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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시인 함민복 “장가 가더니 바지런해졌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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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시인 함민복씨는 강화도 갯벌을 닮았다. 말랑말랑, 헐거운 듯 자기를 놓지 않는 그는 시인과 시의 일치를 보여준다. [오종택 기자]

시인 함민복(49)씨를 만나러 갔다. 말랑말랑 부드러운 ‘뻘’의 힘을 느끼기 위해 강화도를 찾았다.

 시인은 지난 3월 자신에게 시를 배웠던 동갑내기 제자 박영숙씨를 신부로 맞아들였다. 신랑·신부 합친 나이가 백 살이라 하여 문단의 화제를 모았던 그 결혼식 말이다. 이후 잠잠하던 함씨가 최근 소박한 책 두 권을 냈다. 짧은 시, 시가 되다 만 산문, 아예 새로 쓴 짧은 글에 만화가 황중환씨가 그림을 보탠 시화집인 『꽃봇대』(대상), 한 일간지에 연재했던 시 해설 칼럼을 모은 『절하고 싶다』(사문난적) 두 권이다. 아무리 결혼해 돈 들어갈 데가 늘었다고 하더라도 ‘천하의 함씨’가 이런 부지런을 떨 줄은 몰랐다. 그래서 찾았다. 강화도.

 지난달 24일 오후. 강화도 동남쪽 초지대교를 건넜다. 함씨가 전화로 일러준 대로 그와 아내 박씨가 인삼을 파는 생업 현장인 강화초지인삼센터는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한데 건물이 매우 컸다.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부부는 건물 안에 들어 있는 수십 개의 자그마한 인삼가게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건물 안은 썰렁했다. 인삼 관리를 위해 난방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함씨는 얼굴이 좀 초췌했다. 박씨가 담담하게 말했다.

 “며칠 연속으로 술 마시더니 저렇지요.” 산삼은 좀 팔리냐고 물었다. 박씨의 표정이 편안치 않다. “김장철이라 그런지 평일에는 영 찾는 사람들이 없어요.” 김장철이나 입학철 등 돈이 들어갈 때는 손님이 준다는 얘기였다.

 주말에나 매상이 좀 오르는 모양이었다. 가장 궁금한 관심사, 결혼하니까 좋으시냐고 물었다. “좋긴요, 그냥 밥 같이 먹는 거고…. 걱정거리 하나 늘었죠.” 걱정거리는 물론 함씨다. 그러나 이런 얘기 하는 박씨, 이번에는 얼굴에 살포시 미소가 떠올랐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결혼 9개월차는 아직 신혼일 수 있다.

 강화도를 찾은 건 물론 부부의 시콜콜한 근황이 궁금해서가 아니다. 반복하면, 함민복 시인이 둥지를 트고 있는 강화를 찾는 일은 뻘의 말랑말랑한 힘이 미치는 영향권 내로 들어가는 일이다.

 시계를 과거로 돌린다. 함씨는 충북 충주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이었고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먹여주고 재워주는 산업체 부설 학교를 택했다. 어렵사리 시인이 된 후 그는 서울 상계동·금호동 등 주로 재개발 대상 지역을 전전했다. 이런 시절이 녹아 있는 『자본주의의 약속』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같은 시집들에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에 대한 서슬 푸른 비판도 들어 있다.

 그의 날 선 시들이 보다 둥글둥글해진 건 1996년 강화도로 오고 난 이후다. 변한 면모는 역시 ‘말랑말랑한 힘’에 집약돼 있다. 이 구절은 2005년 시집 『말랑말랑한 힘』에 실린 시 ‘뻘’의 일부분이다. 시의 전문(全文)은 이렇다.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발을 잡아준다/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가는 길을 잡아준다//말랑말랑한 힘/말랑말랑한 힘’.

 형용사 ‘말랑말랑한’의 반복이 무한 쾌감을 자아낸다. 시에는 간단치 않은 철학도 들어 있다. 발을 사정 없이 잡아당겨 사람을 휘청대게 하지만 실은 발가락 사이사이를 말랑말랑하게 채우는 뻘의 개흙은 오히려 넘어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다.

 함씨가 강화도에서 체득한 깨달음 중에는 우주의 보편적 운행 원리, 현대의 병폐 해결과 관련된 문명사적 성찰을 담은 것도 있다. 『꽃봇대』에 실린 짧은 글 ‘십(十)자 드라이버’가 그런 류다. 전문이다.

 ‘일자 드라이버처럼 수평의 힘, 수직의 힘 따로 빌리지 말고/수평과 수직의 힘 함께 빌리자는 이야기인가//여자 남자 만나 사람 젓가락이 되어 세상 살아내는,/사람들이 만든 모든 물건은 사람을 닮았다.’

 거칠게 표현하면 수평적 가치와 수직적 가치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얘기다.

 함씨는 “(강화도에) 만 15년 넘게 살다 보니 이제 어디 다른 곳으로 가서 새로 적응하기도 그렇고 갈 데도 없다. 여기서 만난 것들을 글로 써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고 했다. 강화에 대한 수줍은 애정 고백이다. 그는 특히 득의(得意)의 시적 상징인 ‘눈물’, 그와 관련된 소금도 수평과 수직이 힘을 합친 결과로 표현했다. “달의 힘이 작용해 수평으로 잡아당기는 바닷물을 수직으로 내리 꽂히는 태양이 말린 결정체가 소금이니 수평과 수직이 조화를 이룬 결과”라는 것이다.

 이런 해석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함씨와의 대화는 즐거웠다. 인과관계, 효율과 속도의 개입이 없는 헐거운 대화였다. 바닷가 갯벌을 구경하는 둥 마는 둥 일행은 서둘러 허름한 횟집으로 향했다. 함씨는 빠르게 취해갔다. 그의 육체적 감각은 바야흐로 변해가고 있었다. 말랑말랑하게.

강화=신준봉·위문희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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