속에 남았다.

 #2. 이에리사 용인대 교수가 태릉선수촌장을 할 때의 일이다. 선수촌 직원 한 분이 불평했다. “개인종목을 한 분이라 단체생활에는 약한 것 같다”고. 나는 의아했다. 탁구에도 단체전이 있고, 선수는 팀에 속해 있지 않은가. 더구나 이 촌장은 19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 금메달리스트다. 76~94년 촌장을 지낸 김성집 선생은 개인종목인 역도를 했지만 많은 존경을 받았다.

 그 직원은 다시 “술 한잔 먹고 풀어버리면 될 일도 여성 촌장이라서 어렵다”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술 한잔 먹어서 풀 수 있는 일이면 술 안 먹고도 풀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러한 인식들이 스포츠계의 여성에 대한 편견이라고 짐작한다. 그 편견은 지금도 어떤 모양으로든 살아남아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2007년, 박찬숙씨는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의 감독 공채에서 탈락한 뒤 “여성이라 차별을 받았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우리은행이 올 시즌 ‘대행’이긴 하지만 여성 지도자를 쓰고 있다. 전임 감독이 선수에게 폭력을 행사해(즉, 선수를 ‘혼내’) 비난을 받고 물러나자 조혜진 대행을 발탁했다.

 나는 조 감독대행이 훌륭한 성적을 내서 정식 감독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동안 프로 농구에 여성 감독은 한 명도 없었다.

 조 대행은 고등학교 시절 각광받는 선수가 아니었으나 끈질기게 노력해 나중에는 국가대표까지 지냈다. 습관성 탈구 때문에 리바운드를 잡을 때마다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우리은행(당시는 상업은행)의 골밑을 굳게 지킨 센터다. 센터는 곧 중심이니, 조 대행이 중심을 잘 잡아 왕년의 명문 팀 우리은행을 재건한다면 다행이겠다.

허진석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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