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재건축아파트 현장은 '뇌물 잔칫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지난 17일 저녁 서울 마포구의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조사실. 깔끔한 정장 차림의 중년 남성이 "관행대로 했을 뿐이었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경찰관의 추궁을 받고 있던 그는 대형 건설업체 D사의 부장 C씨(58). 서울의 한 아파트 재건축 공사를 하며 공무원들에게 돈과 아파트 분양권 등을 건넨 혐의로 불려나온 것이었다.

보통 진술을 거부하거나 혐의를 부인하는 다른 건설업 종사자들과 달리 그는 자신의 뇌물공여 혐의를 순순히 시인했다.

C씨는 우선 "현장소장으로서 1999년 공사수주 직후 설계변경.착공승인 등의 인허가 편의를 봐 달라며 관할 구청 담당 국장과 재건축 담당 주임에게 돈을 주기 시작했다"며 "공사를 마친 2002년 말까지 두 사람에게 모두 약 3000만원씩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이어 "설계변경에는 재건축조합의 동의도 필요했기 때문에 조합 대의원대회를 전후해 조합장과 부조합장, 대의원 2명에게도 3000만원씩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그는 "착공 후 공사소음과 먼지로 인해 인근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칠 때면 이를 무마해 달라며 수천만원씩을 구청 공무원들에게 줬으며, 명절 때는 떡값 명목으로 다시 수천만원씩을 공무원과 조합 간부들에게 건네는 등 공사가 진행된 3년 동안 수시로 돈을 썼다"고 털어놓았다.

비자금 6억여원 중 5억원을 뇌물로 썼고, 자금은 하도급 업체와의 공사계약금을 부풀려 충당했다고 그는 밝혔다.

그는 또 46평형 아파트 다섯 채의 분양권을 담당 국장, 재건축담당 주임, 조합 간부 3명에게 넘겨 이들에게 완공 후 1억원 이상의 시세 차익을 남길 수 있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이 일을 개인 비리로 덮으라는 회사의 지시에 배신감을 느껴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C씨의 진술에 등장하는 공무원과 재건축조합 간부들을 소환해 뇌물수수 혐의 등에 대한 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한편 문제가 된 구청의 담당 국장은 "부정한 돈을 받은 적이 없으며, C씨와는 일면식도 없다"고 밝혔다.

박성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