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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복지예산 3조 … 의원들, 지역구 예산 깎일라 초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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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회 올스톱 … 법안은 쌓이고 국회의 한 상임위 행정실에 28일 처리해야 할 계류법안이 책장에 쌓여 있다. 국 회는 한·미 FTA 강행처리로 인한 여야 간 대립으로 본회의 및 내년도 예산 심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예산은 ‘제로 섬(Zero-sum)’ 게임과 비슷하다. 특정 분야를 늘리려면 다른 분야는 줄여야 한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27일 이명박 대통령과 조찬회동을 했다. 이 자리에서 홍 대표는 ‘민생’을 명분으로 복지예산을 3조원 증액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복지예산으로 내년 총선 승부를 걸겠다는 취지였다. 결국 “재정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예산을 재조정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홍 대표는 전했다.

 문제는 민생복지예산을 3조원이나 늘리려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어느 지역 예산을 줄여야 할지 한나라당으로선 난감할 수밖에 없다. ‘제로 섬’ 게임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 셈이다.

 여야는 상임위와 예결위 심의 과정에서 총선 지역구 예산을 대거 증액하라고 요구한 상태다. 국회 예산결산특위 계수조정소위 심사자료에 따르면 100억원 이상 증액을 요구한 도로·항만·철도 등 지역별 SOC사업만 모두 140건, 4조3140억원에 달한다.

 광주 및 전남북 등을 잇는 호남고속철도 조기완공을 위해 4500억원을 증액하기로 한 것을 포함해 호남지역이 1조4160억원으로 가장 많다. 다음은 수도권 SOC 사업 증액분이 고속철도 수도권구간 확충에 1620억원을 포함해 1조243억원에 이른다. 대구·경북(7518억원)과 부산·경남(5268억원)도 5000억원 이상의 예산증액을 요구해 놓은 상태다. 총선을 5개월 앞두고 이를 대폭 줄이기는 쉽지 않다.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부자증세’(연소득 2억원 초과자에 대한 세율을 40%로 인상)를 당장 시행한다고 해도 2012년엔 근로소득자의 원천징수액 3400여억원밖에 더 걷지 못한다.

 결국 복지와 SOC 예산을 모두 늘리려면 빚을 더 지는 수밖에는 없다. 내년도 정부의 국채발행계획은 13조9000억원이다. 이보다 2조~3조원가량의 국채를 더 발행해야 한다. 이는 ‘2013년 균형재정 달성’이란 정부의 목표를 포기해야 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의 목소리는 같다. 한나라당 소속 정갑윤 국회 예결특위위원장은 28일 기자와 만나 “내년에 총선과 대선이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균형재정 달성이란 목표만 내세워선 여야가 예산안에 원만히 합의할 수 없다”며 “긴급한 SOC 사업은 증액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계수조정소위 간사인 강기정 의원도 “3년 연속 한나라당의 예산날치기 처리 때문에 야당 예산은 누락되고 이른바 ‘형님예산’ 같은 것만 반영돼 왔다”며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선 SOC 예산도 늘릴 건 늘려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도 초조하긴 마찬가지다. 강운태 광주시장은 이날 간부회의에서 민주당이 예산안 심의를 거부하는 데 대해 “민주당이 나라 살림을 심의하지 않고 거부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 된 것”이라며 “국회 상임위에서 증액된 사업이 물거품이 될까 심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박준영 전남지사도 성명을 통해 “민주당이 국회의 고유 권한인 예산안 처리를 거부하는 데 우려를 표한다”며 “171건의 대형사업이 줄줄이 누락될 위기에 처했다”고 토로했다.

글=정효식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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