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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사업가·교사·군인 … 사이버대서 ‘인생 2막’ 클릭 클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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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제2막을 꿈꾸며 학업을 잇는 사람들이 늘면서 사이버대가 이들의 인큐베이터가 되고 있다. 새로운 삶을 일구는 도전정신을 표현해달라는 말에 제각각 개성이 담긴 동작을 취해줬다. 왼쪽부터 황오숙·황성익·김수경·고덕기씨. [사진=김진원 기자]

12세 때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겨우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먹고 살기 위해 전국을 떠돌며 막일로 어린 시절을 보냈던 황성익(56·중고차무역업)씨. ‘군인이 되면 먹고 살 수는 있다’는 지인들의 말에 18세의 어린 나이에 군에 입대해 지난 1987년 중사로 전역한 그가 올해 늦깍이로 서울사이버대에 편입해 ‘사회적 기업’을 일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 ‘못배운 한(恨)’이 남아있던 황씨는 전역 후 방송통신고를 졸업했고, 이듬해 감리교신학대에 입학했다. 그는 “러시아(당시 소련)에 사는 교포들이 생활고를 겪으며 한국말도 잊어버리고 있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졸업하자 마자 러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글학교를 차린 뒤 6년여 동안 교포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지만, 생활비 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한국산 중고차를 수리해 파는 장사를 시작했다. 1년여가 흐르자 돈을 만질 수 있었다.

 그러나 빈부격차가 심한 러시아에서 행려자와 알콜중독자를 볼 때마다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가 떠올랐다. ‘힘든 사람들은 주위의 작은 도움에도 인생을 바꿀 만큼 희망을 갖게 되는데, 내가 이 사람들에게 뭔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를 고민하던 그는 올해 초 서울사이버대에 3학년으로 편입했다. “행려자에게 일할 기회를 주는 것이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복지정책이란 걸 배웠습니다. 빵을 주는 게 아니라 빵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게 진정한 복지죠.”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체 직원 중 행려자·장애인 비율을 점차 늘리며 ‘사회적 기업’ CEO로 한발 다가서고 있다.

 지난달 26일 오후 6시 서울 미아동 서울사이버대에는 황씨의 경우처럼 ‘인생 2막’을 준비중인 사회복지학과 학생 250여 명이 모였다. 나이와 출신지역, 인생사는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사회복지를 몸소 실천하겠다”는 공통된 꿈이 있었다.

 김수경(37·여·4학년)씨는 2007년부터 서울 일원동의 한 초등학교에서 장애아동 지원교사로 활동하면서 ‘장애아동에 대한 편견’을 몸으로 느꼈다. 일반 학부모들이 장애아들을 ‘지저분하다’ ‘우리 아이와는 다르다’ ‘내 아이를 공격할 수 있다’고 치부하는 현실에서 장애아동 당사자 뿐 아니라 부모·형제들까지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가 사이버대 입학을 결심한 이유다. “장애아동을 둔 가족의 마음을 헤아리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회복지사가 되는 게 꿈입니다.”

 현직 육군 상사 고덕기(38·4학년)씨는 지난해 3학년으로 편입하면서 거주지인 의정부에서 소속부대가 있는 용산까지 편도 1시간 30분 거리를 오가면서 MP3를 활용해 수업을 듣는 것은 물론, 집에 들어가면 컴퓨터부터 먼저 켠다. 자투리시간을 쪼개 공부하지 않으면 수업내용을 쫓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공부를 한다. 그는 “부대원들을 인솔하면서 군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병들을 보면 대부분이 어릴 때 사랑을 못받고 자란 친구들이었다”며 “저소득층 아이들이나 한부모·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감싸안을 수 있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고씨는 20년간 복무했던 군에 전역 신청을 하고 전직을 준비중이다.

 “‘나도 누군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얻었습니다. 졸업 후 따돌림 당하거나 폭력에 시달리는 학생들을 보호해주는 ‘학교복지사’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결혼 후 10여 년간 ‘주부’를 천직으로 삼았던 황오숙(36·여)씨는 사이버대에 다니며 활력을 찾았다. 6세, 9세 두 아들을 키우며 ‘내 가정’에만 매몰돼 살며 무기력증을 경험했지만, 요즘은 아이들을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보낸 뒤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을 읽는 것으로 행복을 찾고 있다.

글=최석호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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