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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인류의 미래다 ③ 뉴질랜드 숲에는 키위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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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날개가 퇴화해 날지 못하는 키위새가 차에 치여 죽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세워놓은 서행 안내판. 키위 보호는 곧 뉴질랜드의 산림 보존정책으로 이어졌다. [뉴질랜드=최모란 기자]

“여기선 밤엔 차를 특히 천천히 몰아야 해요. 근처에 키위(Kiwi)새가 살거든요.”

 지난 9월 말, 뉴질랜드 북섬 통가리로 국립공원 인근의 한 도로. 주민 줄리아 이레나가 길가의 노란색 표지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긴 주둥이와 날개가 없는 뚱뚱한 키위가 그려진 표지판엔 ‘CAUTION CROSSING AT NIGHT(야간운행 시 주의)’라고 씌어 있었다. 야행성인 키위가 차에 치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키위’는 뉴질랜드 국조(國鳥)이자 산림 정책을 대표하는 단어다. 멸종위기였던 키위를 지키기 위해 펼친 정책이 곧 산림 보호였기 때문이다. 키위는 수컷이 ‘키위키위’ 하고 운다고 해서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지어준 이름이다. 몸길이 50~80㎝가량으로 날개가 퇴화해 날지 못하는 데다 독특한 생김새 때문에 무자비한 포획의 대상이 됐다. 게다가 목재 생산을 위한 벌목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서식지도 점차 줄어 멸종위기를 맞았다. 나무 구멍 등에 숨어있다가 밤에 곤충이나 유충, 식물 씨앗을 찾아먹는 키위에겐 숲은 생명 그 자체였다.

 뉴질랜드 정부는 2000년 키위 보호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서식지 파괴를 막기 위한 산림 보호가 핵심이었다.

이 같은 노력 덕에 한때 멸종위기에 처했던 키위는 7만8000여 마리로 늘어났다. 숲이 커지고 키위가 늘면서 이 같은 자연 경관을 보러 오는 외국인 관광객도 늘어 또 다른 ‘키위’의 주머니도 불려줬다. 또 다른 ‘키위’는 뉴질랜드인을 말한다. 제1·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뉴질랜드 병사들에게 키위가 그려진 구두약 등 배급품이 지급되자 이를 본 다른 나라 군인들이 ‘키위’라는 별칭을 붙여줬다고 한다.

 주한 뉴질랜드 대사관의 로저 던건 서기관은 “키위가 야생에서 살 수 있도록 숲을 보호했는데 그 덕에 연간 300만 명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까지 불러모았다”며 “키위가 키위(사람)를 잘살게 해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키위새

 이제 키위는 뉴질랜드 도심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대표적인 곳이 수도 웰링턴 중심에 있는 카로리야생보호구, 일명 ‘질란디아(Zealandia)’다. 이 보호구역엔 길이 8.6㎞의 울타리가 처져 있다. 키위·투이새·방울새 등 희귀 새들을 고양이나 시궁쥐 등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1980년대만 해도 이 지역은 원래 용수 집수지로 풀 한 포기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보다 못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매년 수천 그루의 나무를 심기 시작했고 지금은 면적이 2.25㎢에 달하는 거대한 숲으로 탈바꿈했다. 키위새도 옮겨와 지금은 100마리가량 된다.

 뉴질랜드는 연간 45억 달러(약 5조1000억원)가 넘는 목재를 수출하는 임업강국이다. 전체 산림 중 5200㎢가 수출용 목재를 키우기 위한 인공조림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대부분 외국에서 들여온 나무들이다. 수입한 나무를 30년 정도 키워서 내다판다. 대신 뉴질랜드의 재래종은 철저히 보호한다. 카오리나무가 대표적이다. 재질이 매우 단단해 물속에서 100년이 지나도 썩지 않을 정도이기 때문에 영국인의 이민 초창기에 남벌로 위기를 맞기도 했다. 뉴질랜드 자원보호부(DOC)의 레우벤 윌리엄은 “뉴질랜드 자연은 결국 키위새와 키위(국민)들이 만든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뉴질랜드 로토루아·웰링턴=최모란 기자

◆ 이 기획기사는 산림청 녹색사업단 복권기금(녹색자금)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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