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을 현혹하지 말라<1>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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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호 02면

‘석탄 수레를 끄는 소녀’. 영국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그림이다. 한 소녀가 허리에 가죽끈을 매고 발과 손수레를 쇠사슬로 연결한 채 석탄 수레를 네발로 기면서 끌어당기는 그림이다. 섬뜩하지만 그래도 이 그림 때문에 1842년 소녀들의 광산 노동을 금지하는 탄광법이 제정됐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200년 전에는 이렇게 만연했다. 열 살이 채 안 된 소년·소녀들이 하루 24시간 내내 일해야 했다. 구타는 물론이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초강대국인 영국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김영욱의 경제세상

이 얘기를 꺼내는 건 기획재정부가 얼마 전 내놓은 ‘세대 간 회계’라는 자료 때문이다.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매우 의미 있는 내용이다. 현재 세대와 앞으로 태어날 미래세대가 각자 부담해야 할 국가채무가 얼마인지 계산했다. 복지제도는 더 이상 늘리지 않는다고 가정했다.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 등록금, 무상급식 등은 포함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미래세대가 부담해야 할 국가채무가 현 세대의 2.4배나 됐다. 미래세대로선 기막힐 얘기다. 자기는 쓰지도 않은, 현재 세대가 쓴 돈인데도, 자신들이 현재 세대보다 두 배 이상 부담을 져야 해서다.

다른 연구도 마찬가지다. 복지제도를 늘리지 않는다고 가정한 후 2050년의 국가채무가 얼마나 될지 연구한 것도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216%가 될 것이라는 추산이었다. 지금이 33%수준이니, 복지지출로 얼마나 빚 부담이 늘어나는지 짐작 가고도 남는 수치다. 심지어 재정 위기를 겪는 그리스나 이탈리아도 이보다 훨씬 낮은 130% 내외다.
현재 세대의 복지를 함부로 늘려서 안 되는 이유다. 그래도 늘리겠다면? 우리가 세금을 더 내는 수밖에 없다. 내가 쓸 돈이면 내가 내는 게 맞다. 내가 쓸 돈을,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우리의 후손들에게 미루는 건 비겁한 거다. 그런데도 우리는 비겁한 짓을 서슴없이 한다. 미래 세대는 발언권이 없기 때문이다. 눈치 주거나 반대하는 사람이 없으니 너도나도 후손에게 떠넘기자는 복지를 외친다. 이 점에선 여야 모두 한 패거리다. 반값 등록금, 무상보육, 노령연금 확대가 거침없이 시작된 까닭이다.

이럴 경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세대가 짊어져야 할 부담은 현재 세대의 2.4배를 넘는다. 2050년 국가부채 비율도 216%보다 훨씬 높아진다. 이 정도면 미래 세대의 신세가 19세기의 ‘수레 끄는 소녀’와 별반 다를 것 없지 않은가. 태어나면서부터 갚아야 할 빚이 너무나 엄청나기에 하는 얘기다.

안철수 식 ‘청춘 콘서트’가 대유행이다. 유력 정치인들이 앞다퉈 대학생들을 찾는다. 하나같이 이들의 구미에 맞는 약속만 한다. 등록금을 내리고, 장학금을 늘리고, 일자리도 확대하겠단다. 서울시장은 아예 등록금 철폐 투쟁을 벌이라고 독려한다. 하나같이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약속들이다. 대학생쯤 되면 그게 누구 돈인지 알 거다. 부모가 세금을 더 내든가, 나중에 자신들이 세금을 더 내든가다. 모두 다 싫다면 자신이 장차 낳을 아이가 더 많은 부담을 지는 거다. 세금 얘기는 기껏해야 부자 증세밖에 없으니 결국 부담은 말 없는 미래세대 몫이 될 수밖에.

그렇다면 청년들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등록금 내리겠다는 걸 마냥 기뻐하는 건 참으로 단순한 반응이다. 그래도 정치인들이 하겠다면 증세도 같이 공약하라고 따져야 한다. 보편적 복지를 하려면 ‘보편적 증세’의 길뿐이다. 증세를 하지 않아도 부담을 줄이는 방법은 하나 더 있다. 고도성장을 하면 된다. 그만큼 복지 재원이 늘어나기에 복지 지출 증가를 겁낼 이유는 없다. 문제는 그게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는 이미 저성장 기조로 들어섰다. 게다가 저출산·고령화 속도도 세계 최고다.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복지를 감당할 재원이 모자랄 수밖에 없다. 이런 판에 증세가 안 된다면 청년과 미래세대가 덤터기 쓰는 수밖에 없다. 그게 싫다면 복지를 마구잡이로 늘려선 안 된다. 그래서 청년들에게 하는 첫 번째 고언이다. 무조건 복지 늘리자는 정치꾼들에게 절대로 속아선 안 된다. 무분별한 복지 확대에 제동 걸 사람은 그대들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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